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유럽의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성장세 회복이 독일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집행 정책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FT가 이코노미스트 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독일이 추진 중인 1조 유로 규모의 인프라·국방 지출이 실질적인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유럽 경제의 반등이 달려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는 것이다.

■ "투자·소비 심리 회복이 관건"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2022년 말 이후 사실상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3년과 202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제조업 부진과 수출 둔화, 에너지 비용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데, 이 때문에 독일을 넘어 유로존 전반의 성장세도 제약을 받았다.
낙관론자들은 내년 독일 정부의 재정 지출이 유럽 전역의 근본적인 회복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르데아의 수석 전략가이자 2026년 성장률을 1.5%로 전망하면서 가장 낙관적인 견해를 밝힌 얀 폰 게리히는 "독일의 민간 소비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 금융기관인 OP포욜라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레이요 헤이스카넨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북부 지역이 부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회복을 위해서는 투자와 소비 심리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조건도 제시됐다.
ABN암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닉 쿠니스는 "유럽 경제가 내수 중심의 회복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가계의 투자·소비 심리, 이른바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의 복원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유럽 전체적으로는 '트럼프 관세 전쟁' 등 외부 충격 속에서도 일정한 회복 탄력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회의에서 주요 정책 금리를 동결하면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지난 9월 전망치(1.2%)보다 높은 1.4%로 예상했다.
이번 FT 설문 조사에서 전문가들은 유로존 성장률이 내년 1.2%로 둔화한 뒤 2027년에는 1.4%로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 재정 부양 효과는 있을 듯… 지속성은 미지수
독일의 재정 확대가 단기적인 경기 부양 효과는 있겠지만 구조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MUFG 은행의 경제학자 헨리 쿡은 "정부 지출 증가는 독일 경제 성장률을 기계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면서도 "핵심은 그것이 더 광범위한 경기 회복으로 이어질지 여부"라고 말했다.
TAC 이코노믹스의 레아 도파스도 "재정 부양이 단기적으로 외부 충격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내수 모멘텀으로 전환될지는 불확실하다"고 봤다.
TD증권의 제임스 로시터 역시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확장적 재정 정책 간의 '줄다리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독일의 대규모 차입이 인프라 투자보다는 복지 등 경상지출로 흘러갈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방 지출 역시 전략적 중요성은 크지만 성장 기여도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애버딘 대학의 경제학자 펠릭스 페더는 "내년 독일 경제가 크게 반등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통화정책 안정 속 글로벌 리스크도 존재
통화정책 환경은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다수의 이코노미스트들은 ECB가 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통제했으며, 기준금리는 2026년까지 동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응답자의 4분의 3은 ECB가 내년말까지 기준 예치 금리를 2%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후 2027년 말까지 금리가 한 차례 인상되어 2.25%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유로존 경제 성장의 향방은 통화정책보다는 재정 집행 능력과 신뢰 회복, 구조개혁의 진전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관세 정책,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 미국 증시 변동성 등 대외 변수는 유럽 경제의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카르미냑의 이코노미스트 아폴린 메누는 "중국 수출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이 EU 산업을 더욱 공동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EU 전체와 개별 정부들이 심화되는 중국발 충격에 대처하기 위해 '너무 늦고 미흡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이나 휴전이 현실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안정과 투자 회복이 맞물리며 유럽 경제가 선순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