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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의 체험기] 어느 날, 내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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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하늘은 파랗고, 길거리엔 벚꽃으로 가득했다. 모처럼 미세먼지도 없고 걷기만 해도 행복한 날이었다.

이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전화벨 소리였다. 하지만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타고 들어오는, 아주 기분 나쁜 공기가 느껴졌다. 인간에겐 초능력이 있다. 그 기분 나쁜 전화벨 소리, 신의 알람이었다.

"전기자, 본부장님께서 오늘을 못 넘기실 것 같아. 준비해."

두려웠다. 차라리 지독한 악몽을 꾼 것이라 믿고 싶었다. 10개월의 췌장암 투병을 이어나가면서도 주변을 챙기던 모습을 떠올리니 건강이 좋아지진 않아도 나빠지진 않고 있어서 곧 퇴원하진 않을까 믿고 있었다.

의지가 강한 분이었기에 병원에선 저렇게 말을 했어도 몇 시간 후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전기자, 어디 취재 나갔어? 오늘 기사 몇 건 작성 안했네"라며 연락을 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희망도 잠시 곧 절망으로 다가왔다.

삶은 타이머처럼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어느 순간 타이머를 채우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간다고 인식을 하고 있지만 하루를 죽어가는 삶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불편한 사실이다.[사진=시계 화면 캡쳐] 2021.04.12 kh10890@newspim.com

갑작스러운 죽음에 마음속에 꼭꼭 묻어놨던 말들을 전하지 못했다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몇 번의 기회는 있었지만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에 표현을 잘 안 했던 것 같다.

문득 나도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불의의 사고, 질환 등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물론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 100살까지 살 거다.)

내 삶에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라 생각하고 보내보기로 했다.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감정이입이 쉽지는 않을 거란 건 알지만 그래도 삶을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로 좋을 것 같았다.

◆ 오전 6시 30분, 하루의 첫 시작

부모님은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다. 그래서 아버지는 평일에 혼자 식사를 하실 때가 많았다. 차린건 장어를 구운 것 뿐이지만 진수성찬이라고 좋아하셨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눈을 떠보려고 해도, 떠지지 않는 이른 아침이었다. 5분 간격으로 맞춰놓은 알람을 3개나 종료 시킨 이후에나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의 식사를 차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진수성찬을 차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평소엔 늦잠 자느라 출근하는 모습도 못 보는데 이 정도 밖에 못 차려서 죄송하다고 했다.

◆ 오전 9시, 처음 그리고 마지막

내가 떠난 이후에도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꿀팁들을 적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내가 갑작스레 떠난 이후 슬픔 뒤엔 누군가는 당황·원망할 것이 뻔했다. 마무리를 잘해야 했다. 평소처럼 출근해서 나만의 노하우와 비상연락처 등을 문서에 담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이곳에서의 처음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앞에 버젓이 있는 리얼돌 체험방을 없애보려고 신고도 하고 기사도 써봤고,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 화장실, 대중교통, 관공서 등을 찾아 나서며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사를 쓰고, 민원을 넣어봐도 잠시 변하는 척만 할 뿐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회의감에 기자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때 마음을 잡아준 사람이 본부장님이었다. "기자인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욱 변하지 않을 거다. 좋은 결과를 이뤄내지 못했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노력했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아주지 않겠냐고"

◆ 오전 11시 30분, 소소하지만 해보고 싶었던 것들

건강이 부쩍 나빠져서 운동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피곤해서 핑계만 늘었다. 푸르른 나무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진작에 올걸.[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가 아닌 30살의 나로서는 잘 살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건강은 잘 챙겼는지, 주변은 잘 돌봤는지 돌이켜보니 일 외에는 열심히 한 것이 없었다. 서툰 것 투성이었다. 신체적 건강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정신적 건강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면 내 인생도 잘 돌본 것이라 생각했기에.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정말로 늦었다던데 그래도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원으로 향했다. 산책 후 모닝커피 한잔하는 여유를 갖고 싶었는데 평소엔 이것도 사치처럼 느껴져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럴 시간에 잠을 더 자겠다고. 조금만 부지런하면 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 오후 1시, 그때는 몰랐던 것들

서울에서 의경으로 군복무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광주시청 잔디숲 광장에로 군복무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2015년에 광주시청에 건립됐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내 인생과 가치관에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군 복무 시절을 회상했다. 서울에서 의경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많은 시위들을 겪었다.

몇 층인지 세기도 어려울 만큼 높은 빌딩의 건물 앞에서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라는 노동자들의 시위, 장애인도 시외버스를 탑승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시위 등 사연은 다양했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아니어도 이들도 행복한 세상이 됐으면 해서 전역 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학식 사 먹을 돈을 쪼개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 쌀을 기부했고, 홀몸 어르신들에겐 아들·손주가 되어드렸다.

환경 문제에도 관심 있었다. 길거리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쓰레기장은 꽃밭으로 만들었고, 누군가 배려 없이 뱉어 까맣게 변해버린 껌딱지에 그림을 그리고, 낙서로 얼룩진 벽에는 이끼로 그래피티를 그렸다.

대학교 3학년 땐 광주·전남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다. 이렇게 계속 의미 있는 삶을 고민하던 중 기자를 꿈꾸게 됐다. 더 많은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싶어서.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고 싶은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들도 많아지면서 '좋은 일도 일단 나부터 뭐든 갖추고 좋은 일을 해야지'라며 핑계를 삼곤 했다.

대학생 시절보다 경제적 능력은 증가했지만 마음은 가난해져만 갔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와서야 깨달았다. 학창 시절이 행복했던 이유는 경제적으로 풍족해서가 아니었단걸. 

