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부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을 만들다
- 한류라는 문화코드를 만들어 내다 1
지금의 중년세대들이 학창시절을 보내었던 1970년대! 당시 그들은 한손에는 화염병을, 다른 한손에는 통기타를 들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 속에서 당시 젊은이들이 현실사회의 삶에서 느끼는 아픔과 고뇌, 그리고 자유스럽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 이상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방황하고 있었는지를 잘 엿볼 수가 있다. 당시 그들은 데모에 지쳐 있었다. 캠퍼스는 따가운 최루탄 가스에 찌들어 있었고 임시휴강 공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붙었다.
그래도 그들은 보다 나은 미래세계를 향한 도전정신을 지니고 있었으며 젊음과 낭만에 대한 열정도 발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청바지를 즐겨 입었고, 생맥주를 마시며 세상을 이야기했다. 또 대학가 잔디밭에는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도 흔히 보였다. 이런 풍경들 속에서 그들은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 장발과 미니스커트 등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청년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쌓여서 나중에 한류라는 문화코드를 낳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 SBS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흥행 성공을 뛰어넘어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면서 중국 내 한류 열풍에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 정치권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한류의 폭발적 인기를 차단하려고 했던 것과 달리, 문화대국임을 자부하던 중국이 이제는 한류 배우기에 나선 것이다.
얼마 전까지 한류의 중심은 일본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지만 ‘욘사마’라 불리는 배용준을 중심으로 폭발적이었던 반응에 비하면 약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에서 한류에 대한 신선함이 떨어지고 반한 감정이 커지면서 국내 스타들의 일본 활동이 위축된 것이 한 이유다. 그런데 이렇게 시들해지던 한류열풍이 중국에서 재 점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한류는 중국과 동남아 화교권에서 일고 있던 한국 대중문화 열기에서 시작되었다. 1996년 드라마를 시작으로 중국에 수출되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는 1998년부터 가요 쪽으로 확대됐다. 한류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중국 언론이었다. 2000년 2월 H.O.T 의 중국 베이징 공연 당시 중국인들의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열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한국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진 일본에서조차 드라마 ‘겨울연가’가 흥행하면서 ‘욘사마(배용준)’, ‘지우히메(최지우)’ 등의 한류스타가 탄생했다. 겨울연가의 성공을 바탕으로 국내 대다수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으로 수출되며 한류열풍이 점화되었다. 이후 한류는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중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한류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류는 아시아권에 한정된 바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미주나 유럽에까지 한류가 확대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드라마 ‘대장금’이 이란에서 9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아프리카를 넘어 동유럽에서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일시적인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감성과 주류언어도 아닌 한국어 노래가 서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힘들다고 본 것이다. 그러던 중 K-POP 열풍이 POP의 진원지라 할 수 있고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서 잇달아 일어났다. 그리고 커다란 성공을 이루었다.
(한류라는 문화코드를 만들어 내다 2에 계속)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