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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용서한 적 없어…벌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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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집회 끝내겠다는 것 아냐...방식 바꾸자는 것"
"윤미향, 김복동 할머니 끌고 다니면서 이용해"
"'안성쉼터' 화려하게 지어놓고 윤미향 아버지가 살아"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는 25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용서한 적 없다"며 "이것 또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관리 부실과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의 후원금 사적 유용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05.25 mironj19@newspim.com

다음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전문.

두 번째 이제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저번에 기자회견 할 때 이미 했지만, 많이 생각 못하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 하는 것은 정신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다릅니다.

잠깐 제가 갔던 곳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입니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습니다. 왜? 그때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 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갈아서 야스하라라고 갈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 학교입니다. 제가 3, 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때문에 가타카나를 알았습니다.

끌려가서도 가미카제 부대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이렇게 써줘서 대화했습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야스하라 도시코. 그 후에 겪으면서 제가 생각할 때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 합니다. 제가 쭉 30년 동안 해 오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또 바른말 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데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92년도 6월 25일에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 간사였습니다. 25일에 했는데 29일에 모임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 갔었는데 그날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돈을 1000엔인가 줬다 그러면서 백만원씩 나눠 줬습니다.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걸 전 봤습니다.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습니다.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 데 기다렸어요. 기다렸는데 그 농구선수가 돈을 이렇게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 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 줄 몰랐습니다.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저렇게 농구를 막 하면서 이기려고 애를 쓰고 하는데 거기 버젓이 앉아서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걷어온 걸 받아서 나왔습니다. 좀 늦었습니다. 좀 늦은 시간인데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니까 돈 없습니다. 돈을 걷어서. 그래도 그것이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도 또 교회 가도 또 돈을 주면 그걸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그러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로 해야 되는데 말하자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은 밀가루 반죽해서 만들어서 빚어놓고 속에는 맛있고 귀한 것을 넣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속에는 위안부입니다. 그런 그걸 해도 쭉 30년을 그렇게 해도 전 몰랐습니다. 그저께도 몰랐습니다. 어제 저녁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자기네들이 정신대 할머니와 합해서 쭉 이용해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 동안 앉아서 얘기하는 게 사죄하라, 배상하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섞어서 사죄도 하지 말고 안 해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이것을 30년 동안 해가 나오면서도 사죄 배상을 요구하고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 학생들 돈 받아서 챙겼습니다. 이래서 어제 저는 잠도 한숨도 못 잤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대책협의회는 정신대만하지 자기네들이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합니까? 이것을 생각하니 저는 자다 일어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이렇게 당하면서 여태까지 왜 말도 못 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사죄 배상 요구하는 것을 막았잖아요.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데 이런 그것을 30년을 이용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 일본이 그 사람들 바보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가 해당치도 않았는데 뭣 하러 그 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겠습니까?

안 한 이유를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 또한 무엇입니까? 내가 왜 팔려야 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들에 딸 하나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놓으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불상 많은 곳에 쌀 올려놓고 엄마가 수야 이리 오너라 해서 가서 먹이고 했습니다.

이런 남의 집의 귀한 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대만, 가미카제 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고문과 갖은 칼로 몸을 긁어서 이렇게 죽여놨습니다. 일본은 그 군인이 보니까 방에 들어가라고 해서 보니까 군인이 앉아 있는데 거기 들어가라 해서 안 들어간다고 하니 와서는 그냥 머리를 끌고 질질 끌고 가서 광 아래 자물쇠 큰 게 달려있었습니다. 그걸 팍하면 문을 확 열지만 밀었습니다.

또 이렇게 해서 발로 그거는 돌덩이보다 더 군홧발이었습니다.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배가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서 저 잘못한 것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 했습니다.

