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지금 내 가슴엔 이런 푸념의 자국들 남아있지 않아. 우리가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놀러간 설악산의 티 없이 맑은 담수. 초록, 갈색 돌들과 빨간 단풍잎들이 고스란히 선명하게 비추던 그 물처럼 마음의 먼지들이 가라앉고 있어. 속 시원해. 지난 십 년간의 체증이 다 빠져나갔어. 이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자신이 생겼어. 그 자신감이, 너의 고통의 폭발에서 왔다는 사실이 괴로워.
이제 아침이 밝아와. 조금 있으면 아이들 깨워 유치원, 학교 보내고 출근해야 돼. 요 며칠 애들이 둘이 붙어 놀다가도, 따로따로 제 몫에 열중해 놀 때가 있어. 경혜는 인형들을 죽 모아놓고, 몇 시간이고 혼자 중얼거려. 동화책을 보면서도 혼자 이야기를 풀어나가. 주혜도 엄마의 부재를 참고 내색 않는 거 알지? 어제 낮에 학교 운동장을 같이 걸으며 엄마 보고 싶냐니까, 고개를 끄덕였어. 말도 없이.
“고모가 그렇게 만든 거지? 고모가 엄마 장사시킨 거지?”
뭔가 말을 더 하려다가 참고, 다른 이야기로 즐겁게 돌려대고 있었어.
현주야, 당신과 나 사이에 태어난 우리 애들이 난 너무도 사랑스러워. 고마워.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인색한 사이에도, 내게 최선을 다해 줬어. 평생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어. 그러니 시간을 줘. 당신 사랑하는 일이, 내 생의 가장 중요한 계획이 된 나에게, 당신이 없어지면 난 뭐니? 선생님이 방학 계획 짜라고 백지 내줬는데, 하루 종일 빈 공간만 바라보는 아이 같을 거 아냐.
이래저래 투정도 해본다. 이런 말들이 당신을 힘들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난 당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영적인 심정을 다해 말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당신에게 구걸이라도 하겠어. 내 껍질은 다 벗겨져 사라졌어. 지나간 상처들은 말끔히 지워졌어. 이젠 당신이, 내 시(詩)의 중심이 되었어. 이 말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야. 어제 낮 공허함을 감싸안고 아이들과 운동장을 걸을 때, 번갯불처럼 가슴에 와 닿은 말이야. 이제부터, 현주 당신은 내 시의 중심이야. 이 말의 의미가 어떤 건 줄 아니?
가혹한 사막에서, 내가 오기의 선인장으로 너의 가슴 찔러대는 못된 식물로 살아남으면서도, 불순의 세태에 빠지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푸른 선인장 향기의 문학을 잃지 않고 길러온 것은, 내 의지와 당신 인내의 공동작품이야. 그 작품에 당신이 주연이 안 되고 늘 비껴난 사실에 대해, 난 참으로 당신에게 죄스러웠는데, 이제 그 자책이 사라졌어. 당신이 주인공이야.
이제야 내 시가 누구를 향하는지 명백해졌어. 이런 시도 있구나. 주인공이 십년간의 두터운 공백을 깨고 부서지는 물보라처럼 아름답게 출현하는, 이런 장편소설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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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 기대를 걸고 산 시간들은 이미 멀어졌어. 이제 난, 나에게만 기대며 살 거야!” 라는 너의 아픈 절규를, 나 알아. 아니, 알 것 같아. 아냐! 아냐! 당신은 까마득한 절벽 저쪽에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