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월경에도 "표식물 유실 때문" 판단
北 도발에 회담제안...저자세 대응 논란
김정은 대남 적대노선에 무시전략 고수
"첫 당국회담 제안인데 격 떨어져" 지적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군 당국이 17일 북한에 군사 당국회담을 제안한 건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군사 분야에서 우선 열어보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군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적대노선에 따라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일원에서 침범 행위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 남북 간 긴장과 군사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는 논리를 들어 이를 풀기위한 회담을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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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군이 지난해 4월부터 군사분계선(MDL) 인근과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삼중 철책을 설치하고 대전차 방벽을 세우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북한군이 동부전선 철책 상하단을 보수하는 모습. [사진=합동참모본부 제공] |
이번 제안은 이재명 정부 들어 첫 대북 당국회담 제의로 북한의 호응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김홍철 국방부 정책실장은 대북제의를 통해 "최근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술도로와 철책선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과정에서 일부 인원들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우리 지역을 침범하는 상황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또 "우리 군은 작전수행절차에 따라 경고방송, 경고사격을 통해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퇴거토록 조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하다가는 남북 간 군사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우리 군 당국의 판단이란 얘기다.
김 실장은 "구체적인 회담 일정, 장소 등은 판문점을 통해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당국회담에 앞서 판문점 소통・협의 채널을 가동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의 여기에 호응해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은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국가 대(對) 국가'로 가져가겠다며 '한국=제1주적'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DMZ 일대에서 철책 가설은 물론 지뢰 신규 매설과 콘크리트 장벽 건설 등의 대남 차단벽치기에 나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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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인 김정은이 지난 9월 11~12일 국방과학원 장갑방어무기연구소와 전자무기연구소를 둘러봤다고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사진은 전자무기 시범을 살펴보는 모습. 뒤쪽으로 군복 차림의 김정식 노동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보인다. [사진=노동신문] yjlee@newspim.com |
게다가 북한 군부는 대남・대미 비난 담화 등에서 휴전선을 '공화국 남부 국경'이라고 표현하는 등 '국가 대 국가' 관계를 굳히기 위한 시도를 노골화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DL 확정을 위한 회담에 북한 군부가 응한다는 건 김정은의 정책 노선을 사실상 부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자신들이 침범행위를 했다는 걸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출범 5개월을 맞았지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지 못한 이재명 정부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과의 대화 통로를 만드는 게 필요한 상황이다.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된 대북접근을 천명한터라 북한과의 당국회담 재개나 교류・협력 통로가 열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지난달 말 경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 회동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불발되면서 '페이스 메이커'역할을 자임했던 이 대통령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변화를 모색하려던 정부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 만큼 해를 넘기기 전 독자적인 대북접근을 시도해 보려는 판단에서 이번 대북제안이 나왔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북한의 군사분계선 침범 등 도발적 행위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단호한 조치보다는 회담제의라는 유화적 카드를 꺼내든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의도성이 다분한 월경 행위에 대해 우리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설치했던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상당수 유실되어, 일부 지역의 경계선에 대해 남측과 북측이 서로 인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북제안을 한 걸 두고는 저자세 논란이 번지고 있다.
북한군의 도발행위에 우리 군과 정부가 면죄부를 준 셈이란 측면에서다.
대북제안 발표문의 제목이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관련 회담 제안을 위한 담화'라고 된 대목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전협정에 따라 확정돼 있는 군사분계선을 두고 조정이나 변경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한 뉘앙스를 준다는 점에서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군 당국의 주장대로 '표식물 유실'이 문제라면 말뚝을 더 박고 하면 될 일인데 과도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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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기자회견에서 안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 [사진=사진공동취재단] 2025.11.07 gomsi@newspim.com |
첫 당국대화를 제의하면서 보다 전략적인 고려 등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과 어떻게든 대화를 해야 되겠다는 절박성은 이해하지만 시점이나 제안 형식에서 세련되고 정교한 맛이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구체적인 도발이 나타난 직후 이런 제안을 하는 게 맞는데 북한은 물론 우리 국민도 대북제의가 뜬금없다고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전 전 원장은 "첫 대북제안이란 점에서 이 대통령의 뜻이 실린 메시지란 점을 북에 알릴 필요가 있는 만큼 국방부 실장 보다는 대통령실 안보실장 정도가 적합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아프리카 등 순방을 위해 출국한 상황에서 대북제안이 이뤄진 점도 무게를 우리 스스로 떨어뜨린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yj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