이런 데 또 머리 뜯고 앉혀서 두 팔을 이렇게 해놓고 거기다 놓고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 머리에 귀에 소리 납니다. 그때 제가 엄마라고 크게 불렀던 적이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납니다.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라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정신대대책협의회 이걸 밝혀줘야 되지 않습니까? 할머니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해서 밝혀줘야 하는데 한 번도 할머니 앉혀서 절 받은 적 없습니다. 그냥 모여서 노는데 밥 먹는 데도 어디 갔다 왔습니까, 그거 갖고 책을 냈습니다.

93년도부터 책을 내놓고 그 책을 6500원에 파는 걸 봤습니다. 그래도 그걸 몰랐습니다. 그런 책 낸 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가 보다 하고 다니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 대책협의회 박물관을 짓는 데 서대문 형무소에서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박경림 씨하고 저희 큰 조카하고 저하고 가서 15만원을 받고 정신대 대책협의회에서 증언했습니다. 이러면 그 박물관에 대표가 돼 있습니다. 대표라 소리 하지 마라, 창피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대표 소리는 안 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3월 30일에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미향 씨, 이러면 안 되잖나. 안 그러면 그렇지 않으면 해결할란다, 했는데 아주 큰 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제가 5월 7일에 기자회견 한 겁니다.

이런 등등을 제가 하나하나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빨리 생각이 안 납니다. 이래서 제가 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날입니다. 여기 왔습니다. 소위 그 국회의원으로 나올 적에 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보고 돼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위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들어와서 있는데 문을 열어달라 해서 열어주니까 윤미향 씨가 싹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넘어갈 뻔했습니다. 놀라서. 그러면서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합니까. 뭘 가지고 와야 무엇을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지요.

하든가 안 하든가 하는데 뭐를 용서(합니까?) 보니까 엄청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검찰에서도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할 테니 그때 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을 안 했습니다. 뻔뻔스럽게 차에 내려서 휠체어를 타려고 하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윤미향이를 오게 했답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윤미향한테 며칠 후에 내가 기자회견을 할 테니까 그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뭐 있더라고요. 있는데 거기서 무슨 원수 진 것도 아니고 30년을 지내왔습니다, 했는데 한 번 안아달라 합디다.

그래서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30년을 같이 했으니까 원수는 아닌데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막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로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것은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들도 책임이 다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걸 명백하게 하려 그랬는데 혼자 생각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걸 그만둬야 하지 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 싶음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어떻게 30년이나 같이 했는데 해 나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마음대로 팽개쳤습니다.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했습니다. 이래놓고 또 자기가 사리사욕을 차려서 맘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맘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뭣을 용서합니까?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 자기 맘대로 했으니까 자기 맘대로 하든지 말든지 하는 거지 저한테 하든 책임을 미룰 필요는 없잖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잖습니까? 무엇 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그게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 가지를 제가 다 말씀을 못 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받아먹었습니다. 30년 동안 재주 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용서를 바랍니까?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좀 학생들한테 교육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제가 이걸 바꾼다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들 얘기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입니다. 이러면 이 학생들이 결국에는 그 나라 주인 아닙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사죄 방식을 하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일본 아베는 서류 나온 것 다 불살라 버려놓고는 한국이 거짓말한다, 학생들한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 학생들도 몰라서 그렇고. 일본 학생들도 그걸 모르고 거짓말만 저 한국이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겁니다.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게 시한이 오래 갈 겁니다.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 한국이 왜 일본에 배상하고 사죄하라 하니? 무엇 때문에? 이런 얘기 하면 그러면 일본은 왜 하지 않니? 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고 거짓말이라 하니까 우리는 그 말만 들었다,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걸 학생들한테 가르쳐서 서로 왕래하면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또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알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었습니다. 이걸 누가했습니까? 대구에 아주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것을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지금은 윤미향을 밀고 있습니다. 윤미향을 밀고 있으면서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세요, 김복동 할머니 존경받고 있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그러면 나비기금이라든지 하는 것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했다고 김복동 할머니 돈입니까? 어느 날 미국을 가기로 했는데 윤미향이 모금을 했어요. 모금을 600만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정신대대책협의회 사람 아니라고 못 오게 해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모금을 허락했습니까? 제가 간다고 했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30년 그거만 얘기했는데 줄줄 나오는 게 엄청나게 나옵디다. 말도 못 하게 나옵디다. 그러면 할머니들 팔아서 그랬으니까 왜 위안부 할머니를 자기가 했습니까.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죄를 받아야 합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 실명입니다. 실명이고 한쪽 눈 조금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끌고 다녔죠.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렇게 해놓고도 뻔뻔스럽게 묘지에 가서 눈물 흘려요? 그것은 가짜의 눈물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그것도 죄인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그것은 다 검찰 측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한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합니다. 이것도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나이가 들다 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로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 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하라 배상하라 적어놨습니다.

