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독자적인 기업 신용평가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방안을 2015년 중에 시행하도록 하겠다." (19일 국회 '신용평가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 신제윤 금융위원장)
'독자신용등급'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와야겠지만, 이르면 내년 중 주요 기업의 독자등급이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독자신용등급이 도입돼도 최종등급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이유를 들어 파장이 크지 않으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독자신용등급이 발표되면, 등급이 나쁘게 나온 기업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등급산정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됨에 따라 최종등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회사채 한 시장 관계자는 "충격이 없다면 왜 정부가 도입을 계속 미뤄왔겠는가"라며 "발행사와 투자기관 모두에게 충격이 있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 독자신용등급, 뭐길래‥ 지난해 시행하려다 금융위 중단

독자신용등급은 기업을 평가할 때 그룹이나 계열사의 지원 여부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해당 기업의 펀더멘탈만을 따져 도출한 등급이다.
이 자체가 새로운 신용등급은 아니고 최종 신용등급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종의 중간적·가상적 개념이다.
신평사는 통상 독자신용등급을 도출하고 여기에 유사시 모회사나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을 고려해 최종적인 기업신용등급을 결정한다.
지원 가능성은 '지원 능력'과 '지원 의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이뤄지는데, 한국신용평가 원종현 수석애널리스트는 "지원능력은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 판단이 쉬운 반면, 지원 의지는 정성적인 속성이 강하며 지원 주체의 자의적인 판단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독자신용등급 제도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11년 LIG건설이 발행한 기업어음이 그룹의 지원 거부로 부도가 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해 3월 도입 여부를 두고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지만, 실제로 제도화하진 않았다. 대기업 계열사의 독자신용등급은 최종 신용등급보다 낮아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동양사태가 발생하면서 동양그룹의 지원 능력을 믿고 동양계열사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이들이 속출하고 올해 3월에도 KT가 KT ENS에 대한 지원을 거부함에 따라 독자신용등급 도입 필요성이 재차 불거졌다.
◆ 지방공기업들 직격탄, 투기등급으로 전락 가능성도
독자신용등급이 공개되면 지방공기업들의 회사채 수급에 가장 먼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공기업은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 가능성 때문에 재무상태가 악화해도 부도위기에 몰릴 여지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높은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
부채비율이 높고 영업 현금흐름이 낮아 이자비용도 제대로 낼 수 없는 공기업들이 태반이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등 대부분이 최상위 등급인 'AAA'이다.

물론 주요 공기업들의 경우 중앙정부가 사실상 경영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투자기피 대상에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한민국이라는 지원주체의 지원 능력과 지원 의지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도시공사와 강원도개발공사와 같은 지방공기업 공사채의 지위는 독자신용등급이 발표되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지방 공사채가 특수채 지위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투자기관의 투자 한도가 늘어나면서 수급이 개선됐듯이 독자신용등급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여력이 줄 수 있다.
증권사 한 회사채 관계자는 "회사 리스크팀에서 독자등급을 고려해 투자 가능 대상을 재지정하지 않을까 싶다"며 "(독자등급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등급이 발표되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최종등급에 영향 미칠 수도
원칙적으로 독자신용등급이 도입된다고 해서 최종 신용등급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독자신용등급은 최종 신용등급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출한 가상적인 등급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간과정을 공개한다고 해서 최종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룹 계열사에 대한 신용등급 산정에 있어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현재의 신용평가시장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계열사들의 독자신용등급을 도출하고 다시 모회사에 의한 지원 가능성을 추가로 고려해 신평사가 최종등급을 발표한다고 하지만 이 과정이 엄밀하지도 않았고 투명하지도 않았다. 등급쇼핑을 하는 계열사들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예컨대 어떤 모기업의 신용등급이 'AAA'인 경우 자회사들의 신용등급은 모두 2~4등급 아래인 'AA'~'A+'에 몰려있는 경우가 많다. 계열사 각각의 전략적 중요성에 따라 모회사의 '지원 의지'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최종등급을 독자등급보다 일괄적으로 1~2등급씩 가량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S&P 박준홍 이사는 "KT ENS의 법정관리 신청 사례는 자회사에 대한 모기업 지원 가능성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보여줬다"며 "S&P가 법정관리 신청 이전에 KT ENS를 평가했다면 KT의 지원 가능성을 낮게 평가해 신용도 상승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신평사들이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해석해 자회사의 독자신용등급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독자신용등급이 공개되면 신평사 입장에서는 독자등급과 최종등급의 '갭(Gap)'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더욱 절실해진다. 독자신용등급이 낮으면서 비핵심 계열사일 경우 최종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이유다.
증권사의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계열 지원 가능성에 따른 등급 산정 근거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시장의 목소리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연구원 임형준 박사 역시 "현재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와 명확하지 않은 지배구조 때문에 독자적인 신용위험이 어느 정도고, 어느 정도의 계열사 지원을 고려해 최종등급이 산출됐는지를 현재의 신용등급은 분리해서 가늠하기 어렵다"며 "독자신용등급의 도입이 신평사에 대한 기관투자자의 평가를 쉽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