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에서 결혼 후 생활 규칙이나 이혼 시 위자료 등과 관련해 사전에 계약을 맺는 '혼전 계약'이 확산되고 있다고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세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하는 상황에서 결혼에 불안을 느끼는 남녀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혼전 계약을 통해 갈등을 피하고 원만하게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인식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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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이나비] |
"더 이상 결혼으로 힘들어지고 싶지 않았어요. 혼전 계약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도쿄(東京)도 미나토(港)구에 거주하는 한 40대 여성은 2017년 맞선을 통해 알게 된 30대 부동산 운영업자 남성과 혼전 계약을 맺었다.
여성은 한 차례 이혼을 경험한 바 있다. 전 남편의 폭언과 불륜이 원인이었다. 님성과의 교제는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순조로웠지만 여성은 "또 다시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불안에 선뜻 결혼을 선택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상담을 통해 혼전계약서에 "바람이나 폭력이 있을 경우 위자료 1000만엔을 지불한다" "부정행위가 있다면 이혼 협의가 가능하다" "재산분배는 반반씩"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아이를 낳는다면 부모로서 책임을 갖고 기른다" "기념일은 부부끼리" 등 총 30여개 항목을 만들었다.
혼전 계약서는 결혼 예정인 커플이 체결하는 계약서다. 행정서사(행정사)나 변호사에 의뢰해서 만들 수 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공정증서'로 만들 경우엔 공증 사무소에서 수속을 밟을 필요가 있어 작성비나 수수료 등 총 10만엔 가까이가 필요하다. 공증인 앞에서 문서 내용이 진실임을 선서해 공증인이 이를 인증하는 '선서인증'만 받는다면 1만1000엔이면 가능하다.
금전과 관련한 계약은 민법의 '부부재산계약'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반할 경우 강제집행 등의 조치도 가능하다. 일본 민법에 따르면 결혼 후 맺은 부부 간의 계약은 어느 한 쪽이 취소할 수 있지만, 혼전에 맺은 계약은 결혼 후 파기할 수 없는 효력이 있다.
요코쿠라 하지메(横倉肇) 행정서사는 "혼전 계약은 이혼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며 "관계가 위험해질 때 계약서를 작성하던 당시의 초심을 떠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타다 유리코(多田ゆり子) 행정서사도 "서면 작성을 통해 '말했다', '안했다' 등의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요코쿠라 행정서사는 연간 20건 정도씩 혼전 계약 상담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그가 맡은 혼전 계약에는 "맥주는 하루에 한 캔" "연 1회씩 디즈니랜드에 간다" 등 법적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 '생활항목'을 넣는 사례도 많다.
이미 영미권에서는 '부부재산계약'(Prenup)이라는 이름으로 혼전 계약이 일반적이다. 일본에도 2014년 관련 협회가 설립되는 등 혼전 계약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결혼상담소연맹'도 2017년도부터 전국 결혼 중개 상담사를 대상으로 혼전 계약 공부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 주오(中央)대 가족사회학 교수는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해 전형적인 가족상이 무너져 혼인의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다"며 "이상적인 결혼상을 갖지 못해 '결혼은 리스크'라고 생각하는 남녀가 늘어났고, 이들에게 혼전 계약서가 리스크를 줄여주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