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강필성 기자] 순환출자는 자본이 부족하고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들이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출자 형태다. 후발 산업국가이자 제조강국인 독일과 일본도 계열사간 출자로 자본을 조달해 산업화에 성공했다.
국내 순환출자도 대기업이 임의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정부의 산업정책과 대기업정책을 따라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1970년대 자본이 부족한 국내경제 사정상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중화학산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계열사간 출자가 불가피했다. 1990년대에는 정부가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기업을 우대(소유분산 우량기업 지정 제도)했기 때문에 대주주 개인의 출자보다 계열사의 출자 비중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부채비율을 200%로 맞추라"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 대기업들이 자기자본을 확대하기 위해 증자를 하는 과정에서 순환출자가 증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재계는 순환출자 금지가 억울하기만 하다. 출자하라고 떠밀 땐 언제이고 이제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지배구조의 해체가 우려되는 순환출자 해소를 밀어붙이는 게 어불성설인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재계의 우려가 엄살"이라며 여전히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무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부 예외'를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다소 유연한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선뜻 명확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계로서는 순환출자 금지가 경영권 방어와 총수 일가의 지배체제 붕괴 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들어가야할 막대한 비용은 가뜩이나 어려운 대내외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당장 재계 1,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폭탄을 맞을까 시름이 깊다. 두 그룹 모두 그동안 다양한 지배구조 변화를 모색해왔지만 순환출자 고리를 벗어내기는 쉽지 않다.
단적으로 삼성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큰 줄기의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지분 3.4%를, 이재용 사장은 25.1%를 보유하고 있다.
그 안에서 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에버랜드 등 각 계열사를 묶는 고리가 형성돼 있다.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문제에서 삼성그룹보다 고민이 더 크다. 삼성그룹의 경우는 어느 고리가 무너지더라도 지배체제 자체의 붕괴 가능성은 낮은 반면 현대차그룹의 경우는 현대모비스와의 고리가 끊길 경우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오너 일가의 그룹 전체 지배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가 20.78%의 현대차 지분을, 현대차가 33.99%의 기아차 지분을, 기아차가 16.88%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보유하며 순환하고 있다.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 6.96%,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기아차 1.73%와 현대글로비스 31.88% 등을 보유 중이고, 여기에 현대제철(정몽구 회장 12.52%), 현대엠코(정의선 부회장 25.06%) 등 주요 계열사들이 현대모비스의 순환고리에 연결돼 있다.
이런 분위기는 주요 그룹 대부분이 비슷하다. 롯데그룹은 계열사간 지분관계가 얽힌 순환출자 고리가 여러개 존재하고 한진그룹도 대한항공-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의 순환고리를 통해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중공업-삼호중공업-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연결된다.
SK그룹, LG그룹, GS그룹, 두산그룹 등은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했거나 전환과정에 있어 사실상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한 상태다. 상대적으로 순환출자 규제에서는 느긋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도 순환출자 금지의 연장선에서 현행 자회사 지분 40% 미만 보유 비율을 조금만 높게 규제하면 그만큼의 자회사를 매각해야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는 없는 셈이다.
전경련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신사업이나 신규투자 등이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순환고리는 형성된다"면서 "수직계열화 차원에서도 이런 부분은 단순하게 순환출자 금지로 규제하는 것이 이치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저상장 우려가 커지고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세계시장에서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들이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자꾸 입법화되는 것이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아이러니하다"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순환출자 해소가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