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푹푹 빠지는 뻘건 진흙 밭을 걸어들어가 만난, 그 섬의 폐촌을 끝끝내 지키려던 청년의 마음. 하루에도 수천 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기아로 죽어간다며 눈물 글썽이던 나이지리아 목사의 마음. 원폭 실험으로 팔다리가 잘려나간 자식들을 끌어안고 우는 태평양 군도의 어느 여인의 마음도. 어릴 적 추운 겨울 새벽, 꽁꽁 언 마루 바닥을 걸레로 훔치며 낮게 중얼거리던 어머니의 노랫가락도 여기에 닿아 있었다.
거친 세월의 풍파로 굳어진 아버지의 가슴 여린 안쪽에도, 팔십이 넘어 심신이 망가져도 육체가 죽어지지 않아,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똑같은 천장을 몇 년이고 망연히 바라봐야 했던 할머니의 심정에도, 이런 애잔하고 붉은 물 칠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퇴근길의 늦은 지하철에서, 온몸이 떡이 되도록 술에 취해 어디에 눈을 둘지 모르는 초조한 샐러리맨들, 새벽 김밥을 처음 팔아보는 새악시같은 아줌마들.......
이년 남짓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사회에는 여전히 불황의 음습한 공기가 깔려 있었다. 아내와 나는 둘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거리를, 피로에 쌓인 눈으로 양쪽에서 바라보며 하루하루 탈진하며 살아갔다.
아내의 음주가 늘어갔다. 말없이 지켜보는 내 안의 그을음 나는 연탄불의 시간도 늘어났다. 아내의 수척해진 몸속을 흐르는 알코올이 아내의 신경질을 어느 정도 풀어주겠지 생각하다가도, 그 알코올이 아내 내장의 은밀한 곳, 내가 닿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야릇한 추억을 녹이고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돌연 찾아오면, 나는 아파트 밖에 나가 바람을 쐬거나, 방에 들어가 머리를 움켜쥐며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곤 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아내와 난, 지울 수 없는 공감대인 아이들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처절할 정도의 애정과 집착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따끔씩 불안해 하는 아이들 시선을 눈치 챌 때는, 우리의 갈등을 속에 쌓아둔 채, 아이들에게는 정서적 피해가 최대한 덜 가도록 모진 애를 썼다.
집
내 집은 아드레날린 공장이다.
굴뚝이 안으로 나있어 방마다 연기 자욱한,
대신 밖을 오염시킨 적 없는
깨끗한 집이다.
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연기일 때
나는 수채가 되어 매연을 빨아들이고
내가 사나운 굴뚝일 때
너는 슬프게 수채 구멍을 벌린다.
이것은 안간힘이다
등을 맞대고 외줄을 타는 남녀 곡예사의 눈빛,
그 사이의 미세한 댄싱처럼.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
사랑이라고 끝까지 우겨야 할
거룩한 안간힘이다
그 안에 어린 꽃들이 피어나므로
우리가 꽃의 숲이고 숲이어야 하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