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엄청난 부채를 쌓아가면서 전 세계 금융을 위협하고 있다. 이 나라는 빚더미속에 살고 있다. 분수에 맞지 않게 살면서 책임을 다른 나라들에게 옮기는 ‘기생충’처럼 행동하고 있다”
지난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자신의 청년 지지자들 앞에서 ‘미국의 기생충론’을 역설했다. “미국은 세계경제의 기생충”이라는 그의 주장을, 사회주의 국가의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맹목적 독설로 무시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
중국 런민일보는 미국 백악관과 의회 양당이 극적으로 ‘채무 협상안’을 타결한 직후인 지난 2일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는 세계 경제의 중대한 위협요인이다”고 경고하면서도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를 쉽게 벗어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고 토로했다. 외환 보유액 3조2000억달러중 약 70%를 미국 달러화 자산으로 보유중인 중국은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검게 타고 있지 않을까 한다.
미국 재정위기로 타는 그 ‘검은 속’이 5일 우리 주식시장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단 하룻만에 코스피시장에서만 시가총액이 42조원가량 증발했다. 최근 나흘간 지수가 230포인트나 폭락하면서 심리적 지지선 2000포인트 붕괴는 물론 1940선으로 풀썩 주저 앉았다.
이 기간중 시가총액은 무려 128조원이 사라졌다. 내년도 우리나라 주요 연구 개발(R&D)예산이 10조6000여억원인 것과 견줘보면 128조원의 무게감은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검은 금요일(5일)’의 징조는 하루전 미국 월가에서 발생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512포인트, 4.31%나 대폭락했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500지수는 4.78%, 나스닥 종합지수는 5.08% 수직하락했다. 미국이 극적으로 채무협상안을 이끌어냈지만 미국 경제회복 전망에 끼어있는 먹구름이 간단치 않다는 걸, 주식 투자자들이 새삼 절감한 결과다.
다소 생뚱맞은 주장일 수 있지만 국제 증시 폭락의 요인으로 경기둔화와 함께 정치인의 능력부재를 든다면 이해가 갈까. 그렇다. ‘정치력’도 주식시장의 주요 변수이다.
세계 최대의 채권회사 핌코(PIMCO)의 최고경영자인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며칠전 한 기고문에서 미국 증시의 폭락의 원인으로 정치인들 무능력을 꼽았다. 그는 “시장은 지금 정치인들이 높은 경제 성장률과 고용창출이란 정답을 찾아낼 능력이 없다고 염려하고 있는 셈”이라며 월街의 참상은 정치적 무능력이 낳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유럽의 위기도 정치인들이 단호한 대처에 실패함으로써 더욱 악화됐다”며 정치인의 능력여부와 세계 금융위기의 상관관계를 거론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행정당국은 나름 발빠르게 움직였다. 금융시장이 대 혼란에 빠진 ‘검은 금요일’, 청와대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등의 실무급 간부들과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국제 금융시장이 취약해 나타난 현상이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등의 원론적 논의가 오고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일요일인 오는 7일에도 기획재정부 중심으로 관계기관들이 국내외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 예정이다. 주식시장이 열리기 하루전에 시장에 ‘메시지’를 전달, 투매가 투매를 야기하는 불안정한 패닉현상을 막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담겨있다.
세계적 금융전문가인 에리언의 주장대로라면 시기적으로 우리는 정치인들 행보를 더욱 눈여겨 지켜봐야겠다.
8월 임시국회 개회를 놓고 샅바싸움을 하던 여야가 마침 ‘검은 금요일’에 전격적으로 임시국회 일정을 합의했다.
‘해고 근로자 복직’건으로 정치,사회적 이슈로 확산된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조남호 회장을 출석시켜 청문회도 연다.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에 관한 법안도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안도 다룰 소지도 있다.
대학생 등록금 인하방안도 논의된다. 수해복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의 편성도 여야 정치인들이 검토한다. 일부 정치적 이슈도 있지만 8월 임시국회는 경제,민생 국회로 작동할 것이다. 원칙과 타협의 경계선에서 정치인들이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서울 증시의 ‘검은 금요일’에 주가와 원화가치 급락을 정치인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정치적 무능력이 경제의 실패를 더 깊게 할 수 있다고, 아니 깊게 했다고 주장해도 대다수 정치인들은 할 말이 없을 게다.
정치가 경제의 상부구조라는 인식이 아직도 깔려있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정치인들이 그 권한과 책임만큼 어디에서나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전제에서 “정치가 경제를 망친다”고 말하면 문제가 될까.
CEO리더십을 강조한 정권이기에 정치인 능력과 경제 성적표의 인과관계는 간단치 않다.
푸틴은 미국을 기생충으로 혹평했고 에리언은 증시폭락을 정치력 부재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경제위기 먹구름속에서 한국의 푸틴과 에리언은 우리의 재정상태와 정치인들에게 무슨 촌평을 내놓을까. / 증권부장 명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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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명재곤 기자 (s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