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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가 남긴 말…“남편의 평생소원 한반도 평화 정착되길”

기사입력 : 2019년06월11일 12:57

최종수정 : 2019년06월11일 15:31

자서전 ‘동행’으로 본 고(故) 이희호 여사의 인생 발자취
‘백 번 참으면 백 번 승리하리라’ 되새기며 DJ 조력
“여성‧약자 차별받지 않는 세상” 여성‧인권운동 의지

[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남편의 평생소원인 한민족의 평화가 빨리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또한 나의 지극한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일부분 발췌)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 그리고 인권‧여성운동가로서 일생을 바쳤던 이 여사의 삶을 그가 남긴 말들로 되짚어 본다.

[서울=뉴스핌] 이길동기자=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국내 대표 여성운동가로서 여성인권운동을 이끌었다. 1962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 김 전 대통령의 인생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인생의 고락을 함께 했다. 사진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97년 12월 19일 일산자택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집밖에서 기다리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 2019.06.11.

◆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되려고 결심” 존경·존중으로 가득했던 47년 결혼생활

1922년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외가에서 6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이 여사는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며 명문 이화여고와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다. 미국에서 유학도 마쳤다.

귀국 후엔 YWCA에 들어가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 운동가이자 인권 활동가로서 혼인 신고 의무화, 축첩 반대 등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에 앞장섰다. 김 전 대통령과는 1962년 결혼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2008년 발간한 자서전 ‘동행’에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믿음, 그리고 여성‧인권 운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드러나는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흔히 ‘인동초(忍冬草)’라고 불린다. 그는 평생 민주화 운동을 하며 숱한 고초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에 입문해서도 끊임없이 역경에 부딪혔다.

때문에 그의 삶을 표현하기에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꽃’이라는 의미의 인동초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것이라고 많은 이들은 입을 모은다.

김 전 대통령이 인동초로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그의 곁을 지켰던 이 여사의 공이 컸다.

남들이 보기에,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도 하지 못했던 김 전 대통령에게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며 이화여고와 서울대 사범대학까지 졸업했던 이 여사는 ‘과분한 여자’였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2019.06.11 mironj19@newspim.com

하지만 이 여사는 평생 남편인 김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존중했다.

“나는 한 번도 내 주장과 내 학력을 내세우지 않았으며 늘 그의 판단을 따랐다. 개선할 문제점이나 아이디어가 있어도 남편에게 직접 말하기보다는 비서들에게 그들의 생각으로 건의하도록 했다.”

“85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메모광이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메모를 하는 남편을 보면 습관이 얼마나 무섭고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남들이 기억력이 비상하다고 말하는 나는 대체로 머리에다 저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즈음 점차 기억력이 떨어져 자서전 작업을 하면서 애를 먹고 있다. 그래서인지 메모광인 남편이 더욱 존경스럽다.”

이 여사는 남편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곤 했다. 남편의 장점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보완했다.

이는 반대로 김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완하고 보듬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동지, 그 자체였다.

또 남편에게 자신과 다른 부분이 있어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중했다.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이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자서전에도 이 사실이 잘 나타난 부분이 있다.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이 되자고 결심하고 선택한 결혼에서 한 가지 고집한 것이 있다. 나는 모태 신앙을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신앙생활을 한다. 식탁에서도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나는 고개 숙여 기도를 한다. 그리고 주일에 그는 두 아들과 서교성당으로 가고, 나는 혼자 창천교회로 간다. 기독교의 각 교파가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모범적인 가정이지만 남 보기에 어색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결국은 하나인데 남편은 하느님, 나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사진=김대중평화센터]

◆ 수감된 남편 위해 직접 법 공부하고 대통령에 청원까지…‘강인한 의지’
    “고난의 길이었지만 남편과 한 몸 되어 감사했던 삶” 자서전에 지난 삶 회고하기도

이 여사는 명문 학교에서 공부한 재원답게 주관도 뚜렷했고, 의지를 발휘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여사는 그 대표적인 일화로 이화여고 재학 당시 있었던 일을 자서전에 소개했다.

“1936년, 나는 감리교 미션스쿨인 이화고녀에 입학해서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입학할 당시의 교복은 개량 한복인 검정 통치마에 자주색 저고리였다. 하복은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이었다. 댕기 머리로 3년을 다니다가 4학년 졸업반 때 그토록 선망하던 세일러복을 입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머리도 단발로 자를 수 있었다. 졸업 기념인 일본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선택한 대가였다. 학교에서는 학부모의 부담을 고려해 둘 중 택일하라고 했다. 단발머리는 부모의 허락을 받도록 했다. ‘평생의 소원이니 단발을 허락해 주세요’라는 장문의 간절한 편지에 아버지는 붓글씨로 ‘단발을 허락함’이라고 보내주셨다.”

이후 이화여고를 졸업한 이 여사는 1942년 이화여자전문학교(지금의 이화여대) 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당시 일제강점기 상황으로 인해 같은 해 12월 전시교육임시조치령이 내려지면서 대부분의 학과가 문을 닫았고, 이 여사도 학업을 중단했다.

고난이 닥쳤지만 이 여사는 오히려 이 때의 일을 ‘강인하게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계기로 삼았다.

“졸지에 학업이 중단된 나는 망연자실한 채로 친구 몇 명과 함께 김활란 박사를 찾아갔다. ”선생님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애처롭게 우리를 바라보시던 그분은 조용히 붓을 들고 글을 써 내려갔다. ‘백인백승(百忍白勝)’. ‘백 번 참으면 백 번 승리하리라’. 일본인들에게 치욕을 당하면서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었으리라.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참고 살아남으라는 당부를 했다.”

이 여사는 이 말을 되새기며 해방 이후인 1946년 9월 국립 종합대학 서울대 사범대학 영문과에 입학해 학업을 다시 이어갔다.

이 여사가 이 때 기른 강인한 의지는 학창시절뿐만 아니라 김 전 대통령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조력자가 돼 줄 때도 아낌없이 발휘됐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이 1977년 수감되자 직접 법전을 보면서 형행법을 공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청원도 넣었다.

“그(김 전 대통령)는 1977년 4월 14일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 나는 화급하게 법전을 독학했다. 행형법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법에 보장된 정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그 길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병상조회 의뢰신청서와 교도소 처우개선 건의서 등을 법무부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청원했다.”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이 여사는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자서전에도 “우리는 핍박도 많이 받았지만,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은혜롭고 축복된 삶을 살았다”고 적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2019.06.11 mironj19@newspim.com

이 여사는 자서전 말미에 지나온 삶에 대한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역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일생에 대한 감사함이 잘 드러나 있다. 또 일생을 바쳤던 여성‧인권 운동과 관련한 생각도 자서전 말미에 남겼다.

“87년 동안 살아온 과거를 보니 감회가 깊다. 선배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고 내 친구들 가운데 몇 사람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서 여행도 하고 남편과 함께 먼 나라로 출장을 가기도 한다. 이러한 날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한다. 길고 험한 고난의 길이었지만 남편과 한 몸이 되어 서로 믿고 의지하며 굳건히 잘 걸어온 날들이었다. 남편의 평생소원인 한민족의 평화가 빨리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또한 나의 지극한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으면서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대한민국이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보듬어 안아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평생 인동초의 옆을 든든히 지키다 먼저 인동초를 보낸 그는 마침내 2019년 6월 10일 인동초의 옆으로 돌아갔다.

한편 이 여사는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 장례는 5일 간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4일 오전 6시, 장지는 서울 국립현충원이다.

suyoung071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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