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안보람 기자] 취업준비생들의 '로망'이 돼 온 금융권 취업의 길이 고졸자들에게도 열리는 모습이다. 시중은행들이 고졸행원을 채용했거나 채용할 방침을 속속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15년만에 찾아온 분위기에 대상자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반색하고 있다.
은행권의 이런 분위기가 다른 산업으로 전이될 경우 취직을 위한 학력인플레로 양산된 사회문제까지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 '고졸채용' 러시, 왜?
은행권에 '고졸채용 바람'이 불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은행권의 고졸채용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1998년 외환위기로 대량 실업사태가 이어지면서 고학력자들이 갈 곳을 잃자 은행은 학력이 높은 지원자들을 택했다. 이에, 신입 고졸행원은 자취를 감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당연히 고학력 신입행원들은 고졸행원들의 자리를 메워야했다.
한 시중은행직원은 "소위 말하는 스카이(SKY)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토익도 만점가까이 받아 은행원이 됐지만 입사 후 3년 동안 ATM기에 돈을 갈아 끼우는 게 나의 주업무였다"고 회상했다.
실제 고졸행원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은행창구직원(텔러)의 경우 고도의 금융전문지식이 필요 없다는 게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이보다는 고객을 대하는 능숙함이나 친절함이 더 중요하다.
굳이 고학력자를 데려다 비싼 임금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아온 터였다.
또한 특성화고등학교 출신의 경우 맞춤식 교육을 받은 데다 직장생활을 일찍 시작한 만큼 일의 숙련도가 높다는 게 은행권의 평가다. 이에, 기업은행, 농협, 국민은행, 광주은행, 경남은행 등은 특성화고등학교와 취업지원을 위한 MOU를 맺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압력을 가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최근 불거진 반값등록금 및 대학구조조정문제 등의 사회현상과 엮여 나온 움직임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세계최고수준의 대학등록금, 부실대학의 탄생 등은 취업을 위해 모두가 대학에 가야만 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 '고졸행원'의 부활, 공정사회로의 '한 발짝' 또는 '생색내기'
금융권의 고졸 채용은 꽤나 의미가 있어 보인다. 대부분 은행의 고졸채용이 사무보조와 금융텔러에 한정돼 있기는 하지만 고졸채용이 15년 만에 부활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나온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 없음에도 우리나라 은행의 창구직원은 전문대 혹은 4년제 대학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83%가 고졸인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비교적 많은 보수를 보장하는 금융업의 경우 경쟁이 더욱 치열해 소위 높은 '스펙'이 요구돼 왔다. 전체 고등학생의 85% 가량이 대학에 진학하는 기이한 현상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학력 인플레를 조장하고, 고졸자들이 설 곳은 점점 더 줄어드는 형국이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은행에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은 결론적으로 은행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전문가들만이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금융업종에 종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적으로' 대학에 가야하는 세태를 바꿔놓을 수 있다. 은행권의 이런 분위기가 제조업 등 다른 분야까지도 연결되면 그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문대 이상 학력이 필요한 일자리가 전체의 27%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학력 실업자, 비싼 등록금, 부실대학 등 최근 부각되고 있는 사회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다.
다만 이런 기대는 은행의 고졸채용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을 채용함으로써 안정성을 높여줄 필요도 있다.
한 시중은행원은 "IMF를 계기로 고졸자들 대신 대졸자들을 뽑았지만 처리하는 업무가 달라진 게 아닌데 급여를 많이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그 이전에 상당수로 뽑아놓은 기존 고졸 직원들의 사기진작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험상 일반 은행 영업점포 직원이 10명이라면 최소 5명은 기본적인 금융개념이 있는 상고졸업생으로도 충분하다"며 "2~3개월만 연수를 받으면 충분히 일 하고도 남는다"고 덧붙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고졸행원 채용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여러가지 제도 개선 등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돼 점차 개선되는 방향으로 흐르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허울뿐인 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왔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졸자들과의 차등을 아예 없애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며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실질적으로 서울의 특정대학에 국한돼 있던 은행권 취업의 문을 고졸자들까지 넓힌다는 거겠지만 모두 비정규직으로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색맞추기' 식 고졸행원 채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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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안보람 기자 (ggarggar@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