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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캐리어 싸는 엄마, 애완견에 밀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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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박민선 기자]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여행용 캐리어를 꾸린다. 월요일 출근길, 아파트 앞 단지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주중엔 아이와 함께 친정에서 생활. 금요일 저녁 퇴근하면서 남편이 있는 집으로 캐리어를 끌고 귀가. 일 잘한다고 소문난 한 펀드 매니저의 감춰진 일상이다.

올해 여섯 살 된 아들을 하나 둔 기자는 캐리어 따윈 싸지 않는다. 다만 친정에 살고 있을 뿐. (뙇!) 요즘 최고의 신붓감 조건 중 하나가 '건강한 친정엄마'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너무들 한다'고 혀를 차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한숨이 새어 나온다.

워킹맘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 자리를 채우기 위해선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수반돼야 하는 게 '웃픈'(웃기고도 슬픈) 현실이다.

하루 절반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는데도 늘 넉넉지 않은 가정 경제는 조부모를 육아 현장으로 끌어들였고 모처럼 마주 앉은 부부의 대화는 결국 '너만 일하냐, 설거지는 왜 내가 해야 하냐'며 감정 상하는 말로 마무리된다.

어느새 집안 서열이 애완견보다 뒤로 밀린 40~50대 부장들은 저녁이면 애먼 후배들을 앞에 앉혀놓고 "내가 네 나이 때는 말이야~" 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떠올리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러나 후배 와이프가 그들을 향해 보내놓은 카톡을 본다면? 얼핏 보면 제각각인 문제들이 유기체처럼 서로 얽혀 끝도 없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 후 몇 년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가장 속이 쓰렸던 건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정체성 때문도, 내가 사랑하는 포장마차가 집 앞에 없어서도 아니었다. 오후 5시면 퇴근해 집 앞에서 아이와 공놀이를 하는 아빠들, 영화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치부했던 모습을 직접 목격할 때마다 이 순간에도 야근하며 비자발적 하숙생 모드로 살고 있을 내 가족, 내 친구들이 떠올라서였다.

아침 8시 출근, 오후 4시 퇴근하는 일상은 귀가 후 아빠들이 아이를 돌보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함께 하는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또 직접 육아에 가담함으로써 남편은 아내가 평소 느끼는 어려움과 고민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유한다.

올해까지 11년간 총 100조원.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겠다며 쏟아부은 돈이다. 하지만 2001년 1.29명이었던 출산율은 2015년 1.24명까지 되레 떨어졌다. 병으로 친다면 10년 동안 치료한답시고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환자가 심각한 중태에 빠진, 기막히고 코막히는 꼴이다.

이런 돌팔이가 또 있을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정책을 만든 이들 세대는 그들만의 이유로 육아란 것을 해보지 않고 살아왔다. 애는 낳으면 알아서 자라는 거고, 환절기면 열나고 감기 걸리는 당연한 일이고, 아이는 태생적으로 엄마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때문에 핵심 근처에도 가지 못한 거다.

나아질 기미 없는 저출산 현상에 문재인, 심상정, 이재명, 유승민 등 대선 출마 선언을 하는 후보마다 앞다퉈 관련 대책을 주요 정책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중심의 육아를 더 '배려(?)'해주겠다는 단편적인 시각의 정책들이 태반이다.

가정이 온전히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엄마의 육아 시간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워킹맘의 삶의 균형이 '워킹'보다 '맘'에 조금이라도 더 기우는 것에 인색한 우리 사회에서 대놓고 "애 엄마들은 조금만 일하고 돈은 똑같이 받아가라"는 게 과연 현명한 방안일까.

정상적이기 위한 노력이 비정상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들이 차고 넘치고 있다. 이젠 어느 한쪽에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늘어질 대로 늘어진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 가정 전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또다른 누군가는 주말마다 캐리어에 짐을 싸야 하고 가족 내 아빠들의 서열 반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뉴스핌 Newspim]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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