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환시장이 계절이 바뀌고 명절 연휴를 보낸 이후에도 좀처럼 휴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려 외환딜러들의 답답한 한숨 소리로 시장의 속병은 깊어가고 있다.
환율은 방향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을 뿐 외환시장의 활력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시장이 죽은 것이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의 일부 딜러들을 통해 청취한 현재 분위기는 한마디로 “Idea가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유기체에 가까운 시장의 생리를 감안하면 현 상태는 좀 과장되게 표현해서 ‘재앙’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한 시중은행의 딜러는 “환율 방향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며 “역내외 모두 숨을 죽인 채 거래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이어 “당국이 방어선에서 철수하지 않거나 달러/엔 환율 등 대외변수의 큰 변화가 없다면 탈출구가 없다”고 덧붙였다.
외환거래의 주연배우격에 해당하는 외환딜러는 뒤안길로 물러난 채 외환당국의 눈치만 살피면서 속앓이만 하고 있다. 활발하게 거래에 나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주체들이 딴전만 피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는 현 외환시장의 주연배우가 ‘외환당국’으로 바뀌었기 때문. 당국이 시장을 단단히 틀어쥐고 손아귀에서 환율을 주물럭거리는 ‘거대한 손’이 돼버린 것. 당국이 1,170원을 단단히 틀어막고 고집을 꺾지 않고 있어 딜러들은 거래에 거의 손을 뗀 채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달말 당국이 달러매수 개입을 통해 1,170원을 강력하게 막은 데 이어 한가위 연휴를 보낸 이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연휴 직후 월요일 반짝 상승에 이어 환율은 하락 요인이 우세한 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환율은 거듭 1,170원이 막혀 딜러들은 당국의 입김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딜러는 “당국도 현 경제상황 등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현재는 너무 한 것 같다”며 “외환딜러들이나 중개사들이 고사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은행 딜러는 “1,170원이 뭐길래 이렇게 막는 지 당최 모르겠다”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세계 10대 교역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경제 규모에 비해 외환시장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런데다 최근 달러/원 환율의 움직임은 당국의 의도에 끌려가듯 ‘고정환율제’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어 시장 발전을 꾀하고 환율은 시장 자율에 맡겨져야 한다는 ‘대의명분’에도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시장 원리를 존중하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며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말로만 외칠 뿐 실제로 매우 강력한(하드) 시장 관리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의 딜러는 “시장 심리는 아래쪽이나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물론 환율 안정을 바라는 당국이나 일부 업체의 관점에서 현재와 같은 상황은 그닥 불만스럽지 않다. 현재 수출에만 기댄 경기로 보아 당국도 수출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환율의 하락을 마냥 방관할 수만은 없다. 특히 태풍으로 인한 수출차질이나 경제성장률 하향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당국으로선 부담이다.
업체들도 환율의 급등락이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 부담으로부터 한숨을 돌릴 수 있고 자금운용을 안정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일부 외환딜러이 지적하듯 시장의 자율 조정 능력에 대한 얘기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 딜러는 “시장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움직이는 유기체다. 환율이 하락 요인에 직면해 내려섰다가도 자율적인 조정 심리에 의해 반등하는 것이 자연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일방적으로 한쪽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음을 당국도 감안해야 한다”.
다른 딜러는 “당국에서 이런 식으로 막다가 대내외 여건의 급작스런 변화로 인해 1,170원이 깨질 때 낭패를 볼 수도 있다”며 “1,170원이 무너지면 봇물 터지듯 급락해 이 때는 더 큰 비용이 들 가능성도 열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김준수 기자 jslyd0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