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주요국들은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부실자산을 매입하고 경색된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는 면했지만, 아직 이 불어난 유동성을 회수할 조짐은 없다. 2010년 전후 인플레 우려가 제기되면서 유동성 회수, 혹은 '출구전략' 논의가 활발해지는 듯 했으나 유로존 채무 위기가 발생하면서 논의가 자취를 감추면서 선진국의 2차 완화정책과 추가 구제금융이 단행되었다. 위기 발생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는 여전히 이 보조장치를 달고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불어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의 원활한 배분 역할을 왜곡하고 상품시장의 투기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 망령이 등장하고 있다. 다시 한번 글로벌 유동성의 실체와 그 위험을 둘러싼 논쟁을 점검할 때다.<편집자 註>
[뉴스핌=김사헌 기자] 그리스발 유럽 채무 위기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자 미국과 유로존이 추가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금 가격이 폭락하는가 하면 미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있다.
온스당 1700달러 선으로 치닫던 국제 금 선물 가격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추세선으로 후퇴할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다. 2%를 밑돌았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순식간에 2.4% 선을 바라보고 있어 채권시장은 긴장이 감돈다. 다만 국제 유가는 이란을 둘러싼 전쟁 공포로 인한 프리미엄 덕분에 고공행진을 지속할 조짐이다.
최근 변화의 중심에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결정이 놓여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의회에서 추가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시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금융시장은 동요했다.
이어 일본은행(BOJ)이 전격 추가 완화정책과 함께 장기적인 저금리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시장은 다시 한번 놀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예상대로 추가 장기저리자금공급(LTRO)에 나섰지만, 더이상은 이런 완화정책이 없을 것이며, 이제는 인플레이션에 보다 주목하면서 본연의 자세로 복귀한다고 선언해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런 변화 배경에는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미국 경제가 있다. 고용시장이 2월까지 급격한 개선 양상을 보였고, 산업생산도 기대 이상의 증가세를 보여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유럽 경제는 올해 침체에 빠져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고, 지난해 대지진 참사에서 겨우 회복한 일본은 엔화가 안전자산 수요에 따라 너무 강세를 보인 덕분에 그로기 상태에 있었다.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어 상황은 더욱 엄중해졌고, 정책당국은 결심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채무 위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손대는 것보다는 중앙은행이 동원됐다.
◆ 선전하는 미국 경제.. 죽쑤는 나머지
그런데 미국이 최근 세계경제에서 주도적인 회복세를 보인 반면, 나머지 세계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이번 위기 이후 정책 대응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한 뒤에도 움직이지 않던 위험자산 시장이 최근에는 급격한 상승 랠리를 구가하고 있는데도, 실물 경제에는 불이 붙지를 않고 있다. 주식시장이 경기순환을 민감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최근 시장의 랠리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펀더멘털과 분리된 위험자산 시장의 랠리에 대해 시장참가자들은 '유동성 장세'란 표현을 사용했다. 특별히 좋아진 것이 없는데, 돈의 힘으로 자산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판단은 반만 맞는 이야기다. 시장에 아무리 유동성이 많다고 해도 위험자산시장으로 마구 유입되거나 하지는 않는 법이다. 중앙은행이 은행들에게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마이너스 금리로 파킹할 뿐 기업이나 가계로 이 자금이 무작정 유입되지 않는다. 경제주체나 자산시장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만 유동성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위험자산 가격의 급등은 시장 주체들의 신뢰도가 크게 회복되었음을 보여준다. 단적으로 위험자산의 수요를 나타내는 대리지수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는 최근 13포인트 선으로 2007년 중순 이래 최저치까지 하락했다. 2008년 위기 발생 직후 VIX는 70선을 돌파하는 등 '공포지수'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었다.
미국 S&P500 지수는 지난해 10월 저점에서 25% 랠리를 구가하고 있다. 이것이 본격적인 강세장의 신호인지 여부가 논쟁거리인데, 경제 여건이나 기업실적 등 펀더멘털한 면만 보자면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보다는 낮은 조달금리와 같은 외부변수나 대안이 없다는 상황논리가 등장하는 경우도 왕왕 발견된다.
한편, 국제 유가 상승은 중동의 지정학적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최근까지 유가 외에 모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망령이 살아났다. 원자재 자산시장 거품 우려는 유동성 위험 논의의 단골메뉴인데, 이 시장의 변화는 곧 인플레이션 논란으로 이어지기 쉽다.

▶ 주식투자로 돈좀 벌고 계십니까?
▶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