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토대 위에서 中과 협력' 강조하는 한국
지속적 메시지 발신으로 '中 기대 수준 낮추기'
국제정세 혼란기에 한국 끌어들이려는 중국
한·중, 당분간 상황관리하며 탐색전 이어갈 듯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조현 외교부 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17일 성사된 이재명 정부와 중국의 첫 번째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는 없었다. 양측은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지 못하고 각각 서로의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그쳤다.
중국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중 관계에 긍정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관세 정책에 동맹국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는 점을 활용해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 및 한·일 관계 우호적 흐름 유지, 한·미·일 협력 중시 등의 기조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첫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양측이 깊이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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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외교부 장관(왼쪽)과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지난 17일 오후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외교부] 2025.09.17 |
한국 외교부가 공개한 회담 결과 설명자료에는 이재명 정부의 대중국 외교 기본 원칙이 드러난 대목이 있다. "한·미 동맹을 공고하게 발전시켜 나가되 국익과 실용에 기초하여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성숙한 발전도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 우리 정부 입장"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이 '한·미 동맹 발전'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역대 한국 정부는 모두 한·미 동맹과 중국과의 선린 우호 관계를 동시에 강조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이 부분에서 보다 분명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대외정책의 기본은 한·미 동맹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고 반복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중국도 중요하지만 우선 순위는 미국이라는 점을 중국에게 인식시켜 한국에 대한 중국의 '기대 수준'을 낮추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중국과 관련된 문제에서 역대 한국 대통령이 취했던 외교적 수사를 버리고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 더 이상 '안미경중'은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우리는 미국과 함께할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의 보수단체 '반중시위'를 "표현의 자유가 아닌 깽판"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면서 대책 마련을 지시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을 주중 대사로 내정한 것은 중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현 외교부 장관의 화법도 매우 명확하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중국을 '이웃 국가에 문제가 되는 존재'라고 했던 그는 중국 외교장관이 한국을 방문할 순서라는 외교 관례에 구애받지 않고 중국을 먼저 찾아가는 적극성을 보였다. 또 중국 외교장관 앞에서 한·미 동맹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언급도 했다.
이재명 정부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미·중 관계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분명하게 좌표를 설정했음을 중국에 인식시키고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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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지난 17일 열린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한중 외교장관회담 모습 [사진=외교부] 2025.09.17 |
중국은 아직 이재명 정부의 이같은 메시지를 '접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중국에 적대적이었던 보수 정부가 탄핵당하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것은 자신들에게 전략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판단하기 충분한 변화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보다 한·미 동맹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은 중국이 기대했던 상황은 아니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중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아직 분명한 전략을 세운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정세 불확실성이 커지고 한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변화를 맞아 양측은 당분간 일정한 거리에서 '새로운 한·중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조정기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 노선을 보다 면밀히 파악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입에 올리지 않고 다른 현안에도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친 것은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이재명 정부 역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설정한 좌표를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상황을 관리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한·중은 올해와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순차적으로 주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위급 소통과 교류를 이어가면서 상황을 관리하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또 매년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도 현상 유지와 시간벌기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open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