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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40년] 천지개벽, 개혁개방 40년 대장정과 주요 변곡점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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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상취안 경제체제개혁연구회 회장의 회고
개혁개방 발자취를 상징하는 역사적 '경험'

[편집자] 이 기사는 2월 28일 오전 11시17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뉴스핌=강소영 기자] 중국이 올해로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았다. 중국은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개방의 눈부신 성과를 조명하는 분위기다. 최근 펑황왕(鳳凰網) 등 중국 유력 매체들은 가오상취안(高尙全) 중국 경제체제개혁연구회 회장의 '내가 경험한 중국 개혁의 10가지 이야기'를 소개하며 개혁개방의 역사를 반추했다. 

해당 글은 지난 2014년 중국 금융박물관에서 진행된 한 포럼에서 가오상취안이 발표한 연설문이다. 개혁의 산증인이자 실천가였던 가오상취안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중국 개혁개방의 변곡점과 발자취를 되짚으며, 개혁의 여정과 당위성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줄곧 중국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인칭 시점에서 작성된 그의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가오상취안(高尙全) 중국 경제체제개혁연구회 회장

◆ 폭염에 선풍기도 마음대로 살 수 없었던 기업: '자주권'을 얻기까지 험난한 여정 

1956년 12월 6일 나는 런민르바오(인민일보)에 '기업의 자주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완전한 자주권이 아닌 '일정한 수준의 자주권'이라는 표현은 매우 보수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 정도 수위의 표현도 쉽지 않았다.

당시엔 철저한 계획경제 아래서 모든 생산과 기업 경영이 정부의 지침 아래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 정부가 모든 지역의 기업 경영에 면밀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란 사실상 힘들었다. 곳곳에서 비효율과 자원 낭비가 속출했고, 폐단이 드러나고 있었다.

개혁개방 초기 산시(陝西) 지역의 한 공장. 1979년 9월 '산시일보'는 기업의 자주권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신화사의 보도를 전재했다. 산시지역은 국유기업의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으로, 기업의 효율성 제고가 시급했다. 

 

1956년 상하이의 여름은 무더웠고, 공장들은 폭염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됐다. 에어컨이 없던 시대여서 선풍기 도입이 시급했는데 선풍기 하나도 기업이 마음대로 살 수 없었다. 선풍기를 사기 위해 7개 정부 부서에 보고를 올리고 허락을 받는 사이 그해 여름을 지나가버렸다.

유사한 사례는 비일비재했고, 급기야 나는 런민르바오에 기업의 자주권을 허락하라는 칼럼을 쓰게 됐다. 이 칼럼으로 나는 한참 후인 문화대혁명(1966~1976) 당시 대자보를 통해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기업에게 자주적 결정권을 주는 것은 유고슬라비아의 수정주의와 다를 바 없다. 사회주의 체제의 기업은 반드시 정부가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오쩌둥 주석은 '10대 관계'라는 글에서 '두 개의 적극성이 하나의 적극성보다 옳다'며 지방의 적극성을 장려한 바 있다. 모든 기업을 중앙 정부가 쥐어잡으면 결국 기업은 죽게 된다. 1950년대 중국 곳곳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당시 내 칼럼은 중앙 인민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전파됐다. 마침 당시 나는 상하이 시장에 당선된 왕다오한(王道涵)과 함께 선양(沈陽) 시찰을 진행하던 중이었는데, 방송을 통해 내 글을 알게 된 왕 동지는 은근한 찬성의 의사를 밝혔다.

◆ 광둥사람들이 다시 생선을 먹게 된 까닭: 상품경제 도입

1984년 중국에서는 상품경제 개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해 7월 중국 공산당은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를 통해 '중공중앙의 경제체제 개혁에 관한 결정'의 요강을 마련하고, 10월 12차 3중전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때 중국 공산당 의제에 '계획적인 상품경제'라는 용어로 '상품경제'의 단어가 처음 등장하게 됐다.

 

전통적으로 중국 광둥 지역 사람들은 생선을 즐겨먹었다. 그러나 계획경제 시대 하에서 광둥 사람들이 생선을 먹기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생선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계획경제 아래서 상품의 가격을 정부가 정하다 보니, 양식업자들이 힘들게 생선을 키워도 이윤을 내기 힘들었다. 결국 양식업 종사자들이 열심히 생선을 키워낼 동기가 없어졌고, 시장에서 생선 공급량이 줄면서 가격이 비싸진 것이다.

