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한기진 기자]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서른 한 번째 맞는 결혼 기념일에 35년 일한 정든 직장을 떠나게 됐다. 6일 물러나는 이주열(사진) 한국은행 부총재 얘기다. “사회 첫발을 내디딘 한은에서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해 와 큰 기쁨이다. 돌아갈 집에 반겨줄 아내와 자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그의 마지막 말은 후배들은 위한 당부로 채워졌고 조직에 대한 조언을 남겼다. “2년간 큰 변화가 있었다. 긍정적 변화 뒤에는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오랜 평판이 외면을 받자 직원들은 상처를 받았고 혼돈을 겪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처한 상황이 바뀌면 그것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그러나 개혁 그 자체에 조직을 맞춰서는 안 된다.” 김중수 총재 취임 이후 있었던 변화들에 대해 간접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조사국장이었던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소신을 드러냈던 바도 있어 낯설지 않은 그의 모습이다.
이 부총재는 38세의 젊은 직원을 모형개발반 단장으로 임명하는 등 변화를 추구했다. 당시 반장이었던 박양수 부장은 “나는 3급(반장 직급)도 아니었고 미국서 공부한 직후여서(당황했다)”면서 조직의 변화를 추구했고 항상 젊은 사람으로 채웠던 분”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 부총재에게 2년간 한은의 변화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던 셈이다.
궂은 일을 마다치 않는 성격을 가진 게 그다. 한은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강준오 부총재보는 그에게 닮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이 부총재에게) 국회에 가달라고 부탁하면 갔고, 정부를 설득해 달라고 하면 나섰고, 감사원에 가서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해달라고 하면 해결했다. BOK(한은)에 대한 애정을 물려받겠다.”
그는 위기 속의 남자였다. 부총재보였던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맞아 통화정책을 맡으며 금융시장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유동성 공급 등 특단의 대책을 시행했고,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사건, 일본 대지진 때는 금융시장 불안을 차단하기 위한 통화금융대책회의를 열어, 대응했다. 강 부총재보는 “10년에 한 번 온다는 위기를 재임 기간 여러 차례 맞았다”고 했다.
한은 정문을 나서면 그는 당분간 백수다. “아직 갈 자리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급격한 변화를 막아줄 바람막이가 사라졌다”는 직원들의 아쉬움보다 “한은 문밖에서는 자리잡기 어려워졌다”는 한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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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