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잭슨홀 심포지움(Jackson Hole Symposium)은 급격한 금융 변화 속에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중앙은행이 단순히 금리조절과 금융안정성을 책임지는데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거시경제와 자본시장의 여건을 책임지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심포지움에서 큰 쟁점이 됐다.
특히 평소와는 달리 위기의 시간에 중앙은행이 화재를 미리 예방하고 즉시 대처하는 '특급소방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위기와 거품 붕괴의 '사후 청소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같은 제안은 과거에 이런 식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이 사실상 중앙은행 이상의 영역까지 확대될 필요는 없다고 했던 시각에 대한 자기비판에서 출발하지만, 당장 이런 부분까지 세세한 논쟁은 전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나 거품이 발생할 때까지 좌시했다가 사후청소하는게 맞는다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좋지 않은 변화일 수도 있다.
지난 해에 "잘못된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의 결정에 대해 연준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했던 버냉키는 이런 부분까지 책임질 수 있는 금융당국 체계의 구축을 제안했다. 이 단위가 연준이어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한편 위기가 여전히 진행형인 가운데, 그 동안 공세적인 연준의 대응이 올바른 것이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는 신용경색이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컨센서스도 부족함을 시사한다.
때마침 미국 재무부가 양대 모기지업체에 대해 공적 구제를 단행해야 하는지로 시장의 관심이 이동한 덕분에 중앙은행들은 여유를 벌었을 뿐이다.
그 함의가 어떤 것이든 현재 중앙은행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모두다 소진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중앙은행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충분한 시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인플레 압력이 완만해지는 것에 기대려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인플레 파이팅을 가장 우선시하는 중앙은행들은 유가가 쉽게 안정될 것이라고 단정짓지 말라고 경고했다.
라일 그램리(Lyle Gramley) 전 연준 이사 출신이자 현재 스탠포드그룹의 선임경제자문이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남지 않았으며, 자본시장이 스스로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버냉키, '위기 억제' 필요 주장
버냉키는 확실히 1년 전과 비교할 때 입장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연준의 임무를 단순히 금리조절과 금융안정에서 확대, 금융 위기(공황)를 억제할 책임을 지니는 기관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이 같은 그의 제안을 아직 구상일 분 수많은 기술적이며 정치적인 장애물들을 통과해야 실현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작금의 위기와 같은 상황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필요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버냉키는 잭슨홀에서 "연준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금융 규제당국들은 개별 기관들의 재무 여건만 따로 떼어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나아가 체계적 위험과 약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처럼 개별 기관을 상대로만 위험을 줄이는 대처가 체계 전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특히 경기 둔화 시기에 감독당국이 특정 개별기관의 재무 건전성을 우려할 경우 매우 보수적인 대출 정책을 유발할 수 있는 반면, 거시전반을 고려하는 감독당국은 이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면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기가 확장기에 있을 때 단일한 기관에서 위험이 집중되는 것을 수용 가능할 일이지만 다수 기관들이 한꺼번에 위험을 집중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버냉키의 제안은 부분적으로는 연준이 지금처럼 주식시장이나 주택시장의 거품을 분리해 내는 일을 주관할 뿐 아니라, 미래에 이 같은 거품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책임성을 가지게 하자는 것을 포함한다.
연준은 여전히 금리 정책은 거품에 대응하기에는 너무 '무딘 정책 수단(blunt tool)'이라고 말하면서, 금융 규제당국이 좀 더 외과의와 같은 접근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 규제당국이라고 해서 거품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미리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외과적 대책들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지, 혹은 무차별적인 대출 사업이 규제의 손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기관들로 이동해버리지나 않을지 확실치 않다.
특히 미래 자산시장 붕괴를 미리 막을 경우 얻는 막연한 혜택이 경제활동을 억제하고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비용보다 더 크다는 것은 확실한 지도 의문이며, 연준이 그렇다는 판단을 내린다고 해도 기업과 그들의 정치적 동맹군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버냉키 의장은 분명이 이런 점들에 대해 생각하는 눈치다. 그는 "금융시스템 전반의 과도한 집중 혹은 보편적인 위험 노출에 대해 경고할 때 규제당국은 특정 자산 가치가 잘못되었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며, "위험한 행위는 여타 금융기관이나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감독당국의 접근방식은 모든 금융기관들로 적용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이런 감독 당국의 역할을 누가 수행해야 할 것이냐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버냉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5개의 연방 은행규제당국, 50개의 주 규제당국 그리고 별도의 주식 및 선물 규제당국 그리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과 같은 업체에 대한 새로운 감독당국이 존재하며, 현재와 같은 감독 체계는 그가 제시한 새로운 감독당국의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버냉키는 당연히 그 새로운 역할을 연준이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연준이 금융안정성에 대해 주로 책임지게 하고 다른 규제당국에 그 통합 기능을 부여하자는 입장으로 보인다.