훗날 중국 정부가 상품 가격 자유화를 도입하면서 양식업도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생선 공급량이 늘면서 가격도 안정화됐다.

광둥 사람들과 생선의 사례는 상품경제의 중요성을 여실하게 보여줬다. 상품경제를 도입한 지방은 경제가 발전했고, 그 지역 사람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

1984년 정부가 '중국중앙의 경제체제개혁에 관한 결정(이하 경제개혁 결정)' 초안을 마련할 당시, 나는 '상품경제'의 단어를 '경제개혁 결정' 초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품경제'가 자본주의 색채가 난다는 이유로 많은 동지들이 반대를 했다.

당시 내 직책은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 연구팀 팀장 겸 중국경제체제연구소 소장에 불과했고, 내 주장은 관철되기 힘들었다.

결국 1984년 9월 현재의 시위안호텔(西苑飯店)인 시위안여관에서 당대의 유명 학자들과 함께 토론회를 열었다. 나와 학자들은 열띤 토론 끝에 상품경제가 중국 경제개혁 이론의 핵심 돌파구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이러한 내용을 중앙 정부에 보고했다.

다행히 중앙 정책결정층의 영도 동지들은 상품경제의 중요성을 인정했고, 1984년 10월 20일 '상품경제'의 중요성을 담은 '경제개혁 결정' 문건이 발표됐다. 문건은 '상품경제의 발전은 사회경제 발전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단계이며, 중국 경제현대화 실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라고 명시했다.

◆ '유고슬라비아를 배우자'  해외 개혁개방 경험 과감히 수용

당시 중국에선 사회주의 국가로 개혁에 먼저 나섰던 헝가리와 구 유고슬라비아 시찰이 유행이었다. 중앙 정부를 포함해 각 지방 정부, 기업과 학술 기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를 찾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는지 당시 헝가리 사람들은 "우리 나라 소도 중국 사람들을 알아볼 정도"라는 우스갯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찰단들의 연구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대부분 비슷한 내용의 시찰 결과 보고를 내놓았고, 시찰 보고는 다시 책상 속 서랍 속에 묵혀지기 일쑤였다.

국가체제개혁위원회 부주임이었던 나는 이러한 방식의 중복 시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무원의 허가를 얻어 18명의 엘리트 청년을 이끌고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로 떠났다. 당시 시찰단에 포함된 청년 엘리트들은 훗날 국무원 부총리에 오른 마카이(馬凱) 등 중국 지도부 인사가 됐다.

우리는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에서 신구 체제교체 과정의 마찰과 모순, 발전 방향과 문제 해결 등을 연구했다. 이를 토대로 정부 지도층, 당 지도부, 학계 및 기업인 등과 100여 차례의 토론을 진행했고, 당시 남긴 좌담회 기록물은 30여만 자의 분량에 달했다.

1986년 6월 26일 나는 국무원에 '헝가리·유고슬라비아 시찰 보고서'와 '험난한 개혁에 대한 탐색'이라는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개혁의 기본 이념과 개혁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여러 문제를 제시했고,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의 경험을 통해 해결 방법을 고찰했다.

국무원과 국가 영도층은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 적지 않은 경험적 교훈의 역할을 할 시찰 결과를 매우 중시하고 성과를 인정했다.

◆ 달걀조림과 미사일을 만드는 사람 수입 차이 나야: 노동에 따른 분배 노동시장 확립

 

1993년 11월 중국 개혁개방과 체제개혁 역사에 있어 중요한 성과가 탄생했다. 14대 3중전회에서 '중공중앙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체제 문제에 관한 결정(이하 결정)'이 통과된 것이다.

'결정'에는 처음으로 '자본시장'과 '노동력 시장'이라는 용어가 언급됐다. 당시 중국의 사회주의 분위기 속에서 이 두 용어의 출현은 대단히 혁명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나는 '결정'의 초안 작성에 참여했었다.

해방 이후 중국에서는 '자본'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본시장을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써 자본이라는 단어를 피하고자 '자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던 때였다.

