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대중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기돈 크레머 "젊은 예술가들이여, '수치화된 출세'에 연연 말아요"

기사입력 : 2017년10월07일 10:00

최종수정 : 2017년10월07일 10:00

기돈 크레머가 쓴 편지 등이 담긴 ‘젊은 예술가에게’ 표지. 사진= PHONO.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야망에 끌려다녔답니다. 청중이 넘쳐나고 스타의 명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을 오랫동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사교계’에 도취되었고, 가능한 한 많은 ‘유명인사들’을 모아 최소한의 짧은 리허설을 거친 뒤에 함께 무대에 세우는 기획자의 야망을 따라갔습니다. 이런 식의 페스티벌은 음악이 아닌, 공허함의 놀이마당입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가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던진 조언은 자못 신랄하다. 그러나 진심과 통찰이 담겨 있어 귀를 기울이게 된다.

기돈 크레머가 후배 음악인들에게 쓴 편지와 글을 모은 ‘젊은 예술가에게’라는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홍은정 이석호 옮김, PHONO 펴냄)됐다. 이 책은 훌륭한 연주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들려주는 생생하고도 사려깊은 조언들로 가득차 있다. 게다가 장르를 떠나, 예술가를 지망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어서 주목된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 출신의 기돈 크레머(1947~)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조부와 부친 모두 알아주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파가니니 콩쿠르 등 유수의 콩쿠를 휩쓸었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했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음악전문지 ‘BBC 뮤직 매거진’이 100명의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천재’ 소리를 밥 먹듯 듣고, 정상의 자리를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일까. 정작 이 거장은 타이틀이나 왕관에 그닥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같은 수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연주자라면 ‘음악’ 자체에 집중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인기를 얻을까 고민하는 것 보다, 연주자로서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과 그 작곡가에 대해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돈 크레머는 예술가이면서도 정치나 사회 현안에 대해 소신껏 의견을 밝혀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그의 조국이 소련에 속해 있던 시절 받았던 영향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는 “내가 만약 소련과 같은 희한한 나라에서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타인의 의견에 덜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이에 그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살았고, 그 결과 대단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겸손’이라는 미덕을 지니게 됐다.

그의 책 ‘젊은 예술가에게’는 이 정상의 연주자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피력한 책이다. 책은 크게 네 부문으로 이뤄졌다. 1부는 가상의 젊은 피아니스트 아우렐리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로 구성됐다. 2부 ‘악몽 교향곡’은 온갖 폐해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일명 ‘무능력자 연합 오케스트라’)를 통해 현대 음악계의 문제점을 꼬집은 글이고, 3부 ‘연주자의 십계명’은 미래 연주자들에게 전하는 당부를 성경의 십계명에 빗대 서술한 파트다. 마지막 4부 ‘루트비히를 찾아서’는 크레머가 프랑스 클래식음악 전문잡지 ‘디아파종(Diapason)’의 의뢰로 세계적인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연한 열 장의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음반을 비교 청취한 뒤, 최고의 연주를 꼽은 글이다.

이 중 1부는 피아니스트에게 쓴 편지이지만 ‘예술’의 본질을 묻고 있어 모든 예술가들이 읽어봄직한 글이다. 열 통의 편지에 크레머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담았는데, ‘상업주의에 물드는 예술’을 경계할 것을 가장 강조했다. 이제 막 데뷔한 예술가들은 큰 수익을 안겨주는 계약, 빈번한 무대 출연 같은 수치화된 성공과 출세에 연연하기 마련이나 그런 것에 집착하다 보면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영혼을 잃을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기돈 크레머는 훌륭한 예술가의 첫째 조건으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을 꼽았다. 잘 나가는 대가를 본받는 것은 좋지만, 그들과 똑같아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기 안에서 독창적인 개성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

그의 글에는 사진가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비롯해 재즈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 탱고뮤지션 아스토르 피아졸라,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동료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비롯해 자신이 진정 위대한 음악가라 여기는 ‘진짜’들, 유능하지만 위태롭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젊은이’들을 실명으로 언급한 대목도 흥미롭다.

