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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은 신라판 금수저로 평가되던 귀족 김헌창의 반란을 다룬다.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홈페이지> |
[뉴스핌=대중문화부] ‘역사저널 그날’이 신년기획 고대사 인물 열전 선택 5부작 제2편으로 ‘김헌창, 반란 혹은 혁명’을 방송한다.
10일 오후 방송하는 KBS ‘역사저널 그날’은 통일 이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태평성대를 누리던 신라가 대업 100년에 이르러 반란세력과 반목하는 상황을 분석한다.
이날 ‘역사저널 그날’은 당시 신라의 왕권에 반기를 든 김헌창을 집중 조명한다. 김헌창은 장안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신라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다.
‘역사저널 그날’은 신라판 금수저인 진골 귀족 김헌창이 안정된 미래를 포기하고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알아본다. 통일신라 785년, 당시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은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에게 밀린다. 갑작스러운 큰 비로 김주원이 신라 왕실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폭우는 하늘의 뜻이라는 신라 귀족들의 의견에 왕좌를 빼앗긴 김주원.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김경신이 한 가지 꿈으로 인해 왕이 될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역사저널 그날’은 당시 왕위 계승을 둘러싼 진실을 알아본다.
또한 ‘역사저널 그날’은 그로부터 37년 후. 순순히 왕의 자리를 내어준 아버지의 선택과 달리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을 추적한다.
‘역사저널 그날’은 김헌창이 당시 신라의 탐욕스런 관리들에 넌덜머리를 느끼고 반란을 주도한 것으로 추정한다. 경주의 한 우물에서 어린 아이의 해골이 발견됐는데, 아이는 약 9세기 신라의 국가 제사에 인신공양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고달픈 민생을 달래기 위해 어린 생명이 희생된 것이다.
실제로 신라 하대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백성들은 당나라로 구걸을 가고 자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귀족들의 탐욕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3000명의 노비를 부리기도 하며 호의호식했다. 게다가 김헌창이 난을 일으킨 시기 왕이었던 헌덕왕은 신라판 수양대군으로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됐다. 정권이 바뀌며 좌천된 김헌창은 지방관을 두루 거치며 이렇듯 모순으로 가득한 신라의 현실을 직접 목격했고 결국 새 나라를 꿈꾸게 됐다.
신라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김헌창의 불꽃같은 삶은 10일 밤 10시30분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공개된다.
[뉴스핌 Newspim] 대중문화부 (newmedi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