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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風流 여행기] 동리 신재효도 칭찬 할 국악계 예비 거인 백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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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소질을 연구하는 학문이 사주학이다. 또 다른 말로는 명리학이라고도 한다. 이 사주학의 핵심이 음양오행이다. 음 기운이 발달해 있으면 문학적 소질이 있다. 양 기운이 발달하면 예능에 대한 소질이 있다.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다. 목이 발달하면 명예와 성장 욕구가 강하다. 화가 발달하면 화려한 예능 기질이 뛰어날 가능성이 높다. 토는 받아들이고 화합하는 기술이 발달해 있다. 금은 의리가 있으며 계획적 사고력이 발달해 있다. 수는 생각이 깊고 지혜롭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시절인연이 닿았다는 뜻이다. 백현호라는 소리꾼과 시절인연이 닿았다. 첫 번째 시절인연은 JTBC에서 작년에 방영한 〈소리의 신〉 프로그램 시청을 통해서 만났다. TV를 통해 본 백현호는 목 기운에 화가 적당히 섞여 있고, 금과 수가 발달한 모습이었다. 예능 소질과 행정 기획력, 문학적 소질을 두루 겸비한 것이다. 두 번째 시절인연은 지인을 통한 소개로 만났다. 전화로 들려온 목소리가 수리성(판소리 수련을 통해 닦아진 음)이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라는 단어가 가슴에 꽂혔다.

백현호는 전남 광양 출신이다. 광영초등학교, 광영중학교, 국립국악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지금은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풍물놀이를 배운 것이 계기가 돼 국악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중학교 때 박초월 제자 전정민(단국대 초빙교수)으로부터 수궁가, 흥보가를 사사 했다. 고등학교 때는 박송희 명창으로부터 흥보가와 적벽가 완판을 사사했다. 대학교 때는 안숙선으로 부터 만정제 춘향가를 배웠다. 또 이 무렵 조상현 문하에서 춘향가, 심청가 눈대목도 배웠다. 대학원에서는 성창순 심청가 완창을 배움으로써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사사했다. 젊은 나이에 쉽지 않은 것을 달성한 것이다.

인터뷰 장소로 들어오는 첫 인상이 참 좋았다. 예능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인 인물치레가 좋았다. 지적인 이마, 깊은 사색에 잠긴 것 같은 눈, 야망 넘치는 입 근육, 상대방을 안으며 제압하는 어깨선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생각을 학문적 준거에 의해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국악계를 이끌어갈 손색없는 차세대 국악계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관객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공연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국악계에서는 흔히 ‘비개비는 개비가 가지고 있는 절대 음역을 깰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말에 동의합니까?”

“동의하지 않습니다. 노력을 얼마만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콩 서 말을 지고 지리산 육모정에 들어가 판소리 한 바탕을 완창한 후, 콩 한 알을 계곡에 던져 콩 서 말을 모두를 없앴다는 권삼득 일화가 이를 증명합니다. 권삼득은 아시다시피 양반입니다. 판소리에 미쳐 문중으로부터 파문당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판소리를 했습니다. 그 결과 흥보가 중 놀보가 제비후리러 가는 권마성제 대목을 더늠으로 창조했습니다. 경쾌한 소리에 시김새가 일품인 말 그대로 불후의 명곡을 만든 것이지요. 국악은 끼가 중요합니다. 끼를 도와주는 것이 연습입니다. 세상사 모든 것이 그렇듯 연습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악이 되었든 민속악이 되었든 국악 가사가 요즘 사람들에게는 귀에 익숙하지가 않다. 국악의 대중화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국악인은 많지 않다. 백현호가 이 문제 해결에 벽돌 한 장 쌓는 마음으로 고려대에서 국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판소리하는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소리를 하고 있으니 관객이 판소리를 좋아하겠습니까?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 뜻을 모르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소리하는 사람은 무식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사설 정리는 학자의 몫이고, 소리는 소리꾼의 몫이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판소리 뜻을 관객들이 이해하는 가운데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판소리꾼의 몫입니다. 소리꾼은 어느 자리든 사설, 역사, 인물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문학 전공은 판소리의 연장선입니다. 고전문학 안에 판소리가 있습니다. 국문학자가 못 쓰는 논문, 국악인이 못 쓰는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한국 판소리 통사〉라는 이름으로 이 시대의 판소리 역사를 보태서 쓰고 싶습니다.

판소리 사설은 문학적 가치가 대단합니다. 고전문학 중 이 만큼 멋진 문학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뜻이 대부분 한자어이거나,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고 있어 현대인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문학적 관점에서 판소리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배님들이 판소리를 쉽게 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관객이 요구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과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는 그의 모습이 맑고 그윽했다.

국악계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선생님의 소리, 춤, 기악을 그대로 판 박듯 따라 해야만 하는 문화제 제도가 국악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음소리〉, 〈사진소리〉가 판을 치는 국악계의 현실에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없다는 말이다. 선생님으로부터 소리는 배웠지만, 내 호흡에 맞는 내 소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보존 계승만 강조되는 국악계 문화가 국악의 발전, 국악의 대중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 내내 ‘백현호의 이름을 건 흥보가를 듣는 날이 멀지 않아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터뷰 내용은 긴박감을 주었다. 창작 판소리를 젊은 국악인들의 시대적 과업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창작 판소리의 방향에 대해 물었다.

“판소리 이론을 정립한 동리 신재효(1812∼1884. 조선 후기 판소리 이론가이자 작가)의 지적처럼 모든 것을 다시 바꿔야 합니다. 함축적으로 이야기 하고, 파격적으로 표현하고, 때로는 민감한 정치현안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끝난 ‘심청이 온다.’라는 마당극에서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을 판소리 극으로 만들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그 때 그 때의 정치적 사회적 현안을 판소리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들로부터 판소리가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소리꾼은 소리로 세상 사람들을 깨우쳐 줘야 합니다. 내 철학이 들어간 소리를 만들고 내 호흡이 살아 있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판소리에만 몰입하고 싶습니다. 국악은 민족혼입니다. 국악 안에 여러 장르가 있지만 표현만 다르지 내용과 역사는 같습니다. 국악의 역사는 나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보존‧육성해야 할 문화유산입니다. 조상이 물려준 훌륭한 유산을 후손에게 전해 줄 의무감이 우리게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가는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문체부장관이 바뀔 때 마다 정책이 바뀌면 안 됩니다. 국악인들도 함께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국악인들끼리 더 소통해야 합니다. ‘나만 잘되면 돼!’ 하는 생각은 안 됩니다. 이기심 버리고 함께 호흡하면서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니 창 밖에 겨울비가 내렸다. 겨울비 속으로 저벅 저벅 걸어가는 백현호의 뒷모습이 거인처럼 보였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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