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2장은 ‘인(人)’, 제3장은 ‘법인(法人)’이란 제목하에 각각의 권리능력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법에서 인정하는 권리의무의 주체는 사람(자연인)뿐만 아니라 법인(사단법인, 재단법인, 회사 등)이 포함되어 있고, 법인은 법인을 운영하는 사람과는 별개의 인격체로 취급됩니다. 특히, 자연인과 법인의 구별에 따른 결과는 주식회사의 경우 더 두드러지는데, 주식회사는 주주나 대표이사가 유한책임을 질 뿐 회사에 대한 모든 책임(무한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인과 자연인(대표이사, 회장, 지배주주 등)간 별개취급”은 회사제도를 남용하는 사례들을 양산하게 되었고, 특히 소규모 폐쇄법인일 수록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하였습니다. 탈법행위를 할 경우에 바지사장 세우고 돈세탁한 다음 법인을 없애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사실상 개인사업자인데도 불구하고 형식만 주식회사형태를 취한 업체와 거래를 할 경우, 계약서에 상대회사의 법인인감만 찍혀 있으면 대표이사가 별도로 연대보증을 서지 않는 한 회사가 망한 다음에는 대표이사에게 돈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회사는 망해도 사장이 망하는 법은 없다.’는 말이 생긴 것이구요.
시간을 거슬러 대학강단에서 열변을 토하시며 ‘법인격부인론’의 강론을 펼치셨던 상법교수님이 생각납니다. 법인격부인론이 독일에선 ‘실체파악이론, 투시이론’으로, 미국에선 ‘분신이론, 도구이론’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교수님은 실체파악이론의 표현을 빌리시며 다소 과격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법인이란 장막 뒤에 숨어서 나쁜 짓을 하는 놈이 있는데, 이렇게 뺀질거리는 놈은 더 이상 나쁜 짓 못하게 법인이란 장막을 확 걷어낸 다음, 그놈의 멱살을 확 잡아 끌어내야 돼. 이것이 바로 법인격부인론이란 것이지.” 세월이 흘러 현재의 개정상법에 따르면, 자본금 1000만원짜리 회사도 만들 수 있고, 1인회사도 명문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처럼 사업목적이나 규모에 따라 자본금을 적정하게 납입해야만 법인설립을 허용한다는 법인설립제한규정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회사들이 명목상으로만 회사이지 실질은 껍데기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따라 법인격이 남용될 가능성은 한층 더 커졌습니다.
법인격부인론은 많은 발전과정을 거쳤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판례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법인격부인론을 전격수용한 판례(대법원 2001. 1. 19. 선고 97다21604 오피스텔 분양사건)까지 등장했습니다. 다만, 미국판례는 법인격을 남용하는 경우 개인에게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약 40%에 달함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판례에서만 인정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법인격부인론은 판례상 개인이 불법목적이나 채무면탈을 목적으로 법인격을 남용한다든지, 법인이 형해화되어 빈껍데기에 불과할 경우에 채택되고 있습니다. 특히 회사가 페이퍼컴퍼니인 경우 판례는 법인격부인론의 채택에 우호적입니다. 그래서 해상사건관련해서 세금 부담 경감, 인건비 절약 등을 위하여 선박을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경우(편의치적)가 많은데 이 경우 거의 예외없이 법인격부인론이 채택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남 스타타워빌딩에 대한 양도세를 페이퍼컴퍼니인 ‘스타홀딩스’가 아닌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부과시켰던 사례와 같이 조세사건에서도 ‘실질과세원칙’의 일환으로 법인격부인론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판례에서는 사해설립(詐害設立)의 경우 법인격부인론을 적용하여 2차 설립회사에 책임을 묻는 사례가 증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즉, 대표이사가 채무가 많은 법인을 폐쇄시키고, 명의를 빌려 똑같은 회사를 새롭게 만들 경우 새로이 설립된 회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게끔 하고 있는데, 이는 영업양도의 경우 양수인이 양도인과 연대책임을 진다는 상법 제42조, 제44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95다12231, 2009다77327, 2006다24438, 2002다66892 등).
아직도 판례가 법인격부인론 적용에 조심스러워 하는 부분은 페이퍼컴퍼니가 아닌 일반회사의 경우인데, 이때에도 건설업체나 건설시행사처럼 법인격을 남용할 가능성이 많은 경우에는 ① 개인의 회사에 대한 지배력, ② 개인과 회사자산의 혼융정도, ③ 회사자본의 불충분, ④ 법인격 남용의 부당한 목적 등을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사나 업무집행지시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규정(상법 제401조 및 제401조의 2)에 따라 개인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변호사 임상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