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지난 2000년으로 되돌려보자. 롯데칠성의 2000년 상반기 순이익은 422억원이었다. 이는 1999년 전체 순이익 208억원 보다 2배나 많은 수준으로 그야말로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공장 기계의 감가상각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 당기순이익이 증가하고 있었고, 유통구조를 개선시킨 효과가 서서히 힘을 발휘하던 것. 여기에 '2% 부족할 때'라는 신상품이 대박이 나기 시작했던 때다.
그렇지만 시장은 이를 몰라줬다. 주가는 9만~10만원 정도로 시가총액이 1200억원에 불과했다. 연간 순익이 800억원이 난다면 PER은 1.5배밖에 안되는 것.
이 부사장은 그날부터 닥치는대로 주식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지분율 17.4%를 넘어 1대주주인 18.4%까지 이르게됐다.
"어느날 전화가 왔더라고요. 신격호 회장보다 많은 지분을 보유한 의도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최대주주보다 그 주식에 더 많이 보유했을 만큼 당시 제게는 더없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러던 그도 연일 거꾸로 가는 시장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 사들이고 있는데 주가는 8만원, 7만원 계단식으로 떨어지기만 했다.
"그쯤되니 '내가 뭔가 잘못 계산한 건가'하는 불안감이 들어군요. 공장부지가 1만 7000평인데 혹시 1700평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공장으로 달려가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가 추가매수를 멈췄던 6만원이 바로 롯데칠성의 '바닥'이었다. 이후 롯데칠성은 2001년 40만원대, 2002년 80만원대, 그리고 2006년 110만원까지 내달렸다. 이 부사장은 롯데칠성으로 400%의 투자수익률을 거뒀다.

◆ "최악의 업황이 매력적?"
인터뷰 내내 이 부사장은 자신을 키워준 가치투자의 대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느라 바빴다. '거래의 신 혼마', '빌 밀러의 기술주 투자' 등 자신의 책장 앞으로 걸어가 직접 책을 꺼내 보였다.
"혼마가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딱 하납니다. 바닥에 사서 천장에 팔라는 것이죠. 그 방법은 단 하나, 목숨 걸고 사라는 거에요. 하하하"
누구나 바라는 투자이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투자임을 잘 알기에 이 부사장은 먼저 웃었다. 그는 "검은 바다에 뛰어드는 것보다 더 큰 공포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공감했다.
하지만 업황이 최악일 때 재무구조가 건전한 기업이라면 투자를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부사장은 "기업의 가치와 주가는 반드시 정(正)의 관계로 간다는 확신이 있다"며 "오히려 업황이 좋아 경쟁이 심화되면 기업의 가치를 갉아 먹는 부작용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주가 무한 상승할 때까지 무조건 보유하는 전략도 취하지 않는다. 그는 "기업이 그 가치 수준의 주가에 도달하면 추가적으로 상승이 유지된다고 하면 매도한다"고 했다. '헐값에 사서 제값에 판다'는 가치투자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치투자에서 로스컷은 있을 수 없다"며 "기업가치의 훼손이 유일한 리스크일 뿐 가치의 변화가 없다면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투자철학이고 확신"이라고 강조했다.
◆ "싸고 좋은 기업이 없어지고 있다"
한편 이 부사장은 요즘 '이익의 질'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가치투자라는 개념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어느덧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고 확산되면서 진정한 가치주를 만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
가치투자 초창기에는 워낙 저평가된 종목이 많아 종목을 고르기 어렵지 않았다. PER 3배인 종목도 더 싼 종목이 많았기에 손나가는 데 망설여질 정도였다고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종목을 찾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예전에는 저PER 종목을 매수하면 10배가 오르는 일이 흔했을 정도로 살 주식이 너무 많았지만 이제는 싸면서 좋은 기업이 없어지고 있다"며 "이는 가치투자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기업 선정이 힘들어진 측면이 있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어찌보면 그만큼 가치투자의 '가치'가 시장에서 증명되고 있다는 방증이기에 행복한 고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시간 안에 답이 있다"고 말하던 이 부사장은 "때문에 요즘은 무협지를 즐겨보게 된다"고 귀띔했다.
그는 "가치투자는 시간이 경과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 시간을 잊고 세월을 이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래서인지 요즘은 무협소설에 손이 자주 간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가 무협지에 세월을 잊는 동안 가치주들의 성장이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제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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