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오실 줄 알았어요”
“예에?”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예에?”
나를 대하는 태도가 평소완 전혀 달랐다.
배타성 강한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 혹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은 걸로 자존심의 바닥이 긁히는 듯한 통증. 찻집 탁자를 확 걷어차고 싶은 충동이 일순 일었지만, 미라의 강렬한 힐난에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의 기운이 감돌아 귀를 기울여 들었다.
“현주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후부터 줄곧, 울면서 저에게 전화했어요”
“울다니요? 집에선 늘 웃기만 했는데”
“그럴 거예요. 걘 그런 애예요”
정신이 오싹했다.
“현주는 사랑 없으면 죽는 애예요”
미라의 말에서 느껴지는 현주라는 여자는 나와 십 년을 같이 산 여자가 아닌 전혀 다른 여자였다. 내 감성으로는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사는, 아주 섬세하고 오묘한 여자였다. 급소를 찔러대는 미라의 한마디 한마디에 의해 내가 알고 있는 현주라는 껍데기가 벗겨지고 또 다른 벌거벗은 현주가 나타나 애써 지었던 거짓 미소를 지우고 가냘프게 울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첫애를 임신했을 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기차 밖으로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했다면서요? 친정에 겨우 데려다주곤 곧장 밖으로 나와 차도에 뛰어들었다면서요?”
“......”
“애를 낳았을 때도 전화 한 통 없다가 일주일 후에나 찾아갔다면서요?”
“......”
“그때 그 앤 산후우울증에 걸렸어요. 밥도 안 넘어가고, 죽으려고도 했대요”
그날 얘기였다. 첫애인 주혜 때니까 결혼 삼 년째다. 출산을 위해 아내를 친정인 진주에 데려다 주던 늦가을 토요일 오후. 그날은 공교롭게도 S경제연구소 마지막 발표일이었다. 기자직을 희망했지만 다 떨어지고 나이도 차 마지못해 K증권에 취직한 지 삼 년째였다.
객장에서 허구한 날 주식 사고 팔고 돈 물어주는, 아까운 청춘 깨먹는 짓거리에 신물이 날대로 난 상태였다. 다른 직장으로 옮기려고 여러 군데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마지막 돌파구로 삼은 전직 기회였다. 1차, 2차까지 되었기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최종 면접에서 밀렸다는 소식을 하필 그날 듣게 된 것이었다.
눈 앞이 캄캄했다. 주식시장이 일시에 깡통구좌들을 강제로 정리하기로 결정한 바로 며칠 전으로 주가가 겁나게 곤두박질치던 때였다. 영업 대리에 수탁 대리를 겸하고 있어 깡통 정리 총괄을 맡고 있었는데 주식 약정에, 깡통 구좌 정리에 하루하루 피를 말리던 나날이었다.
깡통이란 신용이나 미수 때문에 주식을 다 팔아도 마이너스가 되어 고객이 추가로 입금해야 하는 불량 구좌를 말하는데 지점에 수억에 이르는 깡통들이 있었다. 주식을 팔겠다고 고객에게 전화하면 별의별 항의와 폭언, 협박을 당해야했고 감사실로부터는 과감하게 처리하고 보고하라고 매일 압력을 받아야 했다. 개인 잘못도 있지만 통화를 지나치게 푼 정부에 더 큰 잘못이 있는데도 정부는 오리발만 내밀고 있었다.
기차는 고향인 청주 근처인 조치원역에 다가서고 있었다. 갑자기, 하루만, 하루만 쉬고 싶었다. 진주에 도착하면 마중 나오기로 되어있으니까, 나는 미안하지만 조치원역에서 내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아내는 표정이 굳더니 창 밖만 줄곧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