이어 세계적 콩쿠르에서 자신의 목소리 없는 연주자들이 수상하고 있는 현실도 따갑게 지적했다. 자신이 꼽은 실력있는 연주자들이 늘 수상권을 벗어나 ‘4위’에 오르고 있며 이들에게 ‘크레머 상’을 주고 싶다는 말도 전한다. 크레머가 꼽은 연주자 중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강주미, 1987-)의 이름도 눈에 띈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사진=gidonkremer.net

3부 ‘연주자의 십계명’에서 저자의 육성은 단호해진다. 연주자에게 있어 신은 곧 ‘음악’이어야 하며 콩쿠르 수상, 훈장, 국내외의 상, 상금으로 대표되는 우상을 섬겨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 음악을 연주할 때는 작곡한 이의 심중을 충분히 읽어내 작품을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하고(‘살인하지 말라’), 다른 누구를 모방하기 보다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낼 것(‘도둑질하지 말라’) 등을 조언하고 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한 최고의 음반을 찾아내는 과정을 기술한 4부의 글에는 기돈 크레머의 예술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저자는 파트너십, 템포, 슬라이드, 페르마타, 카덴차, 내용, 개성 등을 심사기준 삼아 꼼꼼하게 청취한 끝에 뜻밖의 음반을 최고로 꼽았다.

마지막으로 기돈 크레머는 “음악과 책, 영화, 일인극 등 장르를 막론한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바는 대중성이 아니라, 때로는 모든 규칙을 깨부수고서라도 우리를 심원한 감정과 새로운 발견으로 이끄는 그 무엇이다”라고 강조했다. 평생을 클래식 음악에 헌신해온 거장은 이렇듯 예술의 핵심을 명쾌하게 찌르며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SKT 이용자 1천명, 공동손배소 예고 [서울=뉴스핌] 최수아 인턴기자 = SK텔레콤(SKT) 유심 정보 해킹 사태와 관련해 이용자 1천여 명이 SKT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 공동소송을 예고했다. 법무법인 대륜은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소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주 또는 늦어도 다음 주 초에는 약 1000명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1인당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100만원으로 전해졌다. [서울=뉴스핌] 양윤모 기자 = 손계준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가 21일 오후 SK텔레콤의 유심(USIM) 정보 유출 사태 고발인 조사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법무법인 대륜은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와 보안 담당자 등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배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2024.05.21 yym58@newspim.com 대륜은 "집단소송 신청자는 1만 명 이상이나 서류 취합까지 완료된 분들에 한해서만 1차 민사소장 접수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해당 소장을 접수한 이후에도 2차 소장 모집을 계속할 계획이다.  대륜은 "역대 최대 규모의 유심정보 유출 사고로, 장기간 해킹에 노출된 정황이 있으며 피해자들은 유심 교체 등으로 현실적인 불편을 겪었다"면서 "SKT는 보안에 소홀한 반면 높은 영업이익을 유지해왔고, 지금까지도 피해 규모나 경위에 대해 충분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점을 종합하여 1인당 100만 원의 위자료 청구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SKT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보호에 있어 구조적인 소홀과 의도적인 비용 감축 정황이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공동소송이란 원고 또는 피고 혹은 그 쌍방이 여러 사람일 경우, 즉 소송주체가 다수일 경우를 의미한다. 이번 사건처럼 다수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다수의 피해자가 함께 소송에 참여한다.  앞서 대륜은 지난 1일 SKT 유영상 대표이사와 SKT 보안 책임자를 업무상 배임과 위계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으며 전날(21일) 남대문경찰서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geulmal@newspim.com 2025-05-22 12:49
사진
폭스콘 "AI 데이터센터, 단계 건설"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세계 최대 전자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폭스콘이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함께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최대 100메가와트(MW) 규모로 단계적으로 건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류양웨이 폭스콘 회장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25 컴퓨텍스 타이베이' 기조연설에서 "이번 AI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 만큼, 단계적으로 구축할 것"이라며 "1차로 20메가와트 규모로 시작한 뒤, 40메가와트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며, 궁극적으로는 100메가와트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날 엔비디아가 대만을 대표하는 제조 기업 TSMC·폭스콘 및 대만 정부와 함께 초대형 AI 생태계를 대만에 구축한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설명이다. 2024년 10월 8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폭스콘 연례 기술 전시회에 전시된 폭스콘 전기이륜차 파워트레인 시스템 [서울=뉴스핌]박공식 기자 = 2025.05.14 kongsikpark@newspim.com 류 회장은 "전력은 대만에서 매우 중요한 자원"이라며 "공급 부족이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지만, 이를 감안해 여러 도시를 대상으로 부지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시설은 대만 남서부 가오슝시에 우선 들어서며, 나머지는 전력 여건에 따라 다른 도시로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류 회장의 키노트 무대 위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황 CEO는 "이번 AI 센터는 폭스콘, 엔비디아, 그리고 대만 전체 생태계를 위한 시설"이라며 "우리는 대만을 위한 AI 팩토리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대만의 350개 파트너사가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AI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확보를 통해 AI 학습 및 추론 속도를 크게 높이고, 대만 내 AI 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koinwon@newspim.com 2025-05-20 23:4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