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희준 기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이용하는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하에서 규제되지 않는 차명거래 자체를 금지하고 거래자까지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심드렁하다. 차명거래를 사전적으로 금지하더라도 결국 문제가 되는 불법 차명거래는 사후적으로 국가기관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밖에 없어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선의의 차명거래를 골라내려고 이를 법으로 기술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야당 의원들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들도 차명거래 금지를 위한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발의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소속의 김기준, 이종걸, 민병두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마련했고,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도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개정안은 법안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두 차명거래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현 금융실명제하에서 차명거래는 규제되지 않는다. 실명이 아닌 가짜 이름(가명), 존재하지 않는 이름(허명) 거래만 규제될 뿐이다. 이런 허점을 막자는 게 차명거래 금지법이다.
또한 현 금융실명제하에는 실명금융거래의 의무 주체를 금융회사만으로 규제하고 있다. 거래자에 대한 법적 책임이 부여돼 있지 않은 것이다. 이에 개정안은 명의인과 실권리자 모두 모두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이종걸 의원 법안).
차명거래 유인을 없애기 위해 실명이 확인된 계좌는 명의자 소유로 추정하고 실권리자의 반환청구를 할 수 없도록 했다(민병두 의원 법안). 리니언시제도(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적용, 차명거래 금지위반에 따른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유인책도 내걸었다(이종걸 의원 법안). 현재도 차명계좌가 범죄에 이용될 경우 명의인도 처벌받을 수 있다.
◆ 금융당국, '사전적 차명거래 금지' 효과 크지 않아
금융당국은 공식입장을 아직 내놓고 있지 있지만, 사실상 차명거래금지법에 부정적이다. 우선 개정안의 취지는 동의하지만, '사전적 차명거래 금지'의 법적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차명거래를 금지한다고 하더라도 양심선언이 아니면 금융기관이 차명거래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결과적으로 범죄나 탈세는 국세청이나 검찰의 수사, 조사를 통해서 밝혀지게 되고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조세범처벌법' 등 현행법에서도) 처벌돼 결론은 똑같다. 하지만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명거래에 대한 일반인의 명확한 인식이 없는 상황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된다. 이를 막기 위한 예외조항을 만드는 것도 입법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실제 선의의 차명거래 유형은 다양하다. 부모가 자녀 명의 통장을 만드는 경우, 친목회, 동창회 등의 총무가 회비를 본인 통장에서 관리하는 경우, 문중이나 종교단체의 자산 관리자 명의 거래, 본인 명의로 계좌를 만들 수 없는 신용불량 자가 지인의 이름으로 개설한 계좌 등이 모두 차명거래다.
앞의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거래의 양태가 다양하고 목적이 많은데 (선의의) 차명거래를 입법기술적으로 적어주기는 어렵다"며 "기술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데, 잠재적으로 많은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대체로 선의의 차명거래자는 예외 조항을 두면 된다는 입장이다.
이종걸 의원은 개정안에서 배우자나 직계존비속간의 거래와 종중(宗中), 동문회, 향우회, 종교모임 등의 단체와 관련된 거래 및 신용불량자, 성년피후견인(종전의 금치산자), 한정피후견인 (종전의 한정치산자), 노약자, 장기입원환자 등의 경우 일정금액 이하인 경우에는 개정안 적용을 배제했다.
사회적 분위기도 금융당국보다는 정치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지 20년을 맞는 상황에서 차명거래 구멍이 금융실명제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의 비자금 사건에 차명거래가 이용되면서 차명거래 금지 요구 목소리가 높다. 차명거래금지가 지하경제 양성화에 도움이 되느냐, 역효과를 가져오느냐 논란이 있지만, 새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에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방법은 차명거래를 전면금지하는 것부터 개별법에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며 "좀더 균형된 시각에서 세심하고 심도있는 검토와 논의 속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