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컨트롤 타워 역할 '방산비서관제' 도입해야"
"국방 분야의 FTA, 국방상호조달협정(RDP) 미국과 맺어야"
"종합상사형 복합무역 활용하면 K방산 수출 활성화 가능"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지난 70년간 유지해 온 한미동맹의 내실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한미 간 유기적인 방산 협력을 정책적으로 제도화하면, 안보와 경제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요. 국내 방산기업들이 미국 방산업계와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개발에 참여하거나, 부품 및 구성품을 공급하는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는 등 '방산동맹'을 강화해야 합니다."
지난 4월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한국방위산업학회에서 만난 채우석(蔡宇錫·75) 이사장은 지난 3월 출간한 <대한민국 방위산업 50년 그리고 미래> 영문판을 기자에게 건네며 "이번 50년사는 우리 방산이 10년전의 질곡을 벗어나 K방산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사실을 알리게 돼 의미가 있다"면서 "지난해 9월 한글판에 이어 이번 영문판은 세계 각국 국방 및 방산 관계자들에게 개마무사(鎧馬武士·중장기병), 거북선, 신기전(神機箭) 등 K방산의 DNA가 5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자는 취지로 기술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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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 한국방위산업학회 사무실에서 만난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장. [사진=오동룡] 2025.05.06 gomsi@newspim.com |
육사 28기(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인 채우석 이사장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조달 분야 전문가다. 그는 국방부 평가획득과장을 거쳐 연구개발국장(준장), 조달본부 외자부장을 지냈다. 2005년 전역 후 조달본부(옛 방위사업청) 차장으로 방위사업청 창설 작업에 참여했다. 2011년 제5대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으로 취임해 14년간 학회를 이끌다 지난 3월 이사장에 취임했다.
◆'퍼스트 무버'가 돼라
-지난해 K방산 무기 수출 계약액이 95억 달러에 그쳤는데, 애초 정부 목표액 200억 달러의 절반에 그치는 수준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K방산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국가들은 엄청난 경각심을 갖게 됐다. 동남아나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의 불안한 정세로 당분간 K방산은 순항할 것으로 본다. 유럽의 경우, 한국의 K방산을 의식하고 유럽연합(EU)의 바운더리 안에서 방위비가 다른 지역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른바 '현지화' 전략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에 방산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방산비서관제' 도입을 주장하셨다.
▲근본적으로 방위산업의 유일한 소비자는 정부와 군이다. 방산기업들이 정부와 소통을 못 하고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소통은커녕 방산 비리라는 프레임으로 방산기업이 정부 관계자를 만나는 것 자체도 어려웠다. 방산비서관은 이것을 풀어주는 역할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박 대통령은 오원철 청와대 제2 경제수석에게 전권을 부여해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건설의 컨트롤타워를 맡겼다.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설립, 1971년 '번개 사업'을 시작을 통해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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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출간한 <대한민국 방위산업 50년 그리고 미래>(플래닛미디어). 이 책은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향후 50년을 준비하는 전략적 비전과 우리 방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사진=한국방위산업학회] 2025.05.06 gomsi@newspim.com |
-현재 우리의 '리더십 공백'이 방산 수출에 주는 피해는 없을까.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해 나가려면 정부가 기업에 자율권을 줘야 하지만, 절충 교역을 포함한 폴리티컬 바게닝(정치적 교섭)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해외 바이어 입장에서도 한국의 정치 상황이 탄탄해야 믿고 거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K방산을 비롯해 국가 산업 전 분야가 '퀀텀 점프'를 할 호기를 놓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한국 방산 무기들이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제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까닭은.
