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현대 경영활동의 핵심 수단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켓팅은 물론 기업 핵심가치를 꾸며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진정성이 담겨있는 스토리텔링 기법 및 경영관은 궁극적으로 비전기업을 만드는 데에 큰 몫을 한다. 뉴스핌은 창간 9주년 기획물로 스토리텔링 경영의 중요성과 국내 주요 기업들의 해당 성과물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뉴스핌=김홍군 기자]1985년 11월의 어느 날, 한국마사회 간부와 CJ대한통운 임원 및 직원이 서울 모처에서 회의를 갖고 있었다.
“겨우 몇 달 빌리는데 이런 가격은 터무니없습니다. 빌리지 말고 그냥 사라는 의도가 있는 거 같은데요.”
“이럴 거면 차라리…우리 쪽 눈 밝은 사람을 영국으로 보내서 자세히 알아보고 자체적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들이 고민하고 있었던 이유는 말, 바로 승마용 말 때문이었다. CJ대한통운은 1985년 10월 ’1986 아시안게임’ 전담물류업체로 선정되며 아시안게임 개최 및 운영에 필요한 모든 화물의 운송을 책임지게 됐다.
모든 물자들이 취급시 주의를 요하는 것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화물은 승마경기용 말이었다. 말 자체가 워낙 예민한 동물인 데다가 승마용 말은 한마리 당 가격이 10만 달러를 웃도는 고가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말을 수송할 때에는 특수한 차량을 이용해야 했다.
CJ대한통운은 아시안게임 승마용 말 운송을 위해 1985년 초부터 국내 주요 자동차제작사에 마필 수송용 특수차량의 제작을 의뢰했지만, 모두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어떤 회사는 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또 다른 회사는 개발요원 부족, 기술자료 수집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납기를 맞추기 힘들다는 등 사유도 가지가지였다.
140여 년의 마필 수송 전문 기업인 영국의 P사와 일본의 마필 수송 전문회사에 장비 임대를 의뢰했지만 고가의 임대가격 견적서는 실무자들을 고민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결국 한국마사회와 CJ대한통운 관계자들은 자체 제작으로 눈을 돌렸다.
대회 시작 전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년여 남짓. 빠듯한 마감시간을 맞춰야 하는데다 듣도 보도 못한 말 전용 운송장비를 만들어야 했기에 제작을 맡게된 CJ대한통운 정비사업소 관계자들의 고심은 컸다. 실무자들을 해외로 파견해 장비를 실측해보고, 눈대중으로 본 것을 그대로 설계도로 옮겼다.
국제승마연맹과 영국의 P사에 1차 설계도면을 보내 수차례 자문과 수정을 받은 끝에 가까스로 설계를 마친 CJ대한통운은 1986년 4월 1차 견본을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한국마사회에서 조직위 수송국 및 경기국 관계 실무진 회의를 거쳐, CJ대한통운은 86년 8월초까지 승마경기용 마필 수송 컨테이너 4필용 6대와 2필용 2대의 제작을 완료했다.
마침내 1986년 8월 19일. 이날 아시안게임 참가국 중 하나인 쿠웨이트로부터 승마용 말 8필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검역을 마친 말들은 마필 수송 컨테이너에 실려 성남에 있는 마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CJ대한통운은 마필 수송 컨테이너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원들도 엄격한 기준을 세워 선발했다. 최소 학력 고등학교 졸업 이상, 일정 횟수 이상 말이나 기타 동물을 운송한 경험이 있어야만 마필 수송차량의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운전하는 과정 역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말이 놀라거나 다치면 안되기에 시속 50km 이상 속력을 낼 수 없었다. 급제동, 급정거나 급커브 역시 안됐다.
제작 이후 국내 말들을 싣고 과천에서 원당까지 수차례 시험운송까지 했던 것도 마필 수송의 주의점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관계자들이 초긴장 상태에서 성남에 도착한 가운데, 이동차량에 동승했던 영국 마필수송 전문회사 P사 관계자가 차량에서 내리며 말했다.
“Wonderful!” P사 관계자가 다섯 번이나 ‘원더풀’을 연발하며 감탄하는 것을 본 뒤에야 CJ대한통운 실무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1930년 창립 이후, CJ대한통운은 물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물류산업의 역사를 개척해왔다. 1968년 무게 351톤의 서울 당인리 화력 발전소 발전기 운송시에는 한강 도하를 위해 드럼통 2496개를 묶어 부유장비를 만들었다.
175t 무게의 한국비료 울산공장 탄산가스 재생탑을 하역하기 위해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도하장비로 사용했던 부교 부품을 구입해 250톤 급 바지선을 건조하기도 했다. 장비가 없으면 만들었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어떠한 운송이라도 성공리에 수행해왔다.
바로 ‘우리의 업으로 국가에 기여한다’는 CJ대한통운의 ‘운송보국’ 정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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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김홍군 기자 (kilu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