그러나 1985년 나는 중국 사회과학원 산업경제연구소 소장이었던 장이웨이(蔣一葦)와 함께 '사회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어떻게 자본 문제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우리는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자본문제는 피할 수 없는 의제이고, 국가의 자금이 어떻게 국가의 자본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1993년 11월 통과된 '결정'의 초고에는 '노동취업시장'이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노동력 시장에 각종 장애가 많다는 것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나는 '노동취업시장'이 아닌 '노동력 시장'이라는 용어가 옳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사람들은 노동력 시장이라는 표현을 쓰길 반대했다.

그들은 "사회주의는 바로 계획경제 체제다. 노동취업시장이라는 표현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노동 시장의 인정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전국적으로 통일되고 개방된 시장 체제를 수립하려고 한다. 노동력과 자본은 이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이 핵심 요소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설립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결정'의 초안에는 노동 시장과 자본의 관계를 인정하는 '노동력 시장'이라는 용어가 실리지 못하고 '노동취업시장'이라는 용어가 이를 대체했다.

1993년 11월 3일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정'의 수정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고, 당시 조장이던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발표를 담당했다. 나는 시장체계과 분과 조장으로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중앙상무위원회 회의에선 정치국 위원 누구도 개인의 의견을 발표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모두의 침묵 속에서 나는 내가 나서지 않으면 개혁의 핵심 이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난 용기를 내 발언을 자처했고, '노동시장'의 중요성을 요목조목 나열했다.

"차예단(茶葉蛋 찻잎과 간장에 조린 달걀)을 만드는 사람이나 미사일을 만드는 사람이나 수입에 차이가 없는 이유는 노동시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격을 결정할 시장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의 능력이 다르고, 경제에 대한 공헌도가 다르다. 이에 대한 수입은 응당 차이가 나야한다. 이를 위해선 노동시장 체제가 수립되야 한다"고 당시 나는 역설했다.

정부가 노동력을 전적으로 안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시장 체제에 따라 노동 자원을 자연스럽게 분배해야 실업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은 통일·개방·경쟁·질서있는 시장 체제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노동 시장이 빠진다면 시장 체제는 결코 설립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나의 발언을 경청한 총서기가 물었다. "동지가 언급한 노동 시장 개념을 사회가 용납할 수 있겠소?".난 중앙이 인정한다면 사회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회의가 끝난 후 원자바오 당시 조장이 나를 찾았고, 나는 그에게 노동 시장에 관한 자료를 넘겼다. 원 조장은 이를 다시 총서기에게 전달했다. 결국 총서기는 노동 시장 개념을 인정했고, 14대 3중전회의 '결정'문에 노동시장의 용어가 포함됐다.

◆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결합 : 중국식 시장경제 탄생

14차 3중전회에서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 경제 체제 수립'의 목표를 제시했다. 문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통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사회주의 체제 하의 시장경제로 반드시 '일반' 시장경제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또 다른 해석은 이와 다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일반(보통)의 시장경제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즉,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역시 시장경제 질서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3년 11월 나는 '런민르바오'에 '중국경제의 혁신-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 글에서는 나는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시장경제란 시장이 사회 자원을 분배하는 경제 운영의 형식이자 방식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사회주의 체제 하의 시장경제다. 여기서 시장경제는 '일반'의 개념이고 사회주의는 '특수'한 조건이다.

일반적인 규칙은 인류가 오랜 시간의 경험과 탐색을 통해 도출해낸 공통의 가치와 이념이자 인류 문명의 결과다. 때문에 우리는 일반의 규칙을 중시하고 따라야 한다. 중국이 다른 나라와 조금 다른 것은 사회주의 체제를 따른다는 것인데, 이는 특수한 조건에 해당한다. 우리는 일반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르면서'사회주의'라는 특수의 조건을 융합해야 한다. 사회주의가 특수하다고 해서 일반의 규칙을 배척할 수는 없다.

22년이 지난 지금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시장경제의 일반 규칙과 사회주의의 특수성은 대립해선 안되며 서로 결합돼야 한다.

일반의 규칙은 우리 일상과 도처에 존재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개념이다. 다만, 외국인은 서양 음식을 먹으며 중국 사람은 중식을 먹는 다는 것이 다르고 이것은 '특수'의 개념이다. 배가 고프면 당연히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는 선택이며 특수의 문제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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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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