▲국내 방산 제품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우수한 점, 납품 시기 준수가 엄격히 이뤄지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즉시 전력'이 될 무기가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첨단 기술력을 가진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냉전 종식을 맞아 사실상 방산에 투자하지 않는 바람에 종사자들이 사라지면서 우리에게 '기회주의적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발빠른 추격전략인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선점 전략인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선도하려면 더 많은 투자,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K방산의 '가성비'가 상당 부분 중소업체의 인건비를 '마른 수건을 짜듯' 해서 나온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 정부도 지금처럼 기업들이 AI(인공지능) 무인화, 로봇 등 첨단 무기체계 분야를 각자도생으로 연구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로드맵을 세워 국내개발, 해외 기술도입을 구분해 효율적 연구가 이뤄지도록 교통정리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 무기 수출은 '무기 이전(Arms Transfer)'이란 용어를 쓸 정도로 고도의 정치적 상거래다. 현재 우리의 무기체계가 공급되는 나라들과는 특별한 연대가 생길 것 같다.
▲국산 무기를 구매한 나라는 군사 표준뿐 아니라 경제, 문화까지 한국식으로 차츰차츰 변한다. 자연스럽게 한국화가 되는 거다.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연구·개발을 강화해 국산 무기의 상품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아울러 방산은 무기만 판다고 끝이 아니다. 30년에서 50년은 교육 훈련이나 부품 공급, 유지·보수 작업 같은 후속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이것까지 잘 해내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산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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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주포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한 K방산의 선봉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5.05.06 gomsi@newspim.com |
◆'한미동맹'을 넘어 '한미방산동맹'으로
-현재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있다. 미국과 '한미동맹'을 넘어 '한미방산동맹'을 주장하시는데.
▲지난 70여 년간 유지해 온 한미동맹의 내실을 기하자는 거다.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파잇 투나잇(Fight Tonight)', 한미연합사령부가 쓰는 '같이 갑시다(KatchiKapshida)'란 구호도 중요하지만, 한미동맹은 실질적 동맹으로 진화해야 한다. 우리는 방산 분야에서 '한칼 하는' 나라가 됐다. 한미 간에 유기적 방산 협력을 정책·제도화하면 안보도 강화하고 양국이 호혜적인 경제성과도 누릴 수 있다. 그것이 '한미방산동맹'으로 진화하는 진정한 길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과 국방상호조달협정(RDP) 체결을 언급하신 건가.
▲서둘러야 한다. RDP는 미 국방부가 동맹, 우방국과 방산 제품 수출 시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완화하자는 취지로 체결하는 양해각서다. 국방 분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린다. 현재 미국은 이미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세계 28개 동맹국과 RDP-MOU를 체결했고, 이 협정을 통해 상호 공급망 협력과 방산 교역 확대, 첨단 군사기술과 무기체계의 공동개발·생산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잠시 주춤했지만, 미국과 RDP 협정 체결을 서둘러 미국의 방산시장과 글로벌 방산시장 점유를 확대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실익도 취할 수 있고, 국가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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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존 필린 미 해군성 장관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함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 2025.05.06 gomsi@newspim.com |
◆미국의 '러브콜' 받는 MRO 능력
-최근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함정건조에 한국의 협조를 요청했고, 얼마 전 존 필린 신임 미 해군성 장관이 현대와 한화 조선소를 다녀갔다.
▲한화오션은 작년 8월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호 MRO 사업을 수주해 이를 성공적으로 인도했고, 작년 12월에는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으로 중국에서 만든 선박의 미국입항이 어려워지자 건조 물량이 한국으로 몰리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군함 등 고부가가치 선박들의 주문이 몰린다고 한다. 글로벌 선박 수주량이 반 토막이 나는 상황에서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선박 수주량은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함정건조법'이 개정되는 것을 기회로 미국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최근 미국과의 현안이 조선 협력이다. 미국은 1965년과 1968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군함을 자국 조선소에서만 건조하게 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을 각각 도입해 자국 조선 산업을 보호해왔다. 최근 들어 미국 의회에서 해군 함정건조를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 맡기는 것을 허용하자는 법안이 발의돼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미방산동맹이 하나의 '엄브렐라 컨셉'이라면, 그중 큰 축의 하나가 '조선'이다. 미국과 상호 의존적인 '한미조선동맹'으로 두 나라가 엮이면 제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쥐고 흔들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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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호주군 현대화 사업인 'LAND 400 Phase3' 보병전투차량 우선협상대상 기종에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래형 궤도장갑차 레드백(Redback). 최종 계약이 체결되면 2027년 하반기부터 레드백 129대를 순차적으로 납품한다. 한화는 이번 사업에서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의 '에이젝스', 영국 BAE시스템스의 'CV90', 독일 라인메탈사의 '링스'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5.05.06 gomsi@newspim.com |
◆'방산 특화 종합상사'가 출현한다면
-2025년 미국의 군비 지출은 전년 대비 1% 증가한 약 8950억 달러(1174조 원)다. '천조국' 미국은 전 세계 방산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만큼 미국 시장을 뚫는 무기체계는 브랜드 이미지가 상승한다. 미국 시장에서 통하는 방산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따라서 미국과 방산 협업 체계가 구축되면, 제3국 방산시장 공략이 훨씬 수월해진다. 미국 시장 진입에 성공하면 제3국에 마케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방산 수출 대금을 현물로 받는 '종합상사형 복합무역'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셨는데.