천년이 가든 만년이 가든 일본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 가르치기 위해서는 양국 간 친하게 지내면서 이걸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니까, 이분들을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해서 이 억울하고 누명 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제가 당해야 하고 이게 죄입니까? 늦게까지 산 게 죄입니까? 왜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끝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와서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위안부는 여자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여성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참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세계의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만 여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 기회를 빌려서 모든 여성분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다, 위안부는 여자다, 하는 것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도 들으실 겁니다. 해서 제가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어떻게 합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여성분들한테 이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 글자 손상 입었다는 게 참 죄송합니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서 이 역사를 알아서 이 억울하고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왜 위안부가 성노예입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냐, 그러니까 미국이 들으라고 미국 사람들 겁내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렇게 팔아가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렇게 한 줄 몰랐습니다. 저 안산이라 하는 곳도 보니까 쉼터를 화려하게 지어놨습디다. 그래서 윤미향 대표, 위대한 대표의 아버님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검찰 측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 소리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갑니다. 꼭 이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다고 마음이 제가 편한 건 아닙니다. 고쳐야죠. 이후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한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한테 이걸 밝히기 위해서 정말 너무 (많이들) 오셨는데 장소가 너무 좁습디다. 제가 해야 하니까 여러분이 다 오셔서 (기자회견장에) 가시도록 하기 위해 장소를 바꿨습니다.

