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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의 대가 진융의 94년 인생 발자취

기사입력 : 2018년11월01일 10:31

최종수정 : 2018년11월09일 17:42

[서울=뉴스핌] 고은나래 기자 =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金庸, 김용)이 지난 30일 향년 94세로 홍콩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는 무협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으며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평생 학생'이었다. 풍부한 상상력에 자유분방한 성품의 소년이었던 그는 세계 무협 소설 분야에서 누구도 감히 넘볼수 없는 화려한 금자탑을 쌓았다. 

젊은 시절 진융 [사진=바이두]

 '평생 학생' 완고한 책벌레

진융은 1924년 3월 10일 저장(浙江)성 하이닝(海寧)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저장의 최고 명문가로 손꼽히는 해녕 사가(海寧 査家) 출신으로 청(淸)대 가장 유명한 시인인 사신행(査愼行)의 후손이다. 청 강희제(康熙帝) 때는 집안에서 무려 열 명의 진사를 배출하고, 숙질 가운에 다섯이나 한림원(翰林院) 관리를 지낼 정도로 학문에 있어서는 따라올 가문이 없었다.

이처럼 대대로 학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난 진융은 어릴 적부터 지독한 책벌레였다. 독서에 심취하여 끼니를 놓치는 일 역시 비일비재해 부모님의 걱정을 살 정도였다. 오로지 책밖에 모르는 ‘책 벌레’였지만, 사업에도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그는 배우지 않아도 돈이 되는 길을 알았다. 15살이 되던 해에 진융은 친구 두 명과 함께 ‘중학교 입시 수험서’를 집필, 베스트 셀러를 탄생시키며 어린 나이에 큰 돈을 만져보기도 했다.

자유분방하고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던 그는 학창시절 두번이나 퇴학을 당했다. 1940년 저장 연합고등학교 재학 시절, 벽보에 지도교사를 풍자한 글 ‘아려사만유기(阿丽丝漫游记)’를 실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다.

진융은 퇴학 당한 뒤에도 학업을 멈추지 않았다. 외교관의 꿈을 안고 쓰촨 충칭 중앙정치대학에 입학하지만 학교 교풍에 불만을 품고 글로써 당시 행태에 대해 항의했다. 이로써 인생 두 번째 퇴학 처리를 당하며, 동시에 외교관의 꿈도 접게 된다.

화려한 금자탑을 쌓다

그런 진융이 무협 소설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그저 단 한번의 우연이었을 뿐이었다. 1955년 다궁바오(大公報)에서 인기리에 무협소설을 연재 중이던 량위성(梁羽生)은 계속된 연재에 환멸을 느끼고 돌연 연재 중단을 선언한다. 이때 그의 빈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이 진융이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무협소설을 써본 적이 없었지만, 이 우연한 계기로 인해 무협 세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자신의 본명 루이스 차량융(査良鏞) 중 ‘용(鏞)’자를 파자해 만든 진융이란 필명도 이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작품인 서검은구록(书剑恩仇录)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는 일약 스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그 후 연달아 벽혈검(碧血剑), 설산비호(雪山飞狐), 신조영웅전(射雕英雄传)등을 집필, 불과 10여년 만에 15편의 무협 대작을 남겼다. 1972년 마지막 무협 소설 ‘녹정기(鹿鼎记)’를 끝으로 진융은 집필 작업을 마친다.

진융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중국 대륙에 소개된 것은 1980년대 초에 들어서부터다. 그의 소설에 빠진 수많은 중국 팬들이 생겨났고,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 드라마가 쉴새 없이 제작됐다. 

외교관을 접고 기자의 길로

진융은 당대 최고의 무협 소설가임과 동시에 유명한 저널리스트였다.

충칭 중앙정치대학에서 퇴학 당하며 외교관의 꿈이 좌절된 후에도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1947년 상하이 다궁바오에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돼 기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듬해 다궁바오 홍콩판이 출간되면서 당시 24살이었던 진융은 홍콩 파견을 자청한다.  그 당시의 홍콩은 상하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라 선뜻 나서는 자가 없던 상황에서 “나는 누구보다 모험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타이완의 유명 작가이자 정치평론가인 리아오(李敖)는 진융의 무협 소설을 두고 “사실성이 결여됐다. 모두 허구이고 거짓이다”며 당시 '진융 기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기자 진융은 1959년 ‘거짓 사실’에 대응해 ‘진실된’ 보도만을 하겠다며 ‘밍바오(明報)’를 창간, 덤덤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나갔다. 당시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오늘날 밍바오는 홍콩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매체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지만, 창간 초기만 해도 발행부수는 고작 6000부가 채 되지 않았다. 경영 위기로 휘청거릴 때는 직원들 월급을 20% 이상 삭감한 적도 있었다. 진융은 그때를 회상하며 “직원 모두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밍바오가 존재한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20대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65세가 되던 해에 진융은 사장직을 내려놓고 현업에서 물러난다.

여든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공부에 매진하는 진융 [사진=바이두]

열정으로 가득찬 홍콩의 4대 천재 

진융은 무협소설가 예광(倪匡), 작곡가 황점(黃霑), 미식가 채란(蔡瀾)과 함께 홍콩 4대 재자(香港四大才子)로 불린다. 예광, 황점, 채란 등 3명은 자기들은 집안이 좋아 재자로 불릴 뿐, 본인 능력이 출중한 자는 진융 밖에 없다며 입을 모아 얘기한다.

진융은 평생 동안 자기 개발에 힘써왔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의 불타는 학구열은 식을 줄을 몰랐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여한 명예 박사학위를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다시 일반 학생의 신분으로 같은 대학 박사 과정에 등록해 공부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81세라는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그는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전공서적으로 가득 찬 가방을 양 어깨에 매고 교정을 누볐다. 그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했다. “난 학위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공부가 하고 싶을 뿐이다”.

 

nalai1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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