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혼자서는 못산다.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러한 관계들 속에서 남으로부터 무엇인가 도움을 받으면, 받은 것만큼 또 누군가를 도와주길 좋아한다. 한 때 상생(相生)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너도 살고 나도 살아, 함께 잘 살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 상생이라는 말을 ‘내가 너를 도와 줄 테니, 너도 나를 도와 줘야 한다.’는 것으로 잘못 해석해 ‘우리끼리 해 먹자.’는 범죄 행위의 가치로 전락되는 경우도 있었다. 불교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以生其心)’이라는 말이 있다.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맘을 내라.’는 뜻이다. 즉 대가를 생각하지 말고, 뭔가를 바라지 말고, 무념의 상태에서 행하라는 것이다.
사주에서는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을 가장 중요한 바탕 이론으로 하고 있다. 상생 상극도 음양처럼 상생은 좋고, 상극은 나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상생은 상생으로서 가치가 있고, 상극은 상극으로서 존재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정무정들이 존재함으로써 우주의 주인공이 되듯이 말이다.
상생(相生)은 목(木)이 화(火)를 생하고(도와주고), 화(火)가 토(土)를 생하고(도와주고), 토(土)가 금(金)을 생하고(도와주고), 금(金)이 수(水)를 생하고(도와주고), 수(水)가 목(木)을 생하는(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계절적 관점에서 이 상생을 해석하면 봄이 돼야 여름이 된다. 여름이 가야 가을이 된다. 가을 지나면 겨울이 온다. 겨울가면 봄이 온다는 뜻이다. 즉 스스로 무념(無念)하게 없어짐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주의 상생 철학도 어쩌면 불교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정도가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뜻이다.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말로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말하는 유교 철학이다. 이 철학이 사주의 상생에도 적용이 된다. 일반적으로 상생은 각각의 오행이 순환하면서 도와주는 긍정적 관계이다. 그러나 그 생이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나침’의 기준은 생을 받는 입장에서 2.0배 이상의 힘이 작용하면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 목다화멸(木多火滅) : 나무가 너무 많으면 불이 꺼진다.
* 화다토조(火多土燥) : 불이 너무 강하면 흙이 메마른다.
* 토다금매(土多金埋) : 흙이 너무 많으면 금이 묻혀 버린다.
* 금다수탁(金多水濁) : 금이 너무 많으면 물이 흐려진다.
* 수다목부(水多木浮) : 물이 너무 많으면 나무가 썩어 뜬다.
오행은 서로 생하기도 하지만, 서로 극하기도 한다. 여기서 극(剋)은 ‘자극하고 억누른다.’는 뜻이다. 목은 토를 극하고(나무는 흙을 붙잡아두고), 화는 금을 극하고(불은 금속을 녹이고), 토는 수를 극하고(흙은 물을 가두고), 금은 목을 극하고(금속은 나무를 자르고), 수는 화를 극(물은 불을 꺼뜨리고)하는 것을 말한다.
상극은 이와 같이 공격하고 억누르는 것이어서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극을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공격당함으로써 일종의 면역력이 생기는 등 긍정적인 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특정 오행이 지나치게 강한 세력을 가졌을 경우 이를 공격함으로써 힘의 균형을 찾기도 한다. 즉 극으로 인해 불안정했던 사주가 안정적 사주로 변화하는 긍정의 작용도 하는 것이다.
상극도 상생과 마찬가지로 극하는 오행보다 극을 당하는 오행이 강하면 오히려 극하는 오행이 힘을 잃는다. 힘의 차이는 상생과 같이 극 당하는 오행이 2.0배 이상이면 반작용을 하는 것으로 본다.
* 토다목절(土多木折) : 흙이 너무 많으면 나무가 흙에 꺾여 버린다.
* 수다토류(水多土流) : 물이 너무 많으면 둑이 무너진다.
* 금다화멸(金多火滅) : 금이 너무 많으면 불이 꺼진다.
* 화다수압(火多水壓) : 불이 너무 많으면 물이 증발한다.
* 목다금결(木多金缺) : 나무가 너무 많으면 쇠가 부러진다.
여기서 상생과 상극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상생과 상극은 서로 도와주고, 서로 공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느 한 오행이 다른 오행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상생이고, 어느 한 오행이 다른 오행을 일방적으로 극하는 것이 상극이다.
팁(TIP)3 : 아홉 수와 결혼 금기(김동완, 사주 명리학)
예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29세나 39세에는 결혼을 피하고, 환갑 전 해인 59세에는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숫자 ‘9’를 금기시한 것인데, 왜 이런 풍속이 생겨났을까?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9’란 숫자는 꽉 찬 숫자로 여겨진다. ‘9’보다 ‘10’이 더 큰 수이지만, ‘10’은 ‘0’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실제로는 ‘9’를 가장 큰 숫자로 본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이유와 결혼금기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되지만, 사람들은 꽉 찬 숫자 또는 가장 많은 숫자를 보고 나중에 닥칠 죽음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래서 ‘아홉’ 즉 ‘9’인 숫자에 해당하는 연도는 어떻게든 넘겨보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아홉수에는 변화나 변동을 삼가고 새로운 ‘1’ 즉 하나를 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홉수를 꺼리는 이유에 과학적인 타당성은 없다. 다만, 어떤 일이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려는 옛 조상들의 지혜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