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북·그램까지 '금값'…신형 대신 구형 찾는 소비자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다음 주에 오시면 벌써 10만~20만 원은 올랐을 거라고 예상하고 가셔야 해요. 이미 가격 올린다고 발표가 났기 때문에 오늘 견적가가 안 나올 겁니다."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선인상가에서 만난 PC 부품 상인 A씨는 밀려드는 전화 문의를 받으며 이같이 말했다. 상가 복도는 한산했지만, 매장 안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실제 방문객보다 가격과 재고를 묻는 전화벨 소리가 더 잦았다. 이 상인은 "어제 견적 다르고 오늘 견적이 다르다"며 가격 비교 사이트를 보여줬다.

메모리 반도체 품귀 현상은 PC 시장의 '가격 쇼크'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부품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DDR5 16GB 메모리는 지난해 3월 6만4800원이었으나 현재는 38만2950원을 웃돈다. 1년 사이에 약 6배가 급등한 셈이다. 16GB D램 두 개를 장착한 고사양 PC를 맞추려면 메모리 값으로만 80만 원 안팎을 부담해야 한다.
상인 A씨는 "이게 갑자기 수요가 많아져서 비싸진 게 아니라 생산 라인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일반 메모리를 안 만들어도 다른 데서 이익이 충분하니 문제없겠지만, 우리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판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늘 견적을 받아도 물건 수급이 2주 정도 딜레이되면 그사이 가격이 너무 뛰어 계약이 취소되기도 한다"며 "2만~3만 원 차이라면 마진을 덜 보고 해줄 수 있겠지만, 인상 폭이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으니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립 PC 시장에서는 구형 부품을 찾는 '역주행 소비'가 대세가 됐다. 최신 제품인 DDR5 대신 구형인 DDR4 램을 선택해 비용을 줄이는 식이다. DDR4 16GB 가격은 20만 원 초반대로 DDR5의 절반 수준이다.
상인 B씨는 "실질적으로 성능 차이는 별로 없지만 향후 업그레이드나 CPU 확장성에서 차이가 난다"면서도 "당장 가격 부담이 워낙 크다 보니 오히려 구형인 DDR4가 더 많이 나간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능 좋은 상위 모델은 이미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기본적인 모델들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부품값 쇼크는 대기업 완제품 노트북 시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같은 날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의 삼성스토어 매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내놓은 최신형 노트북인 '갤럭시북6' 시리즈를 진열대에서 찾을 수 없었다. 전작인 5시리즈만 여러대 놓여있었다.

매장 직원은 "메모리 등 부품 가격이 너무 올라 판매할 재고도 없다보니 전국 매장에서 제품 전시까지 하기가 어려워 실물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초기에 전국에 풀린 물량 100대~150대도 판매 당일 모두 완판돼 전시용 제품판매 재고 확보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매장을 찾은 예비 대학생 최모(20) 씨는 "수백만 원짜리 노트북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예약부터 하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허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격 저항선도 무너졌다. 갤럭시 북 6프로 16인치 모델의 경우 출고가가 351만 원에 달한다. 전작 대비 70만 원 이상 가격이 오른 것이다. 최고 사양인 북6 울트라의 출시가는 493만 원으로 500만 원에 육박한다.
매장 직원은 "최신 CPU 탑재로 성능이 1.6배 향상됐다지만 신형 금액이 너무 비싸게 나왔다"며 "원래 신형이 나오면 구형은 바로 단종인데, 이번에는 가격 부담 때문에 구형도 재고를 모두 소진할 때가지 판매하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됐다"고 귀띔했다.

서울 영등포구 LG베스트샵 매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LG전자가 올해 초 내놓은 그램 프로 AI의 출고가 역시 전작 대비 50만 원 가까이 높아진 314만 원으로 책정됐다. 이에 현장에서는 신형 사양 설명을 듣고도 훨씬 저렴한 구형 모델을 최종 선택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이번 현상을 AI 서버 수요 증가에 따른 '범용 메모리 공급 축소' 여파로 분석한다. 반도체 기업들이 수익성이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일반 PC용 D램과 낸드 생산 비중이 줄어든 탓이다.
선인상가 상인 C씨는 "과거 100만 원이면 충분했던 조립 PC 사양을 맞추려면 이제 최소 160만~170만 원은 들여야 한다"며 "명절 지나면 가격이 더 오를 텐데 그때는 지금보다 구매하는 사람이 더 적을텐데 걱정이 크다"고 했다.
ayki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