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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한국戰 왜곡, 중국의 美견제 위해 '희생'되는 한반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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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은 내전, 남한 북침 가능성 있어" 주장 유포 확산
중국 정부 한국전쟁 이용 속 역사왜곡 확대

[서울=뉴스핌] 강소영 기자=중국의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왜곡 분위기가 우려할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웨이보(微博·중국의 SNS) 계정에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정의하고, 북한의 남침을 부인한데 이어 중국 외교부도 사실상 이와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중국 인터넷에도 최근 한국전쟁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개인 블로그와 1인 매체의 글과 보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중국 블로거 "한국전, 이승만 정부 북침 가능성 배제 못해..."

근현대 역사를 다루는 한 개인 블로그에는 26일 '조선(북한을 가리키는 중국식 표현)전쟁의 첫 총성을 누가 울렸나?'라는 제목의 장문이 올라왔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이승만 정부의 '북침' 가능성을 제시했다. 1950년 5월 이승만이 전란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고 미군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북한에 먼저 전쟁을 도발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대만의 장개석 전 총통도 한국전쟁 발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민해방군에 밀려 대만으로 도망을 간 장개석 정부가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을 방패막이로 삼았다는 논리다.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해 미군이 개입하고 남한이 승리하면 중국군의 대만 침략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1인 매체 "한국전은 내전, 누가 침략했는지 중요치 않아"

또 다른 중국의 블로거도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내전이라고 주장했다. 한 민족이 통일의 목적달성을 위해 발생한 내부의 다툼으로 누가 먼저 침략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미국이 내전에 개입해 지역 안보를 위협했고, 중국은 자국의 안전을 지키기우 위해 한국전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역설했다.

이 필자는 한국전쟁의 도발 주체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희석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남한과 북한 관계의 긴장 고조로 발생한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처럼 묘사했다. 1949년 1월부터 1950년 6월까지 남한과 북한 사이의 38선 부근에서 2000여 건의 크고 작은 무장충돌이 일어났고, 결국 이것이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본격화됐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북한의 남침 언급을 회피하면서 당시 이승만 정부의 무능력과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북한은 민족통일의 희망을 갈수록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며 북한의 '남침'을 은연중에 두둔했다.

이 필자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정당성도 부각했다. 신중국 성립 1년을 맞아 본격적인 발전을 도모했던 중국이 미국과 연합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항변했다. 미국이 중국의 영토 초토화를 기도하고, 대만 문제에 간섭했기 때문에 중국 지도부가 북한 지원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역사, 반미·중화 민족주의 확산 도구로 이용

정부 지시 아래 2개월만에 제작이 완성된 '항미원조전쟁' 기념 영화 '금강산' 포스터

중국 대표 포털인 바이두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조선(북한)을 지원한다는 의미)', 한국전쟁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비슷한 논조와 내용의 글이 '쏟아진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이 표출되고 있다. 대부분이 2020년 9월 이후 작성된 콘텐츠다. 

중국은 이제까지 한국전쟁 역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올해가 한국전 발발 70주년의 해이긴 하지만 과거 40·50·60주년의 해에선 한국전쟁이 올해처럼 큰 이슈가 되지 않았따. 

그러나 올해는 시진핑 주석이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미국 대항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항미원조전쟁 기념행사 연설을 한 것은 2000년 장쩌민 총서기 이후 20년 만이다. 

또한 중국 정부의 지시 아래 2달 만에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 '금강산'을 제작해 배포하고, 관련 다큐멘터리와 프로그램이 연이어 제작되는 등 한국전쟁이 중국 사회에서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 대부분 한국전쟁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의 '승리'를 도왔다는 것을 강조고 있다. 중국의 한국전쟁 참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인민군의 '희생'을 홍보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미국의 압박에 절대 꺾이지 않겠다는 중국의 결연한 의지를 전달하고, 한국전에서처럼 앞으로도 미국에 대항해 승리하겠다는 경고를 던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각종 시청각 자료를 통해 중국 국민들에게 애국주의와 반미 정신을 주입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상 중국 정부가 한국전쟁의 역사를 미국 견제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방침에 민간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개인 블로거와 1인 매체들은 구체적인 역사 소개와 해설로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 정부의 메시지를 보다 확실하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 상당수는 글의 말미에 중국의 발전 상황, 인민군의 뛰어난 능력을 강조하며 미국에 절대 굴복하지 말자는 당부를 첨가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전쟁의 역사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고, 한류 문화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슈가 된 BTS의 수상소감에 대한 중국 네티즌과 관영 매체의 '생트집'에 가까운 문제 제기,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연예인의 SNS 항미원조 홍보 메시지 등도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발생했다. 

js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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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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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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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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