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서울시립미술관이 8월 27일 오윤 40주기전을 열었다
- 유족 기증 860건 중 300여 점과 대표작 31점을 공개했다
- 판각·노트·드로잉으로 창작과정과 민중미술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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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기증 컬렉션 860건 중 작품 31점, 목판(판각), 드로잉, 노트 등 300점 전시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오윤(1946-1986)이 돌아왔다. 민중의 삶과 전통문화·사상을 예술에 녹여내며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했던 오윤은 마흔이란 아까운 나이에 요절했다. 그가 모처럼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떠난지 40년이 됐지만 그가 남긴 목판화 속 '칼칼한 칼맛'은 더없이 생생하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은 오윤의 작고 40주기를 맞아 소장자료 기획전 《오윤》을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14일까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개최한다.
오윤은 대학 재학시절이던 1969년 '현실동인'을 창설했고, 1979년에는 '현실과 발언' 그룹에 참여하며 우리 현실과 미술의 관계를 치열하게 모색하면서 강렬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문학·출판계와도 긴밀하게 교류하며 판화와 출판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킨 문화행동가이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굿과 춤, 신명 등 전통문화의 생명력을 바탕으로 민족의 한과 삶의 에너지를 역동적인 형상으로 풀어내며 예술적 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1986년 인사동 그림마당 민에서 첫 개인전 '오윤 판화전'을 개최한 뒤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오윤이 남긴 파워풀하면서도 날선 칼맛이 펄펄 살아꿈틀대는 목판화 작업은 작가 사후 많은 미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엄혹했던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각예술의 첨병으로 목판화는 출판미술, 벽보, 걸개그림 등으로 확장했고, 민중과 뜨겁게 소통하며 '신명의 미술'로 또렷이 자리잡았다.
오윤을 중심으로 점화되기 시작했던 1970~80년대의 한국 현대목판화는 오윤 이후에는 강경구 홍선웅 홍성담 류연복 유근택 등의 다수의 작가가 뒤를 이으며 한국 현대목판화계를 견인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특별히 종로구 평창동의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열리게 된 것은 지난 2024년 작가의 유족이 오윤의 작품과 판각, 드로잉 등 오윤 컬렉션 860건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미술관 학예연구팀은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자료를 2년간 분류·정리하고 연구하며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치열했던 창작과정을 재조명하는 소장자료 기획전《오윤》을 선보이게 됐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860건의 오윤 컬렉션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었던 판화 원판(판각)과 습작, 드로잉, 노트 등 자료 300여 점을 선별해 오윤의 주요 작품 31점과 함께 전시를 꾸렸다. 전소록 미술아카이브과장은 "한국 현대 목판화계에 큰 획을 남겼던 오윤의 판화 작품과 함께 그의 아카이브를 동시에 조명함으로써 오윤의 예술을 현실과 역사, 사상과 문화가 교차하는 입체적인 세계로 살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즉 완성된 작품만 놓고 '오윤 예술'을 조망하는 기존 접근과는 달리, 작품과 함께 남겨진 판화 원판및 여러 권의 노트, 드로잉 등 다양한 아카이브를 통해 그의 예술이 형성되는 구체적인 과정과 배경을 살펴봤다. 바로 이 점이 이번 전시의 차별점이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확인된 1986년 그림마당 민의 영상기록 《오윤 판화전》도 전시실 한켠에서 최초 공개돼 시선을 모은다.
오윤은 서울대학교 조소과 재학 시절 드로잉과 노트에 '개도치'라는 자호를 즐겨 사용했다. '개도치'는 홍명희(1888~1968)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오가의 별명으로, 삶의 터전에 대한 애착으로 묵묵히 청석골을 지키는 인물이다. 오윤은 개도치에 여러 한자를 붙여 사용했다. '미련할 정도로 칼에 사로잡힌 사람' 또는 '하찮고 낮은 자리의 사람', '길을 고치는 사람'이란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대입시켰다.
이같은 언어유희는 조각도와 판화에 대한 끈질긴 집념과 사랑, 그리고 민초의 자리에서 예술의 길을 당당하게 열고자 했던 오윤의 작가적 태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조각도(칼)를 부여잡고, 목판을 끝없이 파내며 독보적인 한국의 목판화를 만들어냈던 작가와 홍명희 소설 속 '개도치'(칼에 사로잡힌 사람)은 너무나도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오윤은 '갯마을' 등을 쓴 소설가 오영수(1909~1979)의 아들로 194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외조부와 외삼촌은 부산 동래에서 전승되는 민속춤인 동래학춤의 명수였기에 자연히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접하는 환경서 자랐다. 오윤은 외삼촌을 통해 동래학춤과 그 춤사위를 기록한 무보에 관심을 가지며 전통연희에 빨려들어갔다. 또 서울대 미대에 재학한 누나 오숙희는 오윤이 미술계와 문학계 인물과 교류하는데 중요한 연결고리가 됐다. 197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민중미술가로 활동했던 그의 목판화에 전통예술과 한국의 근현대사, 그리고 민중의 곡진한 삶이 녹아들어있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오윤이 남긴 다양한 아카이브를 따라가며 그의 작품을 다시 곱씹어보는 연대기적 흐름으로 구성됐는데 그의 노트와 메모에서 발췌한 제목을 붙인 6개의 장으로 꾸며졌다.
첫 장인 '개도치 오윤'은 서울대학교 조소과 재학시절 헨리 무어, 자코메티 등 서구 모더니즘 조각과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의 사회참여적 서사가 담긴 벽화에 심취하면서도 판소리, 탈춤 현장을 찾아다니며 민중적 정서를 조형화할 방법을 탐구했던 시기의 초기작들이 나왔다. 1969년 '현실동인' 시기의 작업과 작가가 즐겨 사용했던 자호 '개도치'를 통해 조각도와 판각에 대한 집념, 민중의 자리에서 예술의 길을 찾고자 했던 태도를 조명하고 있다.

