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존론이 아니라 인생론"…"넘버원보다 온리원 추구해야"
[뉴스핌=한기진 기자] 얼마 전 사무실로 ‘철학하는 김과장(두리미디어 펴냄)’이라는 책이 배달됐다. 몇몇 신문에는 그 서평이 게재됐다. 그래도 요즘 같은 세태에 ‘철학’을 읽는 게 쉽지 않은데다 태기석(49, 사진)이라는 이름은 세상에서 낯설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15일), 경기도 부천시 중동 시장 한가운데 그가 일하는 곳까지 찾아가, 만난 것은 그가 철학책을 쓴 은행 지점장이란 점이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돈을 주무르는 은행원이 철학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니….’
그는 서울대에서 무역학(1981년 입학)을 전공하며 비즈니스를 꿈꿔봤을 학생이었고, 첫 직장도 한미은행(1988년 입사)이었던 은행원이었고, 한미은행 노조위원장을 6년(1992년부터)동안이나 했다. 2002년부터 줄곧 한국씨티은행 부천 중동 지점장으로 일해왔다. 도무지 철학하고는 ‘인연’을 찾아볼래야 단서조차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대학에서 철학과를 지원하려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먹고 사냐는 가족의 반대에 부딪쳐 전공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죠.”
태기석 지점장은 보통의 은행원 복장 그대로,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맞았다. 하지만 풍모는 학자 같았다. 둥근 모양의 안경테가 그를 더욱 그렇게 보이게 했다. 평소 같으면 직원들과 영업회의를 했을 회의실에서 그에게 철학을 물었다.
- 왜 하필 철학이냐, 재테크 같은 걸 써야 책이 팔리는 것 아니냐. 은행 지점장인데.
“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을 구조조정 한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갔나. 회사에서는 목표에 미달하면 도태시켜버리지 않았나. 노조위원장시절 치열한 경쟁사회를 지켜보면서 현실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았다.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 철학은 언제쯤부터 공부했나.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즈음 부모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철학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 재학시절에도 전공보다는 철학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내 앞의 권력이나 권위보다는 단지 삶의 의미와 진리를 향해 살아 왔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가 생각한 철학이 바램처럼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도 공감대를 살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를 인터뷰한 것에 대해 얼마간 양해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씨티은행 하영구 행장의 추천사가 그에 대한 한가지 답을 한다.
“본인이 평생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하나의 큰 사고이며 나에게도 새로운 자극이다. 과중한 은행 업무를 소화하며 글 쓰는데 몰입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느낌이 남다르다. 우리 시대에 생존론이 아닌 인생론이 필요하다는 (태 지점장의)인식에 동의한다.”
태 지점장은 “사람들은 철학과 현실은 관련이 없다고 하는데 현실에서 빛은 철학속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퇴직후에도 해야 할 소명이라고 직장생활 내내 생각했죠. 그런데 40세가 넘으니 철학이 현실에서 보이더군요”라고 말했다.
책을 펼치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죽지 못해 산다’라는 문장이 확 들어온다. 직장인들이라면 술 몇잔 기울이고 흔히 하는 삶의 고충을 드러낸 말이다.
“지난 23년간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실적에 쫓겨 죽어라 일만 하다가 때가 되면 월급을 받은 기억밖에 남은 게 없죠. 심지어 어느 지점에 근무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니까요.”
- 직장에 다닌다면 그런 고충은 피하기 쉽지 않을 텐데.
“자기의 삶에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자본이 원하는 모습으로 대상화돼서 그런 겁니다. 산업현장에서 목표달성을 독려하고 평가하니 인간의 삶이란 자본의 이윤창출 목적에 맞춰서 정형화되고 ‘대상화’되 버린 것이죠. ‘숨 참기’를 통해 현실에 겨우 대응하며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대상으로서의 나’만 있을 뿐입니다.”
숨 참기란 현대인들이 현대사회에서 겪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당당히 부딪쳐 극복하기보다 숨을 참듯이 순간의 인내로 참아내 회피하려는 자세라고 그는 설명한다.
- 해법이 있을까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죠.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너 자신’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말하는 건데, 객관적 정신을 말합니다. 동물은 자신의 먹이나 생존 관련 대상에만 관심이 있고 그에 필요한 감각과 본능이 발달돼 있죠, 인간은 달라요. 먹이나 본능을 떠나 주변의 환경을 보고 확장시키려 하죠. 이 과정을 통해 자기의식을 갖는데 이것이 직장인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잃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 자기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당연히 주변을 의식하고 타인을 의식해야죠. 주변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관계를 만들어가면 자기자신에 대한 의식이 생기고 영혼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는 책을 읽는 직장인들에게 이것만은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게 있다고 했다.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일등이 아니라 주체성, 소신, 전문성을 가진 오직 하나가 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