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도 모질었나요? 나는 단지 우리들의 삶을 위하여, 당신과 아이들, 나, 비록 당신 추켜세우진 못했지만 명백한 우리들의 삶을 위하여, 허공의 돌에 정을 쪼아 작품 만드는 일에, 그 부질없는 반복 속에, 눈 멀도록 몰두했을 뿐이었는데.
당신 가슴에, 내 무심한 행동들이 모난 정이 되었나요? 당신마저 그 정에 찍혀 아파했나요? 세상 바람의 채찍에 맞아 귀가하는 내 모습이, 그 모진 정이 되었나요? 당신 많이 아팠나요?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당신 쪼는 모난 정이 아니라는 걸 당신도 잘 알면서도, 당신의 슬픔, 그놈의 가슴앓이가 그만 커져버려, 어쩔 수 없는 인내의 뒷마당으로 후퇴하셨나요?
미안합니다. 내 본심이 모난 정이었다면, 이리도 마음이 참혹하게 아프진 않을 겁니다. 당신이란 사람이, 미풍에도 가볍게 떠는 목련꽃처럼 연약한 여자라는 사실을, 나는 왜 몰랐을까요? 당신의 굳건한 인내, 밝은 웃음, 강인한 의지로 인해 말입니다. 나는 당신이란 목련을 감싼, 단단한 울타리인 또하나의 당신에게 속았습니다.
내게 보이는 당신의 지금 모습은, 우직하기만 하던 푸른 소나무가 한줄기 바람에 덜컥 쓰러진 모습입니다. 내 눈에 먹물 들었었나 봅니다. 목련이었구나. 그 연약한 목련 꽃이, 강한 거목의 의지로 버티며 십년 세월을 견뎌왔구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 당신이 온전히 보입니다. 내 사랑 목련, 나도 사실은 목련입니다. 그처럼 여린 가슴입니다. 세상에서의 상처가 깊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존의 길이 고달파, 원치 않는 에고의 갑옷으로 내 몸 칭칭 둘러 나 숨 막히고, 그대 숨 막히게 했나 봅니다
미안합니다. 세월의 탓이라고, 가혹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연약한 가슴의 한계였다고 말하기엔, 내가 너무 작은 사람인가요? 당신 사랑에 미흡한 졸장부인가요? 이제 당신의 아픔 속에 나, 한차례의 오열로 내 목련의 몸 둘러싼 먼지 다 씻어냈습니다. 결국은 강해진, 여린 목련의 몸으로 이 깊은 밤 당신 기다리며 순정의 촛불 켜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한스런 십 년간 들고 있던 촛불입니다. 우리들의 촛불입니다.
10.28 새벽 4시 30분. 집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실존의 시간이다. 이 실존의 시간에, 당신 참 곱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의 아파트 복도를, 뾰족구두로 또각또각 걸어올 것 같은 설레임 속에 온 신경이 기다린다. 얼마 전까지도, 너의 또각 소리는 내게 풍성함을 안겨주었는데.
이 그윽한 시간에, 당신은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아무 말 없어도, 아픔 속에 흐르는 전류 느끼면서, 나, 너와 극진한 얘기 나누는 것 같다.
이 시간들, 이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면 한이 되는가. 이 애틋함이 서서히 모나게 되면, 돌이키기 어려운 분이 되는가
나, 영원한 실존의 시간 속에 거하리라.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뼈저리게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 어떤 애증이나 순간순간 변할 수 있는 감정의 총량보다 강하게, 너무도 강하게, 내 몸을 비수의 전율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이 되어 재로 쌓이지 않고, 탄식의 한숨을 지나 내면이 아픔 속에 맑아지고 정갈해지는 실존의 진화가, 내 지독한 인내와 사랑 속에 맛깔나게 음미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