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양섭 산업부장 = 10여 년간 '저출생 대책'이라는 이름의 정책이 이어져 왔다. 정부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지원금 액수를 조정하고, 때로는 슬로건도 화려하게 내걸었지만 결과는 늘 제자리다. 출생률이 조금 반등했다고 해서 안도할 일도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로에 들어섰다는 점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산업계 안팎에선 인구 역성장 전망을 거론하며 '내수 성장은 이제 끝났다'는 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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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해볼 필요가 있다. 아파트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거나 현금을 지원한다고 해서 출생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발상은 허상에 가깝다. '얼마면 되겠니' 식의 접근으로 임계점이라도 찾으려는 분위기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도 생계가 유지되는 수준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자. 아이 한 명당 매달 1000만 원쯤 지급한다면 출생률이 급반등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재정 고갈, 예산 배정의 왜곡, 형평성 논란, 세대 갈등 등 더 큰 문제가 뒤따를 것이다.
이제는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안 중 하나는 이민이다. 외국인이면 어떤가. 국가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개방성'이었다. 이왕 할 거라면 고급 두뇌를 유치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해외 고급두뇌를 유치할 전략은 전무한 반면, 국내 고급 인재들은 한국을 떠나고 있다. 국내 빅테크에 근무하는 수많은 개발자와 엔지니어들이 기회만 되면 해외로 눈을 돌린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아예 미국이나 싱가포르에서 법인을 세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예측할 수 없는 규제, 불확실한 제도, 과도한 세금이 버티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산업의 싹을 꺾어선 안 된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바로 그런 사각지대에서 등장했다.
최근 10여 년간 아쉬움이 남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2017년 가상자산 시장을 돌이켜보자. 당시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주도국이었다. 수많은 글로벌 프로젝트들이 한국에서 ICO(Initial Coin Offering)를 준비했다. ICO는 주식시장의 기업공개(IPO)처럼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을 발행해 자금을 유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2017년 9월, 정부의 긴급 규제 이후 모든 형태의 ICO는 사실상 금지됐다. 2018년엔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 같은 우를 범하면서, 한국이 가상자산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됐다.
모빌리티 산업도 비슷하다. 포퓰리즘에 휘둘려 우버를 막았고, '타다 금지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대응하면서 혁신의 싹을 꺾었다. 당시 그런 결정을 내린 국회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한다. 그 선택으로 한국의 모빌리티 산업은 적어도 10년은 후퇴했다.
'시도했다가는 망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스타트업 창업자와 젊은 개발자들을 압박하는 순간, 그 나라의 산업 역동성은 멈추게 된다.
자본 유출도 최근 들어 더 가팔라졌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기업들이 사모펀드에 매각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 불확실한 기업 승계 환경이 핵심 요인이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해외로 자금을 돌리는 컨설팅이 성행하고 있다.
거창하게 '기업 승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의 증여세 대상 범위와 세율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와 증여세를 고민해야 하는 수준이다. 상당수의 중산층까지도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에 노출돼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에서 상속세 면제 한도를 개인 기준 1361만 달러(약 190억 원)로 설정해두고 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라면 상속세를 낼 일도 없다. 실제로 미국에서 상속세를 납부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0.1%도 되지 않는다.
더 이상 두뇌와 자본의 유출을 방치해선 안 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빠져나가는 현실은, 역사적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상식의 선에서 위기임을 알 수 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방향을 파격적으로 틀어야 한다. 고급 인재 유치를 위한 이민 정책 정비, 창업 규제의 전면 개편, 현실적인 조세 제도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세제 개편에는 조세 형평성과 공정성 논의가 전제돼야겠지만, 지금처럼 조세 부담이 경제활동 의지를 꺾고 인재와 자본을 밀어내는 구조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늦었지만, 더 이상 미루기엔 너무 시급한 과제다.
ssup8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