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 대신 '이자율 상한제' 논의… 민생 고리로 형성된 묘한 공조 기류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의 '광폭 행보', 민주 경제 아이콘까지 끌어 안기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소 "포카혼타스", "미친 사람"이라 조롱해 온 '앙숙'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메사추세츠) 상원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생'을 고리로 정적과까지 통화에 나선 이 이례적인 장면이 워싱턴 정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 "독재자 지망생" 연설 직후 걸려온 전화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출발점은 워런 의원이 전날 행한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이었다. 그는 연단 위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독재자 지망생(wannabe dictator)"이라고 직격하며, 폭등한 주거비와 신용카드 이자율을 방치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특히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주택 건설 법안(ROAD to Housing Act)을 막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도널드 트럼프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그런데 연설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런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이다. 백악관 측 설명에 따르면, 그는 참모들로부터 연설 내용을 보고받은 뒤 "그녀에게 전화해 보겠다"고 즉석에서 결정했다고 한다.
◆ "이자율 10% 상한" 놓고 공감대?
WP에 따르면 둘 사이의 대화 주제는 의외로 실용적이었다. 이제껏 트럼프 대통령은 워런 의원을 "비열한 인간", "약물 검사가 필요한 미치광이(nut job)"라 부르며 조롱을 퍼부어 왔다. 그런 그가 갑자기 주택 건설 입법과 '신용카드 이자율 10% 상한제'라는 민생 의제를 들고 유화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워런 의원은 통화 후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싸울 의지가 있다면 신용카드 이자율 상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직접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해 하원에 계류 중인 주택 법안 처리 문제도 거론하며, 트럼프에게 하원 공화당을 '압박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 중간선거용 이미지 공세 VS 진짜 민생 드라이브
해석은 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민 물가에 민감한 중도층을 겨냥해 '민생 챔피언' 이미지를 만들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민주당 내 대표적 경제 포퓰리즘 아이콘인 워런 의원과의 통화 자체가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런 관측에 힘이 실린다. 그는 민주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과도 집무실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 등,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인물들과도 연이어 접촉하며 '광폭 행보'를 과시하고 있다.
물론 워런 의원의 경계는 여전하다. 그는 같은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거비 위기 같은 생활 밀착형 이슈에 대해 "신뢰 결핍" 상태라며, 말은 요란하지만 실질적 행동은 뒤따르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 이번 통화도 결국 쇼에 그칠 수 있다는 의구심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 '숙적'에서 '파트너'로 동행할까
백악관은 이번 통화를 적극적으로 포장하고 있다.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대통령이 누구와도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준 생산적인 대화였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로서는 과거 자신이 "포카혼타스"라 비아냥대던 야당 의원과의 통화 자체가 '나는 편 가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색내기이도 하다.
관건은 이제부터다. 두 사람이 신용카드 이자율 상한제와 주택 공급 확대 같은 민생 현안에서 실제로 입법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각자 지지층을 향한 정치적 제스처로 끝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고 WP는 짚었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