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을 둘러싼 시장의 해석 오류 투성이
[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주식시장이 국제 유가의 등락에 휘둘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가 하락이 곧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적신호라는 판단이 깔린 현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가 거의 매번 유가 급등락과 깊게 맞물려 있었다는 점에서 최근 투자자들의 패닉이 전혀 터무니 없지는 않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출처=블룸버그통신> |
더구나 중국의 성장률이 실제로 가파르게 둔화되고 있고, 이에 따른 파장이 상품 수출국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국의 실물경기를 강타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가만 바라보는 주식시장의 움직임과 2014년 6월 이후 유가 폭락에 대한 투자자들의 해석이 크게 잘못됐다는 주장이 월가 투자은행(IB) 사이에 번지고 있어 주목된다.
국제 유가를 글로벌 경제의 펀더멘털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기는 데서 적지 않은 오류와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유가 급락이 에너지 기업을 강타, 회사채를 중심으로 금융시스템 위기를 촉발시킬 것이라는 우려 역시 과장된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권의 에너지 기업 회사채 비중이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앰리타 센 에너지 애스팩트 대표는 “거시경제의 모든 문제를 유가 탓을 돌리는 최근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배럴당 100달러의 유가가 민간 소비를 위축시키는 한편 원유 수입국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둔화시킨다는 논리를 근거로 볼 때 20달러 선의 유가가 주식시장과 실물경기에 타격을 가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카미알 모하데스 캠브리지 대학 교수 역시 “최근 1년 6개월 사이 유가 하락은 수요보다 공급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유가와 주가의 강한 상관관계는 중국 경제 성장 둔화에 대한 공포가 과도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가 하락의 원인이 과잉 공급에 있을 때와 수요 위축일 경우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라는 얘기다.
그는 오히려 유가가 50% 떨어진 뒤 첫 해 글로벌 경제의 성장률이 0.2~0.4%포인트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일종의 정제유인 아시아 나프타유 가격이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데서도 이번 유가 급락이 경기 침체나 금융위기를 예고하는 적신호라는 해석이 무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나프타유는 제조업 경기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고 있다.
때문에 유가 급락이 일정 부분 주가 하락에 원인을 제공한 점이 인정되더라도 최근과 같은 절대적인 동조현상과 투자심리의 냉각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또 한 가지 투자자들이 유가 하락을 빌미로 투매에 나서는 이유는 금융시스템 위기에 대한 우려다. 은행권이 보유한 석유 업계 여신이 부실화되는 한편 관련 업체들의 디폴트가 상승하면서 금융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과거 글로벌 경기 침체를 일으켰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비해 에너지 업계 여신은 은행권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보유한 에너지 기업 여신은 213억달러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약 3%에 불과하다.
다만, 유가가 추가로 하락하거나 극심한 저유가를 유지할 경우 정크본드 시장의 충격은 모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세바스찬 래들러 도이체방크 전략가는 “에너지 기업이 미국 하이일드 본드 시장의 20%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정크본드의 프리미엄이 크게 치솟으면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가 급락의 핵심 요인에 해당하는 글로벌 경제 침체 우려만큼은 과장된 것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13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원유 생산 비중이 40%인 데다 올해 감산이 예상된다. 또 원유 순수입국에 해당하는 미국과 중국, 일본, 인도의 GDP 규모가 전세계 경제 규모의 50%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하데스 교수는 “유가 급락이 산유국에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이들은 글로벌 경제에서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마틴 엘리슨 옥스포드 너필드 대학 교수는 “문제는 유가 하락 자체보다 하락의 속도”라며 “여기에 유가가 경기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 떨어졌다는 점이 금융시장에 패닉을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