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가 후 상장사 13개·비상장사 40개사로 늘려
범LG가 LG와 GS로 분가한지 5년이 넘었다. 2005년 1월이 시발점이다. 분가 6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1947년에 창립해 1995년에 LG라는 이름으로 제2의 창업을 했고 10년만에 두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제3의 창업을 시작한 것이다. 범LG는 현재 LG와 GS를 필두로 LS, LIG 등으로 분가한 상태다. 5년이란 시간동안 크고 작은 M&A(인수합병)를 통해 각자의 길에서 몸집을 키워나고 있다. 뉴스핌이 범LG의 지난 5년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뉴스핌=이강혁 기자] 분가 이전 LG그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바로 구씨와 허씨로 대변되는 방대한 경영인맥의 흐름이었다. 그룹을 일군 고 구인회 창업주가 당대 최고의 재력가문이나 명문가문과 자녀들 혼맥을 형성하면서 방대한 경영인맥을 가능하게 했다.
구씨와 허씨 가문의 혼맥을 보면 대한민국 상위 1%의 인맥이 훤하게 보인다. 재계 주요그룹사 오너가문은 물론 금융계, 법조계 등 연결이 되어있지 않은 인맥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정계나 관계 인사와의 통혼은 희박하다.
구씨와 허씨의 만남은 구인회 창업주로부터 시작됐다. 구인회 창업주가 일제강점기 때 바로 옆집의 천석꾼인 허만식씨의 장녀 허을수씨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허만식씨의 6촌인 허만정씨 직방계가 현재의 GS가문 허씨 오너로 자리잡고 있다.
구씨의 LG가 현재의 형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 허씨의 힘이 컸다. 허씨가문 역시 구씨가문 못지 않은 혼맥을 형성하면서 경영인맥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구씨가 허씨를 통해 당대 최고 권력이었던 박정희 가문과 다리 건너 사돈관계를 형성했고, 노태우 가문과도 역시 다리 건너 사돈으로 맺어졌다. 시대상황을 놓고 봤을 때 경영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었던 발판인 셈이다.
긍정적 평가 뒤 남은 숙제는
분가 이전의 LG그룹(럭키금성그룹)은 1990년대 당시 재계서열 3위 안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그룹사였다. 그룹의 상징인 '황소'와 같이 우직한 기업으로 정평이 자자했다. 이는 90년대 중반 LG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계속됐다. LG그룹은 당시의 삼성그룹이나 현대그룹과는 달리 다양한 업종에서 광범위한 사업을 영위했다. 진출한 분야는 화장품에서 가전제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의 살림살이 거의 모두를 취급했다.
2005년 구씨의 LG와 허씨의 GS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이런 다양한 사업분야는 조금 좁아졌다. 전자와 정보통신 분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LG그룹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이제는 글로벌 메이커로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화학분야의 덩치도 키웠다. 그룹 전체의 해외법인만 191개나 된다. LG그룹 전체의 지난 2008년 투자액이 11조3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LG그룹은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이노텍, LG텔레콤, LG상사 LG생활건강, LG생명과학 등 53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상장사 13개사와 비상장사 40개사로 구성되어 있다. 2008년 기준으로 매출액 115조원에 직원만 18만명에 육박하는 국내 재계 서열 4위의 대그룹사를 형성했다.
이런 발전이 가능했던 또다른 이유는 2003년 3월에 국내 최초로 출범한 지주회사 체제를 꼽을 수 있다. 다른 그룹들이 엄두도 내지 못했던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다.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지닌 기업으로 평가받으면서 외풍으로부터 그룹의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LG그룹은 2005년 GS(GS홀딩스), GS칼텍스(옛 LG칼텍스정유), GS건설(옛 LG건설), GS홈쇼핑(옛 LG홈쇼핑), GS리테일(옛 LG유통) 등 허씨의 GS가문이 분가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분할과 합병 등을 통해 그룹의 규모를 키워 나갔다. 2008년부터 2009년 6월까지 이루어진 계열편입의 숫자만 21번이나 된다.
외부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단적으로 7월 현재 회사채 신용등급은 AA이고, CP(기업어음) 신용등급은 A1이다. 회사채의 원리금 지급능력이 매우 우수하고, CP의 적기상환능력이 최상이라는 얘기다.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LG그룹의 경우 지주회사 전환 이후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적정한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져 주주들로부터 긍정적인 시선을 이끌어 내고 있다"면서 "GS와 분가하면서부터는 핵심사업의 역량을 강화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대그룹을 형성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올해 환율효과 등으로 깜짝실적을 이루며 안정된 모습이지만 불과 2년전만 해도 CEO들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할 정도로 경영사정이 썩 좋지 못했다.
단적으로 2007년 초 그룹의 간판CEO였던 김쌍수 당시 부회장이 물러나야 했고, 구본무 회장의 친동생인 구본준 부회장도 인사 교체의 시련을 맞아야 했을 정도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룹의 주력사업인 가전분야가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삼성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언제까지 호실적을 장담할 수는 없어 보인다"면서 "통신분야 역시 경기변동과 업계간 경쟁 등에 따라 리스크가 작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다만 화학분야 등의 성장과 수익구조가 경쟁사보다 비교 우위에 있어 향후 지속적인 투자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구본무의 1등 LG로 가는 길
아무튼 현재의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의 작품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1995년부터 3세 경영인으로 그룹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구 회장이 지주회사 체제나 GS 분가 등을 무리없이 마무리하면서 현재 LG만의 대그룹을 형성해왔기 때문이다.구 회장은 LG와 GS의 분가 이후 그룹 내부에 줄곧 '고객가치'를 주창하고 있다. 남들과 차별화 되고 모방할 수 없는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해야 '1등 LG'가 가능하다는 이유다. 인화를 중요시하던 그룹 전반에 신상필벌의 문화를 정착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다.
사실 이런 경쟁의식은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평소 철학과도 맞아 떨어진다. 구 명예회장은 가족간에도 경쟁의식을 늘 강조했다. "가족이라고 해서 쉽게 사장이 되는 것은 생각하지도 말라"며 자식들에도 철저한 능력 중심의 원칙을 지켰다.
때문에 구 회장의 인재양성론은 '경쟁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기회도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부친인 구 명예회장으로부터 2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으면 확립한 가장 큰 경영론이다.
이런 구 회장의 철학이 어떤 성장동력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지 향후 5년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