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주요국들은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부실자산을 매입하고 경색된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는 면했지만, 아직 이 불어난 유동성을 회수할 조짐은 없다. 2010년 전후 인플레 우려가 제기되면서 유동성 회수, 혹은 '출구전략' 논의가 활발해지는 듯 했으나 유로존 채무 위기가 발생하면서 논의가 자취를 감추면서 선진국의 2차 완화정책과 추가 구제금융이 단행되었다. 위기 발생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는 여전히 이 보조장치를 달고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불어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의 원활한 배분 역할을 왜곡하고 상품시장의 투기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 망령이 등장하고 있다. 다시 한번 글로벌 유동성의 실체와 그 위험을 둘러싼 논쟁을 점검할 때다.<편집자 註>
[뉴스핌=김사헌 기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위기 이후 대차대조표 규모를 크게 늘린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위기 발생 직전에 유로존의 본원통화는 국내총생산(GDP)의 10% 정도였으며, 미국과 영국은 4%~6%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현재는 세 곳 모두 16%~18% 수준까지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공급이 반드시 경제 총통화(M2) 증가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광의의 통화는 금융권에서 기업과 가계로 신용을 확대해야 증가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 총통화가 최근들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영국이나 유로존, 일본의 경우 거의 정체하거나 심지어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는 실정이다.
◆ 본원통화 확대, 신용공급 이어지지 않아
이런 배경에는 은행들이 자본을 확충하고 대출기준을 강화하면서 적극적인 신용에 나서지 않은 것이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로존의 기업 및 가계대출이 최근에 오히려 줄어든 것을 보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공급한 유동성을 은행들이 파괴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최근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의 랠리를 이끌던 '리플레이션 거래' 전략이 과연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을 부양할 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서, 아직도 경제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최근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미국 경제 뿐이다.
게다가 2009년 경기 침체 이후 급격한 개선 추세를 보이던 기업 실적이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5% 가까이 급증했던 미국 대형기업들의 순이익은 올해는 한 자릿수 중반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올해 1분기부터 실적이 정체할 조짐마저 보인다.
또한 그 동안 저공행진을 지속하던 채권금리나 자금시장 조달금리가 들썩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 동안 중앙은행들이 경제 전망에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금리가 낮았다고 본다면 지금 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갑작스러운 경제 전망이나 금리의 변화는 위험자산 시장에는 단기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저금리 환경에 따라 적극적으로 발행시장에서 자금조달에 나서던 기업들로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 리플레이션 거래 중단되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요국 정책당국은 적자재정과 감세정책 등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책금리를 인하하고 나아가 중앙은행이 발생한 화폐로 국채 등 주요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 정책수단까지 사용했다. 이것은 대표적인 '리플레이션(Reflation, 통화 재팽창)'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공황 극복을 위해 도입된 뉴딜 정책이 경제정책으로서의 리플레이션 정책의 효시가 되고, 일본 엔화 평가절하 정책이나 미국 양적완화정책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같은 주요국 리플레이션 정책은 이에 수반하는 위험자산시장 투자를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전 세계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일컬어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의 양적완화정책은 금융 위기 이후 폭락했던 위험자산 시장이 일제히 급등하는 계기가 된다.
원래 '리플레이션 거래'는 통화팽창 정책 및 재정부양 정책 수혜를 입는 증권에 투자하는 거래전략을 일컫는다. 즉 통화팽창 정책으로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리플레이션' 정책에서 차용된 용어다.
통화재팽창 정책은 결국 인플레이션이 안정 목표선을 웃도는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이를 인내하면서 부진한 경기를 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자연히 명목 경제성장에 연계된 혹은 물가 상승에 연관된 '실물자산'을 매입하는 동기가 발생한다. 주식시장이 대표적으로 명목 경제성장률에 연관되며, 국제원자재 상품은 물가 상승과 연동된 자산이다.
세계 증시는 지난 2011년 10월 초반에 기록한 단기 저점으로부터 3월 초순까지 무려 21% 이상 급등했으며, 같은 기간 국제원자재지수는 24% 가량 치솟았다. 자산가격이 20% 이상 치솟을 때 이를 기술적인 용어로 '강세장(Bull Market)'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강세장에 해당된다.
문제는 리플레이션 정책이 원래 의도했던 대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유동성을 실물과 금융시장에 선순환시키는 데 실패할 경우, 즉 급격한 유동성 증가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창출되거나 자산시장에 과도한 거품을 일으켜 또 한번 금융위기를 유발할 경우 실물자산 시장이 크게 동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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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