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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남녀평등과 자유연애를 주장한 신여성,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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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42)

한국의 유명한 신여성으로 음악계에 윤심덕이 있다면, 미술계에는 나혜석이 있다.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삶은 예술 자체였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과 신념은 시대를 앞서 있었다. 특히 유교적 여성관에 젖어있던 당시 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여권신장에 앞장섰다.
그들이 살았던 20세기 초 우리나라는 아직 구시대의 사상과 체제에 젖어 있었다. 여자가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았고, 특히 자유분방한 연애관에 대해서는 커다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시대를 앞선 사상과 신념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으로서는 그 시절을 살아가기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두 사람은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남녀 간의 결혼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의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그녀들의 용감한 도전은 개인 삶에 있어서는 불행의 신호탄이었다. 근대 신여성들의 삶이 그랬듯이 그녀들의 화려했던 삶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짧고도 강렬했던 그녀들의 삶은 한마디로 불꽃같은 삶이었다.

우리나라 근대 신여성의 효시라 불리는 나혜석은 서양화가이자 문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특히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였던 그녀는 미술작품을 본격적으로 제작해서 전시하고 판매하는 등 전업화가로서 활동한 선구적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녀는 제1회부터 11회까지 매년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작품을 출품하여 수상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특히 《천후궁 (天後宮)》과 《정원》은 특선 작품으로 수상했다. 이러한 그녀의 예술인생 자취가 고향 수원에 조성된 ‘나혜석 거리’에 남아 있다.
나혜석(羅蕙錫, 1896~ 1948)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이 용인 군수를 지낸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천재적인 예술가적 자질과 외모를 겸비하고 있었다.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후 그녀는 둘째 오빠 나경석(羅景錫)의 권유로 1913년 17세에 동경 유학길에 올라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였다.
동경유학 시절 그녀는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시인이자 천재로 불리던 최승구(崔承九)라는 유학생이었다. 그러나 최승구는 이미 결혼을 한 몸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개의치 않고 사랑을 불태웠다. 그러나 타오르던 사랑의 열병도 얼마 가지 않았다. 1916년 최승구가 폐병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된 것이다. 첫사랑이 실패로 끝나자 그녀는 학업에 전념하였다. 1918년 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해서는 함흥의 영생중학교와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했다.

나혜석은 1920년 김우영(金雨英)과 결혼하게 된다. 애정 없는 결혼을 거부해 왔던 그녀였지만 집안에서 계속 결혼을 종용하자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된다. 거기다 김우영의 열정적인 구애에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당시 김우영은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변호사이자 외교관이었다. 그러나 나혜석보다 10년 연상으로 한 번 결혼했다가 상처한 상태였다.
그녀는 결혼조건으로 김우영에게 4가지의 약속을 받아냈다.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 줄 것,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함께 살지 않도록 해줄 것, 그리고 첫사랑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김우영은 당시에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요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김우영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한 나혜석은 외교관 부인으로서, 화가로서, 자식을 양육하는 어머니로서 평범한 여자로서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갔다. 파리에서 최린(崔麟)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혜석의 자화상 <사진=이철환>

1927년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과 함께 유럽여행길에 나섰다. 서구사회는 답답한 조선사회와 달리 그녀에게 해방감을 만끽시켜 주었다. 또 여행을 통해 그녀는 새로운 미술적 영감을 받게 된다. 특히 파리에 상당기간 정착해 살면서 인상파와 야수파 계열의 그림을 배우며 즐겨 그렸다. 그러나 파리에서 이루어진 천도교 지도자 최린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있어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3·1운동 때 함께 투옥된 경험이 있고 취미가 다양하며 그림에도 조예가 있는 최린은 한순간에 나혜석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의 깊은 교제 소식은 결국 남편인 김우영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김우영은 나혜석에게 이혼을 요구하였다. 만일 승낙하지 않으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나혜석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댁 식구들 또한 이혼을 종용했다. 나혜석은 어떻게든 이혼을 피해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끝내 김우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후 최린으로부터도 버림을 받는다. 이에 나혜석은 최린을 상대로 정조 유린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아울러 형사소송까지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다.
남편과 최린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후 나혜석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혼고백서》란 글을 발표하였다. 이 글을 통해 나혜석은 자신이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김우영이 보인 편협함, 그리고 남성 이기주의 등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이 《이혼고백서》는 1934년 잡지 《삼천리》에 게재되었다.

“조선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여성에겐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 합니다. 서양이나 동경사람쯤 되더라도 내가 정조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관념 없는 것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남에게 정조를 유린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愛好)해 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저작(詛嚼) 시키는 일이 불소하외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요.
조선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오.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이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 이였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줌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리라, 그러니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

