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인생의 가을, 중년은 아름다워라
- 중년예찬 1
청춘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순백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슬을 머금고 갓 피어나는 새순과 같이 청초하면서 풋풋하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가능하고 거칠 것이 없다. 청춘은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듯 희망과 열정, 그리고 용기가 샘솟는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인생의 황금기는 진정 청춘의 시기이다.
한편, 중년은 모든 외형적 조건이 최 전성기를 지나 이제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점에 와있다. 그래서 청춘에 비해 용기와 열정, 풋풋함이 덜하다. 반면 중년은 내면적으로 성숙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중년은 지나치지 않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중년은 온화하며 남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알 만큼 사려가 깊다. 남을 도와 줄 능력 또한 갖추고 있다.
중년은 사고를 깊이하기에 실수할 경우가 그만큼 줄어든다. 희끗해진 머리색만큼이나 그리고 늘어난 주름만큼이나 인생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인생의 깊이 또한 더욱 깊어가고 세련되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주름진 그 외관의 모습도 나름대로 우아한 멋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를 ‘로맨스그레이(romance grey)’라고도 하지 않는가!
청춘이 맑고 순수하다면 중년은 우아하고 세련되어있다. 청춘이 열정과 힘이 있다면 중년은 진지함과 지혜가 있다. 청춘에게 장래에 대한 밝은 희망이 있다면 중년에게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간직되어 있다.
청춘이 꽃피는 봄이라면 중년은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이다. 봄이 부드러운 연초록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정열적인 불빛과 조금은 퇴폐적인 갈색의 계절이다. 봄에는 생동감이 넘치고 만물이 소생한다.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세상을 장식한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롭기만 하다. 그리고 꿈이 있다. 모든 것을 마음만 먹으면 다 가질 수 있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꽃은 시들고, 꿈도 환상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이처럼 세월이란 거스를 수가 없기에,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아쉬워 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차분히 생각하는 여유 속에 인생의 깊이는 더욱 깊어간다. 그래서 봄은 무르익어 가지만 가을은 깊어간다. 이 가을이 깊어갈수록 애수 또한 깊어진다.
봄이 파종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가을이 달라진다. 봄에는 열심히 장래를 위해 투자를 하지만, 가을이면 지난 시절의 노력 결과를 수확하게 된다. 풍성한 결실의 계절인 것이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함이 있다.
청춘이 현란한 색상과 화려한 자태의 서양난이라면, 중년은 은은한 방향과 기품 있는 자태를 지닌 동양난이라 하겠다. 청춘이 강렬한 색상과 구도를 지닌 서양화, 그중에서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라면 중년은 담담한 색상과 은은한 여백의 공간 멋이 감도는 동양화라고 할 것이다.
청춘이 화려한 장미라고 한다면 중년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일 것이다. 장미는 화려한 자태 면에서, 진한 향기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꽃 중의 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가시가 있다. 반면 코스모스는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정감을 가져다주는 꽃이다. 장미가 만발한 정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그 진한 향기가 슬며시 부담스러움으로 다가오게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반면 코스모스 만발한 거리는 한없이 걸어가더라도 마냥 정겹고 상쾌한 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청춘이 눈 내리는 날의 밝고 상큼함이라면 중년은 비오는 날의 잔잔함과 스산함이 녹아있다. 눈이 내리면 괜히 가슴이 두근댄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젊은이들은 첫눈이 나리면 그냥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는 특별한 사연을 만들어 낸다. 하루 종일 눈을 맞으며 쏘다녀도 지치지 않고 마음이 즐겁다. 반면 비오는 날은 잔뜩 찌푸린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착 가라앉거나 우울해진다. 왠지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다. 조용히 집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호젓이 쉬고 싶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청춘이 맑지만 날선 소리를 자아내는 바이올린이라면, 중년은 다소 둔탁하지만 부드럽고 중후한 소리를 선사하는 첼로라 할 것이다. 바이올린은 사람의 마음을 맑고 밝게 해 준다. 그러나 비 오는 밤과 같이 왠지 기분이 축 처지는 날에는 첼로가 제격이라 할 것이다. 바이올린은 언제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지만, 첼로는 주인공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바이올린을 위한 곡은 양산해 내었지만 첼로를 위한 독주곡은 흔하지 않다. 다만, 현악 4중주, 현악 5중주곡들에는 첼로가 반드시 포함되어 그 역할을 다한다.
청춘이 CD 음반이라면 중년은 LP 레코드일 것이다. CD는 맑고 깨끗한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 차갑고 공허하기까지 하다. 반면 레코드판은 가끔 찌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기는 하지만 정감과 운치를 자아낸다. CD는 디지털인데 비해 레코드판은 아날로그이다. 디지털은 정확하고 편리하며 경제적이다. 이에 비해 아날로그는 정감이 있고 부드러우며 여유가 있다. 그래서 디지털에 비해 아날로그에 더 마음이 간다.
(중년예찬 2에 계속)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