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옛날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의 집 앞에는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이라는 두 개의 큰 산이 있었다. 길을 나설 때마다 멀리 돌아가야 하니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느 날 우공은 산을 옮겨 평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산을 파내어 흙과 돌을 멀리 바다로 옮기기 시작했다.
"참 미련하기도 하지. 그냥 이사를 가면 될 것을…"
이웃 사람들은 혀를 차며 그를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우공은 개의치 않았다.
"내가 다 옮기지 못하면, 내 아들이 하고, 또 그 아들의 자손들이 계속하면 되지."
우공은 포기하지않고 끈질기게 산을 파서 흙과 돌을 실어날랐다. 그 정성과 끈기에 감동한 신들이 결국 산을 멀리 옮겨주었다.
중국의 고전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기다) 고사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긍정적 신념과 굳은 의지를 견지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음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로,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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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1일, 중국판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구이저우성 안순(安顺) 일대의 화장(花江) 협곡의 화장대교(花江大桥) 위. 현수교 형식으로 건설된 이 다리는 협곡 양쪽 교각 사이의 거리가 무려 1.5km에 육박한다. 그 거리에 수만 톤에 이르는 교량 상판이 쇠줄이 당겨주는 장력만으로 지상 625m 상공에 떠 있는 형국이다.
9월 28일 정식 개통을 일주일 앞두고 중국 안팎의 언론에 공개된 화장대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가파른 산세와 험준한 협곡을 잇는 웅대한 자태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런 곳에 어떻게 다리를 놓을 수 있겠나."
"그 깊은 산속에 무슨 경제성이 있다고."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통념을 깨고 다리가 완공되자, 화장 협곡 일대의 교통·관광 인프라는 천지개벽하듯 달라졌다. 협곡 양쪽 마을 주민들은 예전엔 두세 시간이 걸리던 길을 이제 단 2분 만에 오가게 됐다.
"중국이 또 하나의 현대판 우공이산(愚公移山) 신화를 만들어냈구먼." 화장대교 상판 위에서 공사 책임자의 설명을 듣던 순간, 문득 춘추전국시대 우공의 고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투르키예의 현자'라는 말처럼, 생각해보면 우공(愚公)에겐 '중국판 현자'라는 별명이 어울릴 듯 싶다. 현대 중국인들에게도 바로 그 우공의 DNA가 이어져오는지 모른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던 일들을 수도 없이 현실로 만들어왔다.
자체 기술만으로 장강의 물줄기를 막아 세계 최대의 수력댐 삼협댐(三峽大壩)을 완공했고, 세계 철도 전문가들이 고개를 저었던 해발 5000m 고원의 칭장철로(靑藏鐵路)도 개통시켰다. 서방 전문가들이 실패를 점쳤던 개혁개방 역시 성공시켰고, '장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과 기술 굴기를 이뤄냈다.
국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사막을 녹지화하는 조림 사업 또한 현대판 우공이산의 또 다른 사례다. 사막을 숲으로, 또 포도밭으로 바꿔놓는 '우공의 후예'들의 노력은 세상 사람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화장대교 상판에서 협곡 건너편 산세를 바라보면, 산상 곳곳의 넓은 개활지 위로 태양광 패널과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우리에겐 이념 공방의 논란거리로 전락한 재생에너지 단지들이, 이곳에서는 풍경화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 재생에너지 설비들은 중국이 2030년과 2060년으로 내건 탄소피크(碳達峰)와 탄소중립(碳中和) 목표 달성을 위한 생생한 실천 현장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성장과 환경 보호를 병행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지만, 지금 공산당의 중국은 이 또한 긍정적 신념과 굳은 의지, 무엇보다 2천여년전 '우공의 지혜'를 원용해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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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중국 구이저우성 안순시 인근 화장협곡대교 저 멀리 협곡 산상에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 단지가 펼쳐져 있다. 사진= 뉴스핌 촬영. 2025.10.23 chk@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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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중국 구이저우성 안순시 인근 화장협곡대교가 2025년 9월 28일 개통돼 구이저우성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사진= 뉴스핌 촬영. 2025.10.23 chk@newspim.com |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