◆ 오후 2시, 고마웠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돈쭐(?) 내줘야 하는 가게 중 하나. 이런 진수성찬이 나옴에도 1000원이다. 사장님은 식당 운영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인근 보험회사에 취직해 보험설계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은인들에게 꼭 고맙다고 전하고 싶었다. 마음은 늘 있었지만 연락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반가워하지 않을까 봐 연락을 주저했던 이들에게 먼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제일 먼저 생각난 곳은 1000원 밥상으로 유명한 '해뜨는 식당'이었다. 어려운 이웃의 배고픈 설움을 달래주는 식당이라는 뉴스를 접한 뒤 나도 좋은 일에 동참하겠다고 쌀 기부도 몇 번 했는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말만 번지르르 하고 몇 년 동안 찾아뵙질 못했었다.

몇 년 만의 방문이라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이게 누구야! 왜 이리 오랜만에 왔어. 어떻게 사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연락처도 몰라서 소식을 접하질 못했는데 이렇게 얼굴 봐서 좋다"고 격하게 반겨주셨다.

그러고는 얼른 자리에 앉으라며 뜨끈한 된장국에 고봉밥을 내어주셨다. "사장님 그리고 이 맛있는 된장국이 정말 그리웠는데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사는 게 다 그렇다. 마음만 있었으면 된 거지. 앞으로 자주 찾아오라"고 했다.

여자친구가 꽃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몇 번 사준 적이 없었다. '네가 꽃인데. 무슨 꽃이야'라고 얼버무렸지만 사실은 그 돈으로 밥 한 끼 사먹고 말겠다는 생각이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식사 후에는 꽃을 사러 갔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꽃 선물을 받아본 지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네가 꽃인데'라고 얼버무렸던 게 마음에 걸렸다. 꽃집에서 제일 예쁜 꽃다발을 추천받아 선물했더니 어린아이처럼 까르륵하면서 좋아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더라면 더 자주 많이 사줄 걸 그랬다.

◆ 오후 5시, 가족에게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힐튼호텔 객실에 하트 모양으로 불이 켜져 있다.[사진=뉴스핌DB] 2020.11.27 kwonjiun@newspim.com

엄마. 늘 받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가면 효도해야지. 군대 전역하면 효도해야지. 취업해서 돈 벌면 효도해야지. 늘 해야지 마음만 먹고 실천에 옮기지도, 표현하지도 못했습니다. 자식이니까 당연히 뭘 해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컴퓨터 보느라 눈이 아프다고 할 때도, 다리 아프다고 주물러 달라고 할 때도 대충 만지작 하기만 할 뿐. 사랑을 받는 것만 알지 돌려주지를 못했습니다. 

아빠. 30여년간의 몸담은 직장을 퇴직한 이후에도 사회에 봉사하겠다며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겠다고 했을 때 차마 그동안 고생했으니 쉬시라고 하질 못했습니다. 다른 아버지는 퇴직 후에 편히 여행도 다니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즐기면서 산다고 하던데 제가 못나서 아버지도 그렇게 할 수 있게끔 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늘 슈퍼맨 같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흰머리가 생겨나고, 주름이 한 줄 두 줄 늘어갈 때마다 제가 뭘 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물질적인 걸 바란 게 아닌 그저 대화 몇 마디 건네는 걸 원하셨단 걸 알면서도 으레 말 안 해도 알겠지. 부끄러워서 표현을 못 했습니다.

형. 긴 말 안 해도 통하는 사이. 그래서 긴 말이 필요 없는 사이. 다만 부모님 속은 썩이지 말기를.

이런 가족들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힘들어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아빠니까 많은 것들 포기하고 저에게 양보했던 것 잘 압니다. 그러니 다음 생이 있다면 제가 엄마·아빠의 부모님이 될게요. 제가 받았던 사랑, 그 이상으로 돌려줄게요. 엄마·아빠의 아들이라 행복했고, 정말 많이 사랑했어요.

◆ 오후 7시, 친구와 작별 인사

삼겹살 사준다니까 시험공부도 미루고 나오던 녀석 [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삼겹살에 막걸리 한잔하자고 했다. 최후의 만찬으로 이보다 나은 게 없었다. 잔을 기울이며 마음도 표현했다. 덕분에 좋은 추억만 갖고 떠난다고. 

◆ 오후 10시, 그래도 행복했다

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기를 [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30년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마냥 좋은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녔다.

학창 시절 친구랑 싸우고 눈탱이 밤탱이가 됐던 기억, 서류 내는 족족 떨어졌던 기억, 새벽 4시에 전화를 걸어 "자냐"고 물은 뒤 "얼른 자라"며 악의적으로 괴롭히며 밤잠 설치게 했던 옛 회사 본부장님, 이상한 트집 잡아 욕하던 선배들. 어렵사리 지워낸 기억들.

미워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좋은 기억만 가져가고 싶기에 당신들을 용서하려 합니다. 그래도 당신들 덕분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으니.

故지영봉 본부장님, 부디 지금 계신 곳에선 아프지 마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보고 싶습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4.12 kh10890@newspim.com

에필로그(epilogue). 지영봉 본부장님. 저희 곁을 떠나신지 벌써 1주일이나 흘렀네요.

믿기지가 않아서 현실이 아니라 꿈이길 바랐습니다. 차라리 술을 많이 마셔서 지독한 악몽을 꾼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통화에서 "전기자,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던 본부장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틀리셨습니다. 저야말로 본부장님께 받기만 했을 뿐입니다. 부디 지금 계신 곳에선 아프지 마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본부장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kh1089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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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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