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공급망·소비국 전략 재편
전략비축유 체계도 재검토 대상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호르무즈 해협 10km 가량의 바닷길이 막히자 지구촌 공급망과 에너지 지도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전세계 해상 LNG(액화천연가스) 20%와 석유 교역 4분의 1이 통과하는 수로가 사실상 닫히자 에너지 가격이 뛰는 것은 물론이고 각국의 에너지 전략과 공급망, 군사 및 외교 구도, 자본시장까지 '포스트 호르무즈'를 전제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번진다.
AI 도구로 프랑스 중앙은행의 논문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국제에너지기구(IEA), 여러 컨설팅 보고서를 동시에 돌려보면 '언제든 다시 막힐 수 있는 10km'가 상수로 자리 잡으면서 자산시장과 정책 모델에 구조적인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내재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이 수렴한다.
우선 에너지 지도가 바뀌고 있다. EIA와 우드맥켄지의 데이터를 AI가 재구성한 흐름도를 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는 중동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이미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북미의 원유와 가스 생산이 크게 늘었고, 캐나다 오일샌드와 브라질, 가이아나 해상 유전에서 새로운 공급이 등장했다. 유럽과 아시아는 러시아와 중동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호주와 미국, 카타르, 아프리카산 LNG 비중을 늘리는 한편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확대했다.
이번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는 비교적 서서히 진행되던 전환을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전략적 과제로 격상시켰다는 의견이다.
우드맥켄지의 중동 분쟁 시나리오 보고서를 보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이라크 등 걸프 산유국들은 이미 2020년대 들어 파이프라인과 서부 항만 인프라를 통해 호르무즈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강화해 왔다.

사우디 아람코는 동부의 유전을 홍해 연안 얀부 항구와 연결하는 이른바 '동서 파이프라인'을 확충해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과 북미로 원유를 보내고 있고, 이라크와 UAE도 내륙 파이프라인과 서쪽 항만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우회 경로를 모두 총동원해도 현재 호르무즈를 지나는 하루 2000만 배럴의 흐름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가이아나 같은 비중동 산유국, 그리고 미국·호주·카타르 중심의 LNG 공급망이 앞으로 더 큰 전략적 의미를 가질 전망이다.

소비국의 에너지 믹스도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미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를 대폭 줄이고 LNG와 재생에너지, 원전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아시아는 호르무즈 의존도가 높아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될 여지가 높은 만큼 중동산 원유와 LNG 비중을 줄이기 위한 장기 전략에 더 큰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원전의 재가동과 신규 건설,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을 통해 중동발 리스크를 줄이려 할 전망이고, 중국과 인도는 자국 내 석탄과 재생에너지, 원자력 비중을 높이는 동시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의 에너지 조달을 더 공격적으로 늘릴 움직임이다.
해상 운송과 보험, 트레이딩 계약 구조에도 변화의 압력이 거세다. EIA의 '세계 석유 운송 초크포인트' 분석을 보면 호르무즈뿐 아니라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바브엘만데브, 파나마 운하 등 극소수의 수로에 세계 해상 에너지와 컨테이너 물동량이 집중돼 있다.
최근 몇 년 간 홍해와 수에즈 인근에서 무장세력 공격이 이어지고, 파나마 운하는 가뭄으로 선박 통과가 제한되면서 해운과 보험업계는 이미 초크포인트별 리스크 프리미엄을 가격과 계약 조건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번 호르무즈 봉쇄는 그 흐름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이는 사건이다.
보도에 따르면 호르무즈와 페르시아만 항로에 대한 전쟁 위험 보험료가 화물 가치의 두 자릿수 비율까지 치솟았고, 일부 보험사는 해당 해역에 대한 커버리지를 사실상 철회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선박 소유주와 화주에게 자연스러운 통행 중단 압박으로 작용한다.
워리스크 프리미엄과 우회 항로 선택은 특정 해역을 지나는 운임을 상시적으로 끌어올리고, 결국 컨테이너와 벌크, 에너지 화물의 장기 운송 계약 구조까지 바꾸게 된다. AI로 국제해사기구(IMO) 자료와 항만·선사 공지, 보험사 브리핑을 크로스 체크해 보면, 고위험 해역을 별도 구간으로 분리해 추가 할증을 붙이는 모델과 '전쟁·테러 예외 조항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이미 표준화되는 과정이다.
에너지 수입국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가 곧 안보 전략과 외교 노선의 수정으로 이어진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여러 안보 싱크탱크 보고서를 AI로 분석해 보면, 호르무즈와 말라카 등 전략 요충지 인근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주요 수입국은 비축 확대와 조달 다변화, 해군력 강화, 동맹 기반 해상 보호 체계 구축이라는 네 가지 축에 동시에 손을 대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번에도 비슷한 그림이 예상된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인도 등은 이미 중동과 인도양에서 연합 해군 작전과 호위 임무를 수행해 왔고, 호르무즈 리스크가 구조적 상수로 남는다면 이런 활동이 더 상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전략비축유와 LNG 재고, 비축 제도도 재검토 대상이다. IEA는 회원국들이 최소 90일분의 순수입량에 해당하는 석유 비축을 유지하도록 권고해 왔지만 이번 사태로 90일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의 이번 봉쇄는 시간이 지나면서 물리적으로는 풀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막힐 수 있는 10km'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공급선과 에너지 믹스가 중동 중심에서 다극화된 구조로 더 빨리 이동할 여지가 높아졌고, 말라카와 수에즈, 바브엘만데브, 파나마 같은 다른 병목 구간에도 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시적으로 얹힐 전망이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