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금산분리 완화에 온 희망 걸기
"연·기금이 은행 지분을 늘리는 건 꼭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다만 연·기금은 재무적 투자자로서 파트너일 수는 있어도 은행경영의 주역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익명을 청한 금융계 한 고위관계자가 금융자본 육성전략이 함께 모색돼야 한다는 소신을 펴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연·기금과 산업자본 일부의 참여를 끌어들이는 민영화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현실을 둘러 보자. 은행권 상장사들 가운데 우리금융과 기업은행처럼 정부계 금융사가 아니면 죄다 외국인 지분이 압도적인 회사들 뿐이다. 상장사를 벗어나면 산업은행과 협동조합에 뿌리를 둔 농협이 금융계의 힘있는 젖줄로 꼽을 만하다.
금융자본을 모태로 한 산업자본이 원래 없었고 산업자본이 부수적으로 2금융권 회사를 소유하는 데 그쳤던 상황이다. 정부계 금융사 민영화 과정에서 연·기금 소유를 대폭 늘리고 산업자본 참여를 촉진하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게 정부가 구상하는 금융의 주력산업화의 동력원인 셈이다.
'금융자본' 응집시킬 겨를도 없이 떠밀려 온 세월
대한민국에는 금융산업을 주도할 만한 금융자본이 채 성숙하지 못했다.
우리 경제는 중후장대형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도 압축성장을 거쳐 제조업 첨단화와 서비스부문 강화를 모색해왔다.
비극은 금융부문이 이 과정에서 단순히 지원하는 역할에 한정시킨 관치금융 역사가 거의 전부라는 데서 잉태했고 외환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싹조차 돋아나기 어려웠다. 특히 외환위기는 각 업권별로 선두권을 형성했던 재벌계열 금융회사들을 추풍낙엽처럼 날려 보냈다.
이들 재벌계열 회사들은 2금융권을 중심으로 산업자본과 분리한다면 제법 금융자본다운 꼴을 갖출 법도 했을 터이지만 그럴 겨를도 필요성도 없이 선단식 경영체제와 함께 흥성했다가 주저앉은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외환위기 대규모 부실의 폐허를 외국자본의 물줄기로 되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상 지금 민간 금융분야는 외국인 주주들 없이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정부계가 아니면 외국인 주주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회사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글로벌화를 넘보고 있는 것은 뿌리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민영화-금산분리 완화, 당장 선택하자니 외통수
정부는 어차피 금융자본 육성에는 관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전문가 세계에서도 금융자본은 낯선 개념이고 꼭 필요한지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단계이니 오죽할까.
정부는 단지 국책은행 또는 정부가 대주주인 채로 계속 두면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니 금융산업 구조개편도 겸해서 민영화 전략을 꺼냈다.
물론 여기다 금융과 산업자본분리 규제 완화와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성공적인 결과를 낳겠다는 심산이다.
금융위원회가 명시적으로 자본의 국적성을 따진 적은 없다. 하지만 금융산업 발전전략의 4대 축 가운데 글로벌플레이어 출현기반 마련이란 목표는 금산분리완화와 비은행지주사 활성화 딱 두 가지를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만 나와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안에 사모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PEF와 연기금의 은행지분 보유규제를 완화하고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4%에서 훨씬 늘리는 법 손질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은행을 민간화해서 민간 회사끼리 국내에서 경쟁하고 해외진출에도 기운을 북돋아 주겠다는 단순하고 간명한 계책인 셈이다.
◇사회적 논란 돌파+투자여력 충분한 산업자본 참여가 관건
하지만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사회적 저항은 필연적이고 은행 소유할 능력과 의지 모두를 겸비한 산업자본이 흔치 않다는 대표적 장벽들을 뛰어 넘어야 한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별도의 운용본부가 있어 독립성도 어느 정도 보장된 연금조차 재무적투자자로 민영화에 대한 물량소화 부담을 덜어 주는 방식을 "조심스럽게 검토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에 "기금이나 PEF는 은행을 장기적 안목에서 효율적으로 경영할 능력이나 유인이 없기 때문에 금산분리 완화 방안에서 은행지분 인수가능 주체로 포함해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추진하면 할수록 논란은 급격히 번질 전망이다.
아울러 은행 소유에 의미를 둘 만큼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여력이 충분한 산업자본도 많지 않고 은행업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한 민간연구소 고위관계자는 "이미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의 부분적 허용이 이뤄졌고 보험사들도 요구할 텐데 정부가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급결제의 중심, 즉 금융포털 노릇을 하던 은행의 위상은 퇴조했기 때문에 매력도가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그는 "은행 소유한도를 10%까지 늘려 주는데 성공하더라도 시가총액 수준을 봤을 때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자금을 동원하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탄탄한 곳이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22일 우리금융의 시가총액은 16조 2009억원이었고 기업은행은 7조 4345억원이었다. 단순히 시장가격으로 이들 회사 10%의 지분을 사 들이는데 1조 6200억원과 7435억원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뺐고 주가가 좋지 않은 상태인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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