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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에서 김부식과 묘청의 난에 대해 알아본다. <사진=KBS> |
[뉴스핌=정상호 기자] ‘역사저널 그날’에서 묘청의 난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파헤친다.
19일 방송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김부식, 묘청의 난 토벌 대장이 되다’ 편이 방송된다.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한 고려, 서경천도론의 대두
1126년 고려는 내우외환이 겹쳐 위기에 놓인다. 안으로는 이자겸의 난으로 개경의 궁궐이 불타 왕권이 크게 실추되었고, 밖으로는 금(金)이 거란과 북송을 멸망시키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라 고려에도 사대를 요구했던 것인데 이때 신흥세력 묘청이 등장한다.
“개경의 왕업은 이미 쇠하였고, 서경에는 제왕의 기운이 있다”며 서경천도를 주장한 것. 이에 개경에서는 김부식을 비롯한 관료들이 반기를 들면서 서경파 묘청과 개경파 김부식의 대결이 시작됐다.
◆서경에 일어나는 불길한 조짐들, 묘청의 임기응변
왕 인종은 묘청의 주장에 따라 서경의 명당자리인 임원역 터에 새 궁궐을 축조하며 서경 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완공된 대화궁 근처에 벼락이 30여 차례 치고, 중흥사 탑이 불타는 등 불길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서경천도의 적신호가 켜지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한다. 왕이 서경으로 행차하던 길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수많은 인마(人馬)가 살상되고 왕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지경에 이른다.
이 일로 김부식을 비롯한 개경파는 묘청 일파를 거세게 비판하고 묘청은 궁지에 몰린다. 이후 대동강에 오색의 띠가 떠오르고 묘청은 이를 ‘신룡의 침’이라며 국면 전환을 모색한다.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묘청의 난, 그 오해와 진실
개경 세력의 반대로 서경천도 계획이 좌절되면서 1135년 정월. 묘청은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짓고 군사를 앞세워 반란을 일으킨다. 이른바 묘청의 난이다. 이 난은 후대에 자주와 사대의 대립으로 비춰지며 다양하게 평가된다.
특히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묘청의 난을 “이 운동이 성공했다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묘청에 대해선 전혀 뜻밖의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고.
한편 ‘역사저널 그날’은 19일 밤 9시40분에 방송된다.
[뉴스핌 Newspim] 정상호 기자(newmedi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