한편 버냉키는 연준의 권한을 확장할 경우 연준이 '중앙은행'이 아닌 좀 더 큰 정치적 목표를 가진 전혀 새로운 조직이 될 위험, 나아가 그런 시도가 실패할 경우 명성이 훼손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연준이 베어스턴스과 같은 업체를 구제하는데 적합한 기관은 아니며, 이는 재무부와 같이 의회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이 비은행권 기관의 파산이 체계적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개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 뷰이터, "연준 금리 너무 내렸다" VS. 신현송 "금융불안 감안한 것 올바르다"
이번 잭슨홀 심포지움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윌렘 뷰이터(Willem Buiter) 전 영란은행(BOE) 정책위원이었던 런던 정경대(LSE) 교수의 연구 논문이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발생한 이번 금융 위기에 대한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영란은행(BOE)의 대처를 모두 비판하고, 그 중에서도 연준에 대해 가장 혹평했다.
특히 뷰이터는 "미국은 기준금리를 너무 과도하게 내려 인플레 파이터의 명성을 위험에 빠드렸다"고 주장했다. 연준이 주택시장의 위기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과도평가한 나머지 너무 급격하게 금리를 인하해 인플레이션 위험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정책금리라는 것이 유동성 및 청산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뷰이터는 자산가격 거품은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그러나 정책금리로 안되는 이 문제는 보다 적절한 규제를 통해 해소해야 할 것이라며, 그 동안 연준이 팔짱끼고 사태를 관망한 것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준이 거품이 터지고 난 뒤 '사후 청소'에 나서야 한다는 식의 연준 당국자들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이런 점에서는 금리를 크게 내리지 않은 ECB나 BOE도 비판했다.
"이들 중앙은행들은 마치 반쯤은 국가의 재정기관처럼 행동하면서 은행과 여타 레버리지가 큰 금융기관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했다"고 뷰이터는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중앙은행의 오류가 인플레이션 압력 상승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뷰이터의 비판에 대해 프레드릭 미시킨 연준 이사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상황에서는 좀 더 공세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며 연준의 과감한 금리인상 및 유동성 지원이 정당했다고 방어했다.
한편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자본시장 담당 이코노미스트 토비어스 아드리안(Tobias Adrian)과 함께 발표한 논문을 통해 "금융안정 대책과 연준의 금리정책을 분리하는 것이 미국 경제에 최선의 길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연준의 단기금리 조절과 금융안정 대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며, 신용위기에 금융기관들의 무질서한 레버리지 청산과 포지션 축소를 예상하는 통화정책이 실물경제활동의 약화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금융부문의 스트레스 억제를 명시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준의 단기금리 조절은 이것이 장기금리에 미치는 함의나 이를 통한 기대인플레이션에 대한 작용 때문에 일부 정책당국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된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하지만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에는 그 영향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30년물 장기 모기지 평균금리는 지난주 6.47%로 1년 전과 마찬가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연준의 단기금리 조절의 통로가 막혀있기 때문에 금리인하를 통한 총수요 자극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연말부터 버냉키 의장은 유동성 공급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 카드도 대부분 소진했다.
지금 금융시장은 연준이 아니라 재무부로 관심을 이동하고 있다. 정부 보증기업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구제 여부가 최대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여기서도 '대사불사'라든가 '도덕적 해이' 쟁점이 꾸준히 따라 다닌다.
뷰이터 교수의 논문에 대해 비평하는 입장을 맡은 앨런 블라인드 전 연준 부의장은 "네덜란드 소년"에 연준을 비유했다. 만약 이 소년이 둑이 새고 있는 것을 직접 손가락을 집어넣어 막지 않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서 그냥 집에 갔더라면, 이 소년을 포함해 반경 수 마일 내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물에 잠겼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편 이번 심포지움에서 ECB에 대해서는 유럽 대형은행이 실패할 경우 심각한 전염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비용분담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프랭클린 앨런과 엘레나 칼레티는 유럽과 세계 자본시장이 위험에 처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 주요인사들, 어두운 경기 전망 내놓아
잭슨홀에 모인 전문가들은 대부분 작금의 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이에 따라 경기 전망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내다봤다.
버냉키 의장은 금융 위기에 따른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난해 잭슨홀 심포지움 직전에 발생한 금융 폭풍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으며, 그것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경제활동 약화와 실업률 상승이란 형태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만해지기를 기대한다는 그의 발언과 함께 이 같은 경기 판단은 당분간 금리인상은 없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리셰 ECB 총재는 금융혼란에 대한 중앙은행의 대처를 방어하면서, 당분간 금융혼란의 태풍이 잦아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상당한 조정국면이 전개되기는 해지만, 여전히 어려운 금융시장 조정국면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존 립스키(John Lipsky)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는 로이터통신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혼란은 빠르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하반기에 명백한 경기침체에 빠지지는 않는다고 해도 일시적인 경기 위축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마틴 펠드스틴(Martin Feldstein)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지금 우리는 금융위기의 한 가운데 있으며, 경제는 침체로 빠져들고 있고 통화정책은 최대 완화 수준에 있고 재정 지출은 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에너지와 식품 물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 위험으로 인해 추가 금리인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겸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이사는 "지난 1년여 동안 가장 어려운 금융 위기가 전개되면서 인플레 상승, 경기 둔화 그리고 신용 경색과 유동성 위기 확산 등 복잡하고 상호제약하는 어려운 여건에 직면했다"고 우려했다.
그는 금융시장이 신뢰를 회복하는데는 몇 년이 소요될 것이라며 당분간 어려운 시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