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에서 억세게 운이 나쁜 사람들이 있다.
주식이든 집이든 나만 사면 내리고 팔면 또 오른다.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수억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뒤늦게 뛰어드는 대부분의 개인이나 서민들이 그렇다. 반대로 소수이긴 하지만 사기만 하면 오르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도 있다.
이는 단순히 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금리 상승기에 집을 사고 하락기에 내다 팔면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도 재테크에 성공하기는 힘들다. 큰 흐름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 곳곳에서 달러 매도 신호 ◆
국가로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도 다수의 서민들이 범하는 오류에 빠진, '억세게 운 나쁜 국가'가 아닐까 싶다.
앨런 그린스펀 前 연준(FRB) 의장이 "미국의 막대한 대외불균형이 조정되면서 달러화 약세가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달러화 가치가 미국의 대외수지의 변화를 이끌어 낼 때까지는 하락추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한 가지 통화로 모든 자산을 보유하는 것은 성실한 투자원칙에 위배된다"는 견해를 보였다.
산유국들이 미국 달러를 내다팔고 있고 달러화 가치는 더 하락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수년 동안 이 같은 사실이 경험적으로 확인될 것이라는 친절한 '예언'까지 덧붙였다.
결국 달러화 가치가 몇 년간 더 떨어질 것이니, 보유자산의 구성, 즉 포트폴리오를 분산투자원칙에 따라 재구성해야 하며, 외환의 경우 외환다변화 정책이 현명하다는 권고인 셈이다.
(이 기사는 12일 오전 11시 57분 유료 기사로 송고된 바 있습니다.)
◆ 반대로 가는 한국정부 ◆
그러나 우리나라의 달러 보유액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올 11월말 현재 2,342억6,000만달러로 11월에만 48억달러가 늘었다. 2003년말 1,553억5,000만달러와 비교하면 3년도 채 되지 않아 무려 789억1,000만달러가 늘었다.
중국, 일본, 대만 다음으로 외환보유액이 세계 4위까지 올라갔다.
정부는 중국(1조96억달러)과 일본(8,856억달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며 애써 위안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보다 인구나 경제규모가 훨씬 큰 인도(1,671억달러), 독일(1,083억달러), 프랑스(909억달러)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통일비용을 감안하면 외환보유액을 3,000억달러까지 늘여야 한다는 말도 했다가, 올해 북한 핵실험 당시에는 "많은 외환보유액 덕분에 국가 신용등급이 유지되고 있다"며 긍정적 부분을 부각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문제는 달러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
지난해 통화안정증권 발행, 외국환평형기금 예치에 따른 이자부담 증가만 9조3,600억원에 달했다. 2003년 이후 외평기금의 누적적자만 18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총자산 가운데 외화표시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 반면 일본은 5%가 채 되지 않고 영국과 독일도 20~30% 수준에 불과하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그대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 권오규 부총리, "외환다변화는 언급 말아야" ◆
결국 우리나라도 외환다변화 정책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이와 관련한 논의는 공론화조차 쉽지 않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7일 정례브리핑에서 외환다변화 추진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어느 나라 정부도 외환보유고의 구성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며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전세계 4위의 대규모 외환을 갖고 있는 경우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언급은 하지 않은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말을 아끼는 데는 지난 시절 '설화(說禍)' 경험도 한 몫 하고 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투자대상 통화를 다변화하겠다"고 국회에서 발언했다가 달러/원 환율이 급락하면서 법으로 보장된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할 뻔 했다. 국회에서 이례적으로 여야 의원들이 자진사퇴 압력을 가한 것. 박 전 총재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 뒤에도 설화를 입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뻔히 닥쳐올 문제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지난 해 한은은 1조8,7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그 규모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는 막대한 달러유지 비용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외환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이 걱정된다면 국회와 비공개로 조용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다.
◆ 사야 할 때는 버렸던 한국정부 ◆
한편 한국 정부는 달러를 보유해야 할 때는 과감히 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바로 IMF 외환위기 때다.
당시 정부는 환율이 급등 흐름을 보이자 원화가치 유지를 위해 달러화를 마구 팔았다. 물가안정이라는 큰 구실이 있긴 했지만 달러 매도는 결국 외환보유고 소진 사태로 이어졌고 외환위기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결국 정부는 달러를 가져야 할 때 던졌고, 던져야 할 때 더 가졌다. 일반 재테크의 경우라면 전형적인 '실패의 룰'(rule)에 따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부와 당국은 국민 민복을 위해 통화가치의 안정과 거시 및 금융시스템상의 안정성 등을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특히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최종대부자로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결국 ‘과소’도 문제이지만 ‘과잉’도 문제이다. 이는 국가 차원의 위험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정부나 당국한테 일반적인 재테크의 원칙을 따르라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비 차원에서, 즉 국가 차원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중요하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결국 외환보유액도 ‘적정 수준’이 문제이고 이를 위해 ‘과잉’부분을 얼마나 어떻게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달러 부족은‘국가 파산’으로 이어졌지만 달러를 과다 보유한 지금은 되레‘한은 파산’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대로 가면 한은은 조만간 내부 적립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은이 적자면 세금으로 메우면 될 일이라고 간단히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한은은 통화정책의 주체이고 통화정책은 독립성이 필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 통안증권의 국고채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통화정책 수단을 포기하겠다는 이면에는 통안증권 이자부담과 적자에 대한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2006년도 2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한은이 얼마의 적자를 기록할지 내심 궁금하다. 그 대책으로 무얼 어떻게 실행해 갈지 더더욱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