두번째 장 '땅에 넋이 있지라' 는 오윤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자상과 부자상 등 가족 형상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을 통해 민중의 삶과 상처를 감싸안은 민중미학을 살핀다."땅에 넋이 있지라, 내가있지라, 다들 있지라"라는 드로잉북의 메모에서 사람들의 삶과 넋이 깃든 장소로 땅을 바라보았던 오윤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섹션에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를 품에 안은채 절규하는 모습이 등장한 '대지', '애비와 아들'같은 초기 대표작들이 내걸려 아이를 지키려는 결연한 몸짓과 저항하는 눈빛을 통해 격동의 역사 속 민중의 삶을 감싸안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난다.
오윤은 한국전쟁과 분단이 남긴 아픔에 관심을 갖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절절한 모습을 통해 개인의 슬픔을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확장했다. 작품을 통해 그들의 상처를 애도하고 위로하고자 했던 것. 동학농민운동과 암태도 소작쟁의에서 1980년대 현실에 이르기까지, 오윤의 어둡고 질박한 판화에는 땅을 딛고 살아온 민중의 고통과 강인한 생명력이 켜켜이 담겨 있다.
이어 3번째 장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는 대학 졸업 후 경주와 경기도 고양에서 이어간 전돌작업과 수유동 가오리에서 만난 이웃들의 삶을 통해 주변을 관찰하고 기록한 오윤의 작업시기에 주목한다. 노동자 오후식을 비롯해 삶의 현장에서 마주한 이들의 모습과 '반야심경'의 구절이 함께 남은 드로잉과 노트를 통해 오윤에게 작업은 세계를 이해하고 현실에 응답하는 하나의 수행이었음을 살펴본다.

다음 장 '응당 무엇을 표현하는가'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견인차였던 '현실과 발언' 활동을 중심으로 오윤이 작품과 글을 통해 제기한 미술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조명한다. "응당 무엇을 표현하는가", "왜 당신은 작품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왜, 누구를 위해 표현할 것인지 되물으며, 미술이 현실과 관계 맺고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의 예술관을 분석했다.
이 시기 오윤은 유화작업에 골몰했는데 당시 한국사회는 빠른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루는 한편, 민주화와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었다. 오윤이 이 때 발표한 '마케팅' 연작은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욕망과 소외,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그는 사회뿐 아니라 미술계 내부를 향해서도 아픈 질문을 던졌다. 삶과 동떨어진 미술과 엘리트주의를 경계하며, 미술의 제대로 된 역할을 고민하기도 했다.
5장 '나가 포함된 집단적 흥'은 1984년 건강악화로 진도로 요양을 떠난 이후 굿과 무가, 구비문학 등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오윤의 예술세계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죽음이 덮쳐옴에도 오히려 가장 파워풀한 작품들을 남기며 마지막 불꽃을 태운 작가의 창작혼이 관객의 발길을 붙든다.
마지막 6장 '나두야 간다'는 고등학생이던 1961년 부산과 남도일대를 무전여행하며 남긴 여행일지를 출발점으로 그의 삶과 창작의 궤적을 되짚는다. 학창시절의 사진과 부산·경주·지리산 등 여러 지역에서 남긴 드로잉과 노트, 판화 제작에 사용한 도구를 통해 직접 걷고 보고 기록하면서 작가로서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쌓고자 한 과정이 흥미롭다.

한편 오윤에게 '출판미술'은 중요한 창작 활동 중 하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문인과 출판인과 교류하며 45권의 책(시집및 소설)에 표지화와 삽화를 제작했다. 특히 역사와 사회현실을 다룬 책과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조명한 저술에 관심을 갖고 공동작업을 했다. 45권의 출판물에는 판화 137점과 그림 76점이 실렸다. 현재 확인되는 오윤의 판화가 200여 점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수 작품이 책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경리의 '토지', 김지하의 시집 '오적',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등 수많은 책들의 표지에 오윤의 작품이 실린바 있다. 오윤에게 출판미술은 단순한 삽화 작업이 아니라, 문학과 미술이 만나 현실을 함께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진솔한 창작활동이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전시 기간에 오윤의 작품세계를 여러 분야의 시각에서 살펴보는 강연과 연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전시에서 시작된 질문을 후속연구와 참여로 확장할 예정이다. 특히 강연은 아카이브, 여성주의, 조각, 한국전통사상과 철학, 한국 현대문학사, 전통연희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오윤을 살핀 《오윤》 도록 필진을 초청해 여섯 차례에 걸쳐 열린다.
또 어린이·가족 프로그램 '개도치 판화공방'에서는 가족이 함께 전시를 살펴보고 스케치하고, 새기고, 찍는 판화의 과정을 경험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가족만의 판화로 만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전시를 계기로 오윤이 남긴 노트와 메모를 전사한 자료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전시를 통한 실물 자료의 공개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열람과 전사 자료집 발간으로 자료에 대한 접근을 확장함으로써, 오윤 컬렉션을 바탕으로 한 후속연구와 새로운 해석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기 위해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오윤의 대표작을 다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족이 기증한 컬렉션을 바탕으로 판화 원판과 습작, 드로잉, 노트 등 작가가 남긴 아카이브를 작품과 함께 살펴보며 그의 창작과정과 예술적 사유를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라며,"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가 앞으로 오윤의 예술세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연구하고 해석하는 기반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매주 월요일 휴관. 무료관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