▲'종합상사형 복합무역'은 '방산 특화 종합상사'가 원유 등 현물을 무기 수출의 대가로 받은 뒤, 이를 현금화해 무기 제조사에 지급하는 일종의 구상무역(求償貿易)의 형태다. 복합무역을 잘 활용하면, 부가가치를 3배나 더 창출할 수 있어 K방산의 수출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초청 특강에서 이 얘길 했더니 장병주 원장이 '채 회장님 생각이 김우중 회장님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으시냐'고 했다.
-우크라이나전이나 전세계 분쟁지역에 우리 무기체계를 제공해 '객관적 평가'를 받는 것도 수출의 한 방편 아닐까.
▲우리의 무기체계를 명분 있는 전장에 보내 '실전 테스트 결과'를 갖고 마케팅에 나선다면 이것보다 더 확실한 '품질보증'은 없을 것이다. 호주에 한화의 레드백 장갑차를 수출하게 됐지만, 한화가 우리 육군도 채택하지 않을 물건을 들고 독일군이 채택한 KF-41 링스(라인메탈)를 누른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업체 선정을 놓고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경쟁이 전투를 방불케 한다.
▲방사청장은 KDDX 사업이 해군의 전략상 어떤 사업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2026년까지 '미니 이지스함'이라는 7000톤급 구축함 6척을 건조해 해군 기동함대사령부의 주력으로 배치해 해군력 강화를 목표로 한 사업 아닌가. 업체 선정도 아직 못했으니 전력화는 2년 정도 늦어지고, 그에 따른 국가적 손실은 1000억 원이 넘는 등 천문학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삼성은 왜 방산을 매각했나
-삼성그룹이 2015년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등 방산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한 '방산 빅딜'은 방산 비리 등에 따른 기업 이미지 손상을 우려했던 것 아닌가.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철학을 물려받은 아들 이건희 회장이 삼성테크윈이 K-9 자주포와 관련해 비리 논란에 휘말렸을 때 '대로'했다고 한다. 2015년 매각 당시 삼성테크윈의 시가총액은 2조6000억 원이었고,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2조짜리가 됐다. 삼성으로서는 삼성그룹 내에서 매출이 미미한 방산이 '글로벌 삼성'의 반도체 이미지를 깎아먹는다고 생각해 털어버린 것이다. 국민은 '방산보국(防産報國)'을 외친 선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통 큰 경영철학을 후대가 잇지 못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주식시장에서도 K방산의 바람을 타고 투자자들이 관심이 몰리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만 해도 3년 사이에 주가가 10배나 뛰면서 100만 원을 넘보는 '황제주'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투자처로서 방산 주식을 어떻게 보나.
▲주식은 등락이 있으므로 장담할 수 없지만, K방산의 호황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 본다. 여윳돈이 있으면 투자도 괜찮다. 난 재복(財福)이 없어 그런지, 내가 건드리는 방산주는 거짓말처럼 내려간다. K방산을 살리려면 내가 방산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웃음).
goms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