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의 언어 '기둥에서 신호로, 신호에서 경험으로'
광화문 상설 무료 전시...개관 50일 만에 누적 관람객 1만 명 넘어
[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새해 시작 만사 형통"
지난 21일 찾은 서울 광화문 KT 온마루 내 '시간의 회랑'. 새해 인사 '전보(電報, Telegram)'가 '인공지능(AI)'를 거치자 8글자의 짧은 '전보체'로 변환된다. 1885년 전신 시대,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던 시절의 지혜를 2026년의 AI 기술이 재현한 것이다.
온마루는 140년 전 광화문에 위치한 KT의 전신인 한성전보총국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정보통신의 역사와 과거, 현재, 미래 비전을 담은 상설 전시관이다. '모든 것'을 뜻하는 '온'과 '중심'을 의미하는 '마루'가 합쳐진 이름처럼, 이곳은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세워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통신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 올리고 있다.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통신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특별한 여정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KT 온마루의 안내를 맡은 도슨트의 목소리에서도 자부심이 느껴진다.
KT 온마루는 통신사료를 활용해 체험형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의 회랑',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빛의 중정', 주기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팝업 공간 '이음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여정인 '시간의 회랑'에 들어서자 1885년 광화문 거리에 세워졌던 최초의 '전신주'가 투박한 모습으로 맞이한다. 서울과 인천 사이, 도시와 도시를 잇던 근대 통신의 문을 연 전신주는 단순한 나무 기둥이 아닌, 정보 전달의 속도와 범위에 있어 비교할 수 없는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핵심 인프라 자원이다.

전기를 이용해 소식을 전한다는 '전신(電信, Telegraphy)'이 정보가 물리적인 이동 수단 없이 전달될 수 있다는 개념을 현실화했다면, 전신 기술을 이용해 문서화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보의 등장은 사람들의 세상 소식을 접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특히 사람이 직접 타이핑하지 않아도 신호를 문장으로 변환해주는 '인쇄전신기'는 정교한 기계적 메커니즘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전초를 보여준다.
"당시에는 문장이 길수록 요금이 더 부과돼 짧고 간결한 전보체를 사용하는 게 중요했지요." 도슨트의 간략한 설명과 함께 발걸음은 '목소리(음성)의 시대'로 이어진다.
목소리의 시대는 1896년 덕수궁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기 '덕률풍(德律風)'이 문을 열었다. 영어 이름 '텔레폰(Telephone)'을 음역한 덕률풍은 명칭이 통일되지 않아 사람들은 '득률풍(得律風)'이나 '다리풍'으로도 부르기도 했다. 스웨덴 에릭슨사의 자석식 전화기인 덕률풍은 당시 조선에 들어온 최첨단 서양 문물의 상징이었지만, 고종 황제가 이 전화기를 사용하여 사형 집행을 중단시켜 훗날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 선생의 목숨을 구한 일화로 더욱 유명하다.

이어지는 전시관에는 189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사용된 벽걸이형 자석식 전화기부터 공전식 전화기, 다이얼식 전화기까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귀중한 사료들이 눈길을 끈다. 1970~80년대 전화기가 귀하던 시절,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인 200만~300만원을 호가해 부의 상징이었던 '백색전화'부터 1986년 우리 기술로 만든 세계 10번째 전전자식 교환기 'TDX-1'까지. 전화가 보편적 인프라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리적 부품이 아닌, 반도체(半導體)를 활용한 전전자식 교환기의 등장은 통신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디지털화되는 계기가 됐다. 전전자식 교환기의 폭발적 증가는 전화 회선 수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가져왔고, 1990년대 전화선을 이용한 모뎀 방식의 PC 통신 시대의 문을 열었다.
"KT의 전신 한국통신이 1991년 전화선과 컴퓨터를 연결한 하이텔 서비스는 당시 요금 폭탄의 주범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화방과 문학관, 텍스트 기반 게임 등은 오늘날 커뮤니티 문화의 시초로 제시됐고, 하이텔 문학관에서 탄생한 '퇴마록'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도슨트의 설명처럼, PC통신을 거쳐 이동통신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통신은 비로소 '개인의 것'이 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사람들의 허리춤을 장식했던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의 등장이었다. 초기에는 단순한 호출음만 울리던 기계였지만, 디스플레이가 장착되면서 숫자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독특한 소통 문화가 탄생했다.
486, 828, 1004…. 숫자 몇 개로 안부와 애정을 전하던 삐삐 암호는 단방향 통신의 한계로, 짧고 제한된 표현 속에서 의미를 극대화해야 했던, 해독의 재미를 준 '퍼즐 게임'과도 같았다. 전보체가 요금의 제약 속에서 태어났듯, 삐삐 암호 역시 기술적 한계가 만들어낸 시대의 문법이었다.
정보를 압축하고 빠르게 전달하려는 욕구는, 언제 어디서나 서로가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셀룰러 통신(Cellular Communication)'의 발전을 가져왔다. 차량에 설치해 사용하던 '카폰'을 시작으로, 어깨에 메고 다니던 '시티폰', 손에 쥘 수 있는 '휴대폰'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서서히 통신의 발전이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과정으로 나아갔다. 3세대(3G), 4세대(4G)로 접어들수록 단말기는 작아졌고, 화면은 커졌으며, 이동 중에도 PC에서 하던 대부분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통신은 점점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2018년. KT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광화문 앞에서 드론을 활용해 성화를 봉송하면서 통신은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넘어, 시각적 경험으로 확장되는 5세대(5G) 시대를 맞이했다. 이동통신의 진화는 우리 모두가 서로 밀접하게 더욱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를 만들고 있다. 과거 전신주가 도시를 잇던 시절부터, 초고속 무선 네트워크로 공간과 시간을 압축하는 현재까지, 연결의 방식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온마루의 마지막 여정인 '이음의 여정'에서는 KT가 그려갈 미래의 조각들을 미리 만나보는 팝업 공간으로, AI가 '설명'이 아니라 '체험'으로 제시된다. 태블릿에 그린 투박한 스케치를 AI가 정교한 예술 작품으로 완성하는 'AI 라이브 드로잉존'을 지나면, 완성된 나만의 작품은 즉석에서 에코백으로 제작되어 세상에 하나뿐인 굿즈가 된다. 대형 LED 월이 설치된 공간에서 키오스크로 소감을 남기면, 140년 동안 쌓아온 통신의 기록 위에 방문객의 기록이 덧입혀진다.
전시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만, 온마루는 상설 공간으로 관람객을 계속 맞이한다. 일요일을 제외한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상시 무료 개방되며, 사전 예약을 통해 국·영문 도슨트 투어도 운영한다.

KT에 따르면 온마루는 지난달 1일 개관 이후 50일 만에 누적 관람객 1만 명을 넘어섰다. 인스타그램과 맘카페 등 SNS를 중심으로 관람 후기가 자발적으로 확산되며 관람객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주말에는 데이트 커플과 방학을 맞은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아 토요일 기준 하루 600명 내외가 찾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식 KT Brand전략실장(상무)은 "온마루는 대한민국 정보통신 140여 년의 역사와 함께 KT의 헤리티지와 비전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브랜드 경험 공간"이라며 "광화문을 찾는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KT만의 고유한 가치와 정체성을 담은 새로운 전시 콘텐츠를 지속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dconnect@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