그녀의 이혼고백서는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항거였다. 그러나 이글이 발표되자 그녀에게는 동조와 공감이 아니라 격렬한 비난과 조롱이 빗발쳤다. 전근대적인 남성중심 사회에 길들여진 남녀 모두가 비난에 가세했다. 그녀가 일궈온 삶은 산산조각 난다.
1935년, 그녀는 또다시 구습과 인습에 얽매인 정조(貞操) 개념의 해체와 《정조취미론》을 주장하면서 파문을 일으킨다.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오, 오직 취미다. 자식은 악마다. 결혼은 지옥이다." 라는 등의 발언은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 뒤로도 나혜석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는 언행을 이어갔다. 밖에서는 군자인 척하면서 가정에서는 폭군으로 돌변하는 권위적인 남자들,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로 인식하는 남자들,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자립하지 못하는 여자들을 가리켜 남녀평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비판하였다.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니라고 거침없이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들 역시 사회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며 여성들이 취직을 해서 일터에 나올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 금기를 깨는 이러한 언행으로 인해 그녀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갔다. 가족과 친구 주변인들 모두가 떠나간 상황이 되었다. 1935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 뒤 불교에 심취하여 수덕사· 해인사 등을 전전하며 유랑생활에 들어갔다. 이후의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고, 결국 1946년 11월 서울 자혜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쓸쓸히 인생을 마감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은 엘리트 여성 나혜석! 그녀의 여성해방론은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남성중심 사상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녀가 평생 가장 사랑했던 문학 작품은 자신이 1921년 한국어로 번역· 연재까지 한 노르웨이 작가 입센의 《인형의 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결국 남편의 인형에 불과했다는 자의식으로 자유를 찾아 남편과 자녀를 두고 집을 나간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은 아닐까?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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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오르반 16년 집권 '마침표'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과 유럽연합(EU)의 각종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며 '유럽의 이단아'로 불렸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결국 16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다. 가디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페테르 머저르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친EU 신생 정당인 티서(Tisza)당에 몰표를 던졌다. 투표 마감 30분 전 투표율은 77.8%로, 지난 2002년 기록을 약 7%포인트 웃도는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날 투표가 마감된 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오르반 총리는 이번 선거 결과를 "고통스럽다"고 표현하며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그는 부다페스트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승리한 정당에 축하를 전했다"며 "우리는 야당으로서도 헝가리 국가와 조국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2010년 총선 압승으로 재집권한 이후 헝가리를 철권통치하며 이른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주창해 온 오르반의 장기 집권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지지자들에게 패배를 인정한 오르반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16년 철권통치의 종말과 경제난의 역풍 냉전 시절 거침없는 반공(反共) 청년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던 오르반 총리는 1998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처음 총리직에 올랐으며, 2010년 재집권 이후부터는 권위주의적 행보를 노골화해 왔다. 행정부로 권력을 집중시키고 시민단체(NGO) 활동과 언론 및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등 민주주의 기준을 둘러싸고 EU와 극심한 갈등을 빚어왔고, 급기야 EU로부터 헝가리에 배정된 수십억 유로 규모의 자금 지원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초래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오르반 총리는 선거 프레임을 "전쟁이냐 평화냐"로 규정하려 애썼다. 반대로 티서당은 헝가리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고 비난하며, 집권당인 피데스(Fidesz)가 평화를 담보할 '안전한 선택'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헝가리 유권자들의 시선은 철저히 보건의료와 국내 경제 등 민생 문제에 쏠려 있었다. 헝가리 경제는 지난 3년간 사실상 정체 늪에 빠져 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EU 내에서 가장 심각한 인플레이션 급등세를 겪었다. 식료품 가격은 EU 평균 수준으로 치솟은 반면, 헝가리의 임금 수준은 EU 27개 회원국 중 밑에서 세 번째에 머물면서 국민들의 실생활 고통이 극에 달했다. 저렴한 대출 등 관대한 친가족 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우경화된 정부에 염증을 느낀 젊은 유권자층이 변화를 열망하며 대거 돌아서면서 오르반의 발목을 결정적으로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 트럼프·유럽 극우 진영 전폭 지지에도 씁쓸한 퇴장 오르반 총리는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과 성소수자(LGBTQ+) 권리 제한 등을 앞세워 서방 보수 우파 진영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르반을 "진정한 친구"라 부르며 강력히 지지했고, 양국 관계가 "새로운 정점"에 올랐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프랑스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독일대안당(AfD)의 알리스 바이델 등 유럽 주요 보수·극우 정치인들이 일제히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이 같은 든든한 외부 지원 사격도 헝가리 내부의 싸늘한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EU "헝가리, 유럽의 길 되찾아" 환영 오르반 총리의 패배 소식에 유럽 주요 지도자들은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내놨다. 특히 브뤼셀에서는 오르반이 지난 16년간 이민정책과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 등에서 EU와 잦은 충돌을 빚어온 만큼,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안도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헝가리는 유럽을 선택했다"며 "유럽은 언제나 헝가리를 선택해 왔다. 함께 우리는 더 강해진다"고 밝혔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도 페테르 머저르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며 "헝가리의 자리는 유럽의 심장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헝가리 국민이 EU의 가치와 유럽에서 헝가리의 역할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 승리"라며 결과를 환영했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강하고 안전하며 무엇보다 단결된 유럽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밝혔다. 크리스텐 미할 에스토니아 총리는 "헝가리 국민이 단결된 유럽 속에서 자유롭고 강한 헝가리를 위한 역사적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으며,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헝가리의 큰 승리이자 유럽의 큰 승리"라고 강조했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역시 이번 선거가 "헝가리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kwonjiun@newspim.com 2026-04-13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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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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