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공단 주거래은행 입찰 첫 '유찰'
시중은행 "높은 금리 요구에 수익성 없다" 판단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기금 11조원을 굴리는 공무원연금공단의 주거래은행 1차 유치전이 싱겁게 끝났다. 당초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은행 1곳만 참여, 입찰이 유찰됐다. 금고 유치 경쟁이 뜨거워질수록 기관들이 금리를 높게 요구하면서, 은행들은 낮은 수익성으로 사업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 10일 주거래선정을 위한 재입찰에 들어갔다. 지난 9일 입찰신청서를 접수했으나 기존 주거래은행인 KB국민은행만 참여해 유찰됐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공단 주거래은행 입찰이 유찰된 것은 처음이다.
공무원연금공단 관계자는 "기존 계약조건을 유지해 재입찰을 진행한다"며 "재입찰에서 여전히 한 곳만 참여하면 그 은행과 수의계약을 체결하게 된다"고 말했다.
금고지기로 선정되면 2020년부터 5년간 11조3261억원의 기금을 맡는다. 공무원 약 120만명에게 매달 기여금을 받고 수급자 52만명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업무다. 이 외에 △학자금 대출금 지급과 징수급 수납 △공단 운영비, 직원 급여 지급 △공단 자회사 자금관리 등을 담당한다.
주요 시중은행 사옥 [사진=각 사] |
당초 업계에선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됐다. 내년 예대율 규제 강화를 앞두고 기관금고 유치 경쟁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내년부터 예대율을 계산할 때 가계대출 가중치는 15% 높이고, 기업대출은 15% 낮춰야 한다. 가계대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예대율 규제에 맞추려면 예수금을 늘려야 하는데 기관 금고 유치는 예수금 수조원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이다. 예수금으로 실탄을 마련하면 공격적인 대출 영업도 가능하다.
지난달 개최한 사업설명회에는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모두 참여했다.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은 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앞서 진행된 8조원 규모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주거래은행 사업자선정에도 불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KB국민은행 한 곳만 참여했다. 나머지 은행들은 공단에서 제시한 금리가 부담스러운데다, 신규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인프라 구축 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총 100점 만점의 평가는 △재무안정성(20점) △제안금리(20점) △시스템연계보완(20점) △업무수행능력(10점) 등으로 구성된다. 시중은행들의 재무안정성이나 업무수행능력이 비슷한 것을 감안하면 제안금리가 결과를 가르는 핵심지표로 꼽힌다. 제안금리는 '기준금리+α'로 공단이 일정 수준을 제안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α로 1% 이상을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리인하 국면에 요구하는 금리를 맞추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금리 부담에 새 사업자가 새로 구축해야할 인프라 비용을 감수할 만큼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며 "사실상 노마진 수준까지 나오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답했다.
반면 KB국민은행은 기존 거래은행으로 비용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는 평가다. 최근 울산, 대구 등 지자체 시금고에 도전장을 내며 기관영업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KB국민은행 입장에선 공무원연금공단은 지켜내야 할 고객이다.
재입찰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할 전망이다. 은행들은 여전히 참여를 "검토중"이라고 하지만, 계약 조건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선뜻 나서긴 어렵다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고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관들이 요구하는 금리도 점점 높아졌다"며 "과거에는 관행처럼 받아들였지만 금리인하 상황에서 손해를 보면서까지 참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