여러분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말씀입니다. 기자 여러분들이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사를 내주셨으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가 오늘 장소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바꿔서 여러분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얘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너무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제가 요점만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 그리 아시고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그 좁은 데서 만약에 하면 또 코로나가 퍼졌다고 하는데 걱정이 됐어요. 좁은 데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러분들을 이렇게 큰 데 모셨습니다. 그 점을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cle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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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구, 1심서 실형…법정 구속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12·3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사후에 만들고 보관한 혐의로 기소된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강 전 실장은 증거 인멸과 도망을 우려로 법정에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박옥희)는 28일 오후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공용물 손상,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강 전 실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증거 인멸과 도망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후 계엄 선포문 허위 작성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6.05.28 photo@newspim.com 강 전 실장은 비상계엄 해제 후인 2024년 12월 6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사전에 부서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명한 문서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처럼 허위 계엄 선포문을 작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사후 문건은 한 전 총리, 김 전 장관, 윤 전 대통령 순으로 서명이 이뤄졌고, 강 전 실장 사무실에 보관된 것으로 조사됐다. 내란 혐의 수사가 본격화하자 한 전 총리로부터 "사후에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 있으니 내가 서명한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라는 말을 듣고 해당 문건을 파쇄한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사후에 작성된 계엄 선포문이 허위 공문서에 해당하며, 강 전 실장에게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엄 선포의 절차적 적법성을 증명하고 계엄 선포문 표지가 공개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작성한 이상 (문서) 행사의 목적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밖에 계엄 선포문 파쇄와 관련한 공용서류 손상·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는 "문서 보관 행위만으로는 해당 문서의 신용을 해할 위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며 허위 공문서 행사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형과 관련해 "피고인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고위 공무원으로서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올바르게 보좌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 사건 계엄 선포가 위헌·위법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발의된 엄중한 상황에서 윤석열 등의 서명을 받아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피고인은 윤석열의 사전 지시가 없었는데도 계엄 선포문의 표지 형식을 작성하고 윤석열 등의 서명을 받아 각 범행의 주요한 실행행위를 담당했다"며 "피고인의 직위와 역할을 비춰볼 때 죄책이 무겁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선고 이후 증거 인멸 및 도망 우려 등으로 강 전 실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강 전 실장 측 변호인은 "사실관계를 다 인정하고 법리적으로 다퉜고 증거, 증인에 대해서도 동의했다"며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으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게 해 달라"고 했다. 강 전 실장도 "저는 증거 인멸과 도주에 대한 의사가 전혀 없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다투고 있고 1년 6개월이라는 가볍지 않은 형이 선고됐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hong90@newspim.com 2026-05-2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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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네르, 롤랑가로스 2회전 탈락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세계 테니스계를 호령하던 얀니크 신네르(24·이탈리아·1위)가 파리의 가혹한 폭염과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로 커리어 그랜드슬램 도전이 물거품됐다. 신네르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세계 56위 후안 마누엘 세룬돌로(24·아르헨티나)에게 세트 스코어 2-3(6-3, 6-2, 5-7, 1-6, 1-6)으로 대역전패했다. 톱시드를 받은 선수가 이 대회 3라운드 이전에 탈락한 것은 2000년 안드레 애거시(미국) 이후 무려 26년 만이다. [파리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신네르가 28일(현지시간) 2026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2회전 경기 중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6.5.29. psoq1337@newspim.com 경기 초반은 신네르의 독무대였다. 강력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1, 2세트를 손쉽게 따냈다. 3세트에서도 게임 스코어 5-1까지 달아나며 완승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파리의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비극이 시작됐다. 심한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을 느낀 신네르는 급격한 체력 저하와 함께 다리 경련 증세를 보였다. 코트를 떠나 메디컬 타임아웃까지 요청했으나 한 번 무너진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신네르가 중심을 잃자 세룬돌로는 끈질긴 수비와 집요한 톱스핀 샷으로 상대를 흔들었다. 몸이 굳어버린 신네르는 마지막 20게임 중 단 2게임만 따내는 빈공 속에 급격히 무너졌다. 이 경기 전까지 올 시즌 인디언웰스, 마이애미, 몬테카를로, 마드리드, 로마까지 'ATP 마스터스 1000' 시리즈 5개 대회를 연속 석권하며 30연승을 달리던 신네르의 무패 행진도 허무하게 마감됐다. 지난해 파리 마스터스 우승을 포함하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6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의 중단이다. [파리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신네르가 28일(현지시간) 2026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2회전에서 패한 뒤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2026.5.29. psoq1337@newspim.com 경기 후 신네르는 "최근 많은 경기를 치르며 회복할 시간이 부족했고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며 "3세트 이후 에너지가 완전히 떨어지며 흐름을 잃었다"고 아쉬움을 삼켰다. 대어를 낚은 세룬돌로 역시 "그에게 정말 힘든 상황이었다. 솔직히 운이 따랐고 신네르가 빨리 회복하길 바란다"며 위로를 건넸다. 이번 이변으로 지난 2024년 호주오픈을 기점으로 이어져 온 신네르와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2위)의 '메이저 독식 체제'는 잠시 멈추게 됐다. 지난 9개의 메이저 대회를 양분했던 알카라스가 손목 부상으로 대회 전 기권한 데 이어 신네르마저 조기 탈락하며 롤랑가로스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파리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세룬돌로가 28일(현지시간) 2026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승리한 뒤 팬들에 인사하고 있다. 2026.5.29. psoq1337@newspim.com 번번이 이들에게 밀렸던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의 통산 25번째 메이저 우승 대기록 도전과 메이저 대회 준우승 단골이었던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 캐스퍼 루드(노르웨이) 등 강자들의 왕좌 탈환 경쟁이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특히 조코비치가 이번에 정상에 오르면 남녀 테니스를 통틀어 '역대 메이저 단식 최다 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psoq1337@newspim.com